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열한 살 병규의 흥미로운 매미 관찰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박성호 글/김동성 그림/사계절)
언제부턴가 매미는 도시에서 여름을 알리는 존재가 됐다. 날씨가 더워지면 어느 순간, 귀가 따갑도록 우는 매미 소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여름방학이면 매미채를 휘두르며 매미를 잡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게 매미는 그렇게 반가운 곤충은 아니다. 하루종일 귀가 먹먹해지도록 울어대는 울음소리 때문이다. 낮 동안 쉬지 않고 울어대던 매미는 날이 저물어도 계속 울어댄다. 때문에 매미는 도심 소음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매미 소리를 옛날처럼 시원하게 느끼는 사람은 없다. 요즘 매미는 대부분이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내는 말매미인데다가 밤에도 쉬지 않고 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사람의 입장이다. 말매미는 주로 아열대지방에서 사는 매미인데 도심의 기온이 높아지면서 그 서식지와 개체 수를 늘릴 수 있었던 거고, 밤에도 울 수밖에 없는 건 도심의 밤이 가로등이나 불빛 때문에 깜깜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원인은 사람이 제공하고 말매미만을 탓하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사람들은 매미에 대해 불평은 하지만 막상 그 매미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도심에서 늘 있는 소음의 하나처럼 그냥 당연하게(!) 여기고 지낼 뿐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매미 소리가 나면 매미채를 휘두르기는 하지만 그저 매미를 잡는 그 순간만을 즐길 뿐이다.
이 책은 바로 도심 한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말매미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11살 병규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병규는 어느 날 현관문 앞에 떨어져 있는 매미가 죽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지겨운 녀석, 그렇게 울어대더니 꼴좋다 생각했지만 막상 죽고 나자 가엾다는 생각도 들면서 매미의 삶과 죽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거의 일년에 걸쳐 매미 관찰을 시작한다.
책은 병규의 관찰일기 형식으로 펼쳐진다. 아니, 그냥 평범한 관찰일기하고는 다르다. 매미 관찰을 시작한 뒤 생활 자체가 매미 중심으로 바뀐 병규의 생활을 생각한다면 그냥 일기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매미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병규의 생활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그래서 관찰일기 형식이지만 일기 속에는 병규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 한편이 펼쳐진다.
이처럼 생태나 정보를 다룬 책에서 동화의 구성을 빌려오는 경우는 흔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생태를 어줍잖게 동화의 형식으로 꾸며내려고 하다 보니 이야기는 억지스러워지고 정보는 빈약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평범한 아이를 내세워 그 아이의 생활과 눈높이에서 매미에 접근해 들어간다. 그래서 자연스럽다. 병규가 했던 것처럼 읽는 아이들은 자신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매미에 대해 관심이 있던 아이들이라면 매미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고, 매미에 대해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라도 병규와 동일시하며 책을 읽어가면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매미의 관찰일기는 7월 24일에 시작되어 이듬해 7월 1일에 끝난다. 1년에 걸친 관찰 기록이다.
관찰을 시작한 첫 날, 병규는 매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기껏 발견한 건 매미 허물이었다. 처음엔 허물 하나였지만 일단 매미 허물을 발견하고 나서 보니 곳곳에 널려 있는 매미 허물이 눈에 들어온다. 살아있는 매미를 본 건 매미를 쫓아다닌지 3일이 지난 뒤였다. 병규는 궁금해진다. 그 많은 허물을 벗고 나온 매미는 모두 어디에 있었던 걸까? 이제 병규는 허물을 벗고 나오는 매미, 즉 땅을 뚫고 나와서 애벌레의 삶을 마감하고 매미의 삶의 시작하는 지점에서 매미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끄러운 매미지만 막상 관찰을 하려니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든지, 매미 허물이 한번 눈에 들어오자 곳곳에 널려 있는 매미 허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모습들이 영락없는 초보 관찰자의 모습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병규의 관찰은 하나를 발견하면 같은 것들이 연달아 보이고 이어서 막연한 궁금증이 구체적인 궁금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병규의 매미 관찰은 매미가 허물을 벗고 매미가 되고 알을 낳고 이듬해 이 알에서 애벌레가 태어날 때까지 쭉 이어진다.
병규가 매미를 관찰하며 도움을 얻는 인물들이 있다. 아파트 경비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농생물학과에 다니는 형. 세 인물은 각각 다른 지점에서 병규에게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 셋 가운데 가장 자연스럽게, 또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인물은 아파트 경비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매미 애벌레가 땅을 뚫고 나와서 허물을 벗는다거나, 매미 애벌레가 땅을 뚫고 나오는 시간은 6시에서 7시쯤이며, 매미 허물은 한약재로 쓰인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이런 정보는 할아버지의 삶의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매미 애벌레가 땅을 뚫고 나오는 시간은 바로 할아버지가 순찰을 도는 시간이라는 말에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경비 할아버지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매미를 관찰하는 병규의 자연스러운 모습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애벌레를 관찰하는 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모습이나,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관찰하던 매미가 비가 오면서 죽어버린 걸 보고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 등 아이다은 모습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런 아이의 심리를 바탕으로 매미를 알아가는 과정이 이 책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이 책은 병규의 관찰일기 형식이다 보니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해나가는 과정은 드러나지만 그 외의 정보에 대해서는 이야기 구조에서 빠질 수 밖에 없는데 이를 해결해주는 게 이야기 중간중간 나오는 정보 상자다. 이렇게 중간에 정보 상자가 나올 경우 이야기의 맥이 끊기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정보 상자를 무리하게 넣지 않으면서도 이야기와 긴밀한 연계를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정보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런 단단한 구성력은 작가가 이미 매미라는 정보에 대해 확실히 장악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1년 다큐멘터리 <한여름의 기록 - 반포 매미>를 제작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이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그러고 보니 11살 병규를 앞세워 매미에 대해 알아나가는 과정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도 싶다.
- 이 글은 2004년 9월 20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펴내는 격주간지《기획회의》 5호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