환경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저는 사실 환경 문제를 다룬 책을 읽을 땐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환경 책을 읽다보면 뭐는 어떻게 해야 하고, 또 뭐는 어떻게 해야 하고…… 하면서 책임감을 잔뜩 던져줍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저는 괜한 죄책감을 갖게 만들지요. 마치 각 개인들만 잘 하면 환경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환경 문제는 개인의 행동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환경 문제를 일으킨 좀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구조적인 문제는 당장의 실천으로 이어지기 어렵지만 알고 실천하는 것과 일방적으로 실천을 강요받는 건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박경화 글/북센스/초판 2006. 1. 16./ 개정판 2011. 7. 10.)
역시도 큰 틀에서 본다면 우리 일상의 개인적인 실천을 강조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다른 책들과는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말도 안 된다고 여겨질 만큼 힘든 실천 사항을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그 실천이 일방적이라기보다는 환경운동을 하는 작가의 삶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작가의 삶의 방식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집니다. 즉, 환경 문제를 이야기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할 만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쉬움은 분명 있습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도 처음엔 작가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수필 형식으로 풀어나갔다가, 주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일반적인 설명문 형식으로 갔다가 하다 보니 조금은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한 주제가 그리 길지 않은 편이니 그냥 한 가지 형식으로 쭉 써내려가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 20가지나 되는 주제를 다루다 보니 전체적으로 정보는 방만하게 많은데, 하나의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핸드폰과 고릴라의 함수관계를 다루면서 콜탄의 주생산지인 아프리카 콩고가 나오는데, 콜탄 생산으로 인해 고릴라들의 생태 환경이 얼마만큼 더 나빠지고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모습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뭔가 가슴 한편을 ‘쿵’하고 때리는 것이 있어야만 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텐데 그런 한방이 없이 전체적으로 너무 담담하게 정보를 풀어놓은 것 같습니다.
또 요즘 현실과 동떨어진 예들도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산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풍경은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작가가 어린 시절 기억을 호출해 생긴 예입니다. 자칫 어른인 작가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입니다. 아이들의 현실을 반영한 글이면 더 좋았겠다 싶습니다.
이 밖에도 구체적인 정보의 사례에서 약간의 오류가 보입니다. 정상의 봉우리가 바위만 앙상하게 드러난 것이 사람들이 밟아댔기 때문이라 한 점이나, 원숭이를 영장류로 분류하는 것이나 하는 점 등입니다.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이 책은 같은 제목으로 다양한 책들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본 책은 개정판으로 2006년에 나온 초판본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최근의 사례와 통계가 덧붙여지고, 환경 실천법에도 새로운 내용이 담긴 것 말고도 논술 전문가의 도움으로 ‘생각 키우기’라는 코너가 있어서 학습용 부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학습용 부교재를 추가한 것은 이 책이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책을 읽으면 혼자서도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니 2011년 이전에 나온 책을 보시는 분들은 제가 본 책과 조금 다르실 겁니다.
또 이 책은 2015년 11월《어린이를 위한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라는 책으로도 나왔습니다. 책의 판형은 키우고 20가지 주제에서 10가지로 주제를 줄인 대신 스토리텔링을 더하고 정보를 그림으로 펼쳐놓는 등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었습니다.
처음에《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를 볼 땐 초등학생이 보기에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긴 했지만 학습용 부교재 ‘생각 키우기’의 내용이 초등 고학년 정도면 할 수 있겠다 여기고 당연히 이 책이 어린이 책이라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렸다니 청소년 책인가 싶었습니다. 나중에 모임에서 확인해 보니 도서관에 따라 이 책을 어린이실에 있기도 하고, 문헌정보실에 있기도 하더군요.
아무튼 ‘어린이를 위한’ 책은 책의 모양새 만큼은 확실한 어린이 책입니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쉽지 않다고 합니다.(참고로 저는 이 책은 보지 못했습니다.) 스토리텔링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는 정보의 양에 조금은 질릴 수 있다고 합니다. 스토리텔링도 너무 빤하다고 하고요. 정보다 넘치다 보니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 남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어린이 정보 책에서 이런 현상은 아주 흔합니다. 뭐든 많이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정보가 넘쳐나는 것이지요. 하지만 과유불급! 넘치는 건 부족한 것과 같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지점입니다.
《지구를 죽이는 1초 지구를 살리는 1초》(하오광차이 글/페드로 페니조토 그림/이재훈옮김/미세기/2010. 5. 30.)은 수치를 통해 우리의 환경이 어떤 상황인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과 비슷한 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이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큰 숫자 대신 지구 전체를 100으로 가정했을 때의 숫자로 보여준다면 이 책은 1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지구를 죽이고 있는지를 큰 숫자로 보여줍니다.
만화 형식의 가벼운 느낌의 그림 덕에 주제가 주는 무거움은 뒤로 한 채 아이들이 쉽게 손에 들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는 책입니다. 재밌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환경 문제의 심각함을 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론 아쉽기도 합니다. ‘이 책에 나오는 큰 숫자들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듭니다. 이 책은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보다 글의 양도 적습니다. 초등 1-2학년 정도 혹은 5-6세 아이들도 가볍게 손에 들 수 있는 책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이 책을 손에 들기엔 숫자가 주는 압박감이 느껴집니다.
또 ‘지구를 죽이는 1초’에 대한 사례는 많지만 ‘지구를 살리는 1초’에 대한 사례는 너무 빈약합니다. 나무를 심고 있는 다는 사실(그것도 우리가 1초 동안에 베어내는 나무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은 양의) 정도? 그러다 보니 조금은 절망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태양에너지 같은 대체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거나 지구를 살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힘쓰고 있다는 점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이 많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살릴 수 있는 사례가 빈약하다보니 그 말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집니다. 두 권의 책을 읽고 나니 새로운 형식의 환경 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커져갑니다. 환경문제는 어떻게 접근해도 결코 쉽지 않은 주제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좀더 달라졌으면 싶습니다.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을 구조적으로 접근해 보여주는 책, 실천 운동이 단순히 개인의 일방적인 실천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활동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함을 보여줄 수 있는 책이 간절히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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