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이야기/신화를 읽으며

서천꽃밭을 만나다

오른발왼발 2017. 12. 10. 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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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꽃밭을 만나다

                            

                               

      

서천꽃밭과 광시좡족의 여신 무리우쟈의 꽃밭


중국 광시좡족의 창세여신 무리우쟈는 꽃에서 태어나 화산에 있는 천상의 꽃밭에서 수많은 종류의 꽃들을 기르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꽃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인간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이라고 합니다.

즉 광시좡족 사람들은 천상의 꽃밭에 있는 꽃의 영혼을 인간세상에 보내줌으로써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붉은 꽃을 보내면 여자아이가, 하얀 꽃을 보내면 남자아이가 태어난다고요.

여기서 잠깐 《중국 소수민족 신화기행》(김선자 글/안티쿠스)에 나오는 무리우쟈 여신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여신이 꽃밭의 꽃들에게 물을 주고 잘 돌봐주면 인간세상에서 자라나는 아이도 건강하고 생기가 있었다. 그러나 물이 부족하거나 꽃에 벌레가 생기면 인간세상의 아이도 병에 걸렸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스공(좡족의 무당)을 청해 영혼 여행을 하곤 했다. 스공이 직접 천상의 꽃밭에 가서 병에 걸린 아이의 꽃을 찾아내어 꽃에 생긴 벌레를 없애거나 물을 주면 꽃이 생기를 되찾고, 아이도 다시 건강하게 되었다. 꽃의 여신이 하얀 꽃과 붉은 꽃을 함께 심으면 인간세상의 남자와 여자는 혼인하여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이 죽으면 다시 꽃이 되어 천상의 꽃밭으로 되돌아갔다.


그래서 무리우쟈 여신은 꽃할망, 즉 ‘화포’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딸이 아이를 낳으면 외할머니는 산에 가서 싱싱한 꽃을 꺾어와 그것을 산모의 침대 머리에 꽃아 ‘화포’를 위한 신위를 만들었고요.

이쯤 되니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떠오르는 우리 신화가 있습니다. 바로 서천꽃밭과 삼신할망입니다.



서천꽃밭과 삼신할망


우리 이야기에서 삼신할망도 서천꽃밭의 꽃으로 아기들을 점지합니다. 푸른 꽃은 아들을 낳고, 하얀 꽃은 딸을 낳고, 붉은 꽃은 오래 살고, 검은 꽃은 일찍 죽고, 노란 꽃은 여러 사람을 위하는 꽃이지요.

삼신할망은 단지 아기를 점지해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기가 15살 정도 될 때까지 보살펴 주는 것도 삼신할망입니다. 삼신할망이 마마대별상과 맞서 싸우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삼신할망에게 정성을 다했지요. 삼칠일 동안은 날마다 미역국에 메를 지어 삼신상을 올렸지요. 백일이나 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방마다 차이는 있지만 곡식을 담은 자루나 단지를 신체로 모셨고요. 정말이지 광시좡족의 무리우쟈 여신과 삼신할망은 꼭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삼신할망이 아이들을 점지할 때 쓰는 꽃이 있는 서천꽃밭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 옛이야기나 신화에는 서천꽃밭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종종 나옵니다. 그때마다 주인공들은 아주 힘들게 찾아갑니다. 서천꽃밭은 사람들이 찾아갈 수 없을 만큼 멀고도 험난한 곳입니다.

망자가 시왕에게 갈 적에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들을 지나 돌다리 삼천삼백쉰여덟 간과 나무다리 삼천삼백쉰여덟 간을 지나면 세 갈래 길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오른쪽으로 가면 극락이고, 왼쪽으로 가면 지옥이고, 가운데 길이 서천서역국, 즉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서천꽃밭은 엄밀한 의미에서 저승의 공간입니다. 산 사람은 오지 못하는 곳이지요. 버리데기가 무조신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산 사람은 갈 수 없는 서천서역국에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승의 공간이라 해도 죽은 영혼들이 있는 곳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영혼은 극락 혹은 지옥으로 가기 때문이지요. 즉, 극락도 지옥도 아닌 저승의 한 공간, 그곳이 바로 서천꽃밭입니다.

‘꽃밭’이라면 생명이 피어나는 곳 같은데 저승의 공간이라니 조금 의아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릇 죽음과 생명은 하나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힌두의 시바신이 파괴의 신인 동시에 창조의 신이고, 고대 이집트의 저승 세계를 다스리는 이시리스의 모습은 생명을 상징하는 초록색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포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에게 잡혀 저승에 가서 석류 몇 알을 먹은 탓에 이승으로 온전히 올라오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에서 반반씩, 즉 죽음과 삶을 번갈아 살아내야 했습니다. 이런 페르세포네를 씨앗의 삶으로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땅속에 묻힌 씨앗은 죽어서 싹을 틔워 더 많은 생명을 피어내기 때문이지요. 이는 페르세포네의 엄마 데메테르가 곡식의 신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죽음과 생명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 이야기에서도 꽃은 저승과 관련이 깊습니다.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에서 대별왕과 소별왕은 꽃피우기 내기를 합니다. 대별왕의 꽃은 활짝 피어나고 소별왕의 꽃은 시들어버리지만 소별왕이 꽃을 바꿔치기 하는 바람에 대별왕은 저승을 다스리게 됩니다.

<삼신할망> 이야기에서도 명진국 따님애기와 동해 용왕국 따님애기가 삼신할망 자리를 놓고 꽃 피우기 내기를 하지요. 서천서역국 잔모래밭에 꽃씨를 심었는데 명진국 따님애기가 심은 꽃은 번성하여 인간할망이 되었고, 동해 용왕국 따님애기의 꽃은 시든 꽃이 되어 저승할망이 되었습니다. 명진국 따님애기 삼승할망은 한쪽 손에는 번성꽃, 한쪽 손에는 환생꽃을 들고 인간 세상에 좌정을 하지요. <대별왕 소별왕>과는 달리 속임수가 없었던 터라 명진국 따님애기가 인간할망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할망이든 저승할망이든 저승의 영역에 속해있는 건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아무튼, 서천꽃밭의 유래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삼신할망은 춘하추동 따듯한 극락 땅을 찾아내어 잡초를 베어내고, 다듬은 돌로 대를 쌓고 서천꽃밭을 만듭니다. 옥황상제에게 꽃씨를 얻어 삼월삼짇날에 오색꽃을 오방에 심었지요. 15살 이전에 죽은 아이들은 이곳 서천꽃밭에서 꽃에게 물을 주는 일을 하다가 때가 되면 저승으로 넘어간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정성껏 기른 꽃이 바로 삼신할망이 아이를 점지해줄 때 쓰는 꽃이지요.



서천꽃밭을 지키는 꽃감관


그런데 아마도 서천꽃밭의 꽃들이 단지 아이를 점지하는 데 쓰이는 꽃들만 있었던 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옛이야기와 신화 속에는 죽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서천꽃밭에 있는 꽃을 가지러 오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버리데기>이지요. <자청비>, <문전본풀이>에서도 서천꽃밭의 꽃을 가져와 죽은 이를 살리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아마도 서천꽃밭의 꽃들 가운데 아기를 점지하는 꽃은 반드시 삼신할망의 손을 거쳐야 했지만, 그 외에 또 다른 생명의 힘을 가진 꽃들은 꼭 삼신할망의 손을 거치지 않아도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런 서천꽃밭에 대한 이야기들이 멀리멀리 퍼져나갔고, 그래서 서천꽃밭의 꽃들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점이지요. 물론 누구나 서천꽃밭의 꽃들을 손쉽게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은 저승으로 가는 길이고, 보통의 인간들이 찾아갈 수 있는 길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니 서천꽃밭의 꽃들을 가져가는 사람들은 이런 힘든 길을 감내할 만큼 절실하게 서천꽃밭의 꽃들이 필요했던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삼신할망 입장에서는 자신이 없는 사이에 자신의 꽃밭에서 꽃을 훔쳐가는 자들로부터 꽃밭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삼신할망은 옥황상제께 꽃을 지킬 수 있는 꽃감관을 청합니다.

이렇게 해서 꽃감관으로 뽑힌 사람이 김정국의 아들 사라도령이었습니다. 사라도령이 임정국 딸 원강아미와 혼례를 치르고 뱃속에 첫 아기를 배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니 옥황상제의 명이라 해도 쉽게 따라 나설 수가 없었지요. 하지만 사라도령이 아무리 가고 싶지 않다 해도 서천꽃밭에서 삼차사가 잡으러 왔으니 아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원강아미는 기를 쓰고 사라도령을 따라가지만 힘에 겨워 더 이상 가질 못하고 천년장자 집 노비로 들어갑니다. 원강아미는 아들을 낳아 사라도령이 알려준 대로 이름을 할락궁이라 짓습니다. 할락궁이는 자라서 아버지를 찾아갑니다. 할락궁이는 무사히 아버지를 만나지만 어머니 원강암이는 죽임을 당한 뒤였지요. 사라도령은 할락궁이에게 뼈오를꽃, 살오를꽃, 오장육부간담만들꽃, 말가를꽃, 시들꽃, 생불꽃, 불붙을꽃, 멸망꽃, 악심꽃과 함께 때죽나무 회초리를 주고 어머니를 살려내라 명합니다. 천년장자 집으로 돌아간 할락궁이는 웃음웃을꽃을 내서 천년장자 일가족이 창자가 끊어지도록 웃게 한 뒤 멸망꽃을 내어서 죽게 만들고, 또 불붙을꽃을 내어놓아 불이 붙어 죽게 만듭니다. 그리고 어머니 원강암이의 뼈를 찾아 뼈오를꽃, 살오를꽃, 말가를꽃, 숨쉴꽃, 오장육부만들꽃을 차례로 문지른 뒤 때죽나무 회초리로 세 번을 때리니 원강아미가 부시시 일어나며 말합니다.

“아이고, 설운 애기야. 봄잠을 너무 잤구나.”

할락궁이는 어머니 원강아미와 함께 서천꽃밭으로 갑니다. 원강아미는 저승아망이 되어 서천꽃밭 어린아이들에게 밥도 주고 물도 주며 거느렸고, 사라도령은 저승아방이 됩니다. 그리고 할락궁이는 아버지를 이어 서천꽃밭의 꽃감관이 되었고요.

서천꽃밭을 지키는 꽃감관은 이렇게 생겨났습니다. 그럼 그 뒤로 서천꽃밭의 꽃은 안전했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서천꽃밭의 꽃을 가져온 이야기들이 꽃감관이 생기기 전인지 아님 후인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자청비> 이야기를 보면 자청비가 꽃감관인 황세곤간을 속이고 꽃을 훔쳐가는 장면이 나오니까요. 제 아무리 서천꽃밭이 저승에 있고 또 지키는 꽃감관이 있다 해도 완벽하게 지켜질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꽃감관의 역할은 실패하고 만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아주아주 가끔 사고가 나는 것은 인간의 절실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나 절실하게, 서천꽃밭의 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천재일우처럼 기회가 올 수 있다는 희망이 필요하니까요.



꽃이 사람이고, 사람이 꽃이고


서천꽃밭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정지원의 시가 떠오릅니다. 안치환이 노래로 만들어 부르면서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많았지요. 이 노래가 한참 인기가 있던 시절, 주위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긴 뭐가 아름다워? 사람만 없으면 세상은 아름다워질걸?”

괜히 한바탕 설전이 오고가기도 했지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다 부질없는 말싸움이었던 것 같습니다. 꽃이 사람이고, 사람이 꽃이고, 꽃에 생명이 담겨 있고, 사람의 생명이 꽃에 달려있으니 꽃과 사람을 서로 떼어내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어느새 옛이야기를 공부한지 이십 년이 넘었습니다. 숱하게 서천꽃밭이란 말을 들어왔는데도 그동안 어쩜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싶어집니다. 아마도 광시좡족의 무리우쟈 여신의 꽃밭 이야기를 보지 않았다면 아직도 서천꽃밭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보던 우리 신화가 아니라,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알고 싶어서 중국 소수민족 신화를 봤는데 오히려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던 우리 신화 속의 공간을 발견한 셈입니다. 참으로 기쁜 일이었습니다. 다시 우리 신화에 대한 관심이 자꾸자꾸 솟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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