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크레용
나의 크레용
죠 신타 글, 그림/보림
아이들이 커가면서 꼭 거쳐가는 과정이 있다. 시기나 정도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그 과정을 빼먹는 일이란 좀처럼 없다.
아이는 손으로 뭔가를 자유롭게 집게 되면 하는 일이 많아진다.(물론, 엄마한테는 치워야 할 일이 더 늘어난다는 걸 뜻하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림 그리기(?!)다. 처음엔 손에 힘이 없어서 책이나 벽지에 조그맣게 그어놓는 정도의 수준이지만, 날이 갈수록 손에 힘이 붙으면서 누가 봐도 눈에 띄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색도 선명한 걸 좋아하고, 그림도 점점 커진다. 책에 조금씩 그리던 그림은 어느새 벽지며 장판을 장식하기 시작한다.
그림은 노래, 춤과 함께 아이의 본능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법인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를 가만 지켜보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짧은 시간이지만 얼마나 집중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림이 완성되면(!) 아이는 뿌듯함을 억누를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엄마에게 자기가 그린 그림을 자랑스럽게 보여준다.
안타까운 건 아이와 엄마의 입장이 다르다는 거다. 아이의 기분과는 달리 엄마는 아이의 낙서(!)를 참아내기가 어렵다. 벽지며 장판을 자주 바꿀 수도 없는데 아이가 벅벅 그어놓은 낙서는 여간 골치가 아니다. 더군다나 진한 크레파스는. 아이를 위해 벽지 위에 커다란 종이를 덧붙여 놓고, 아이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도록 배려도 해 보지만 그렇다고 아이의 낙서를 다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이들의 손은 어느새 종이 밖으로 뻗어나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결국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에게 야단을 치고 만다. 물론 아이들이 한두 번 야단맞는다고 그림 그리는 걸 포기하진 않는다. 하지만 계속 반복되는 야단에는 주눅이 들기 마련이다. 주눅이 든 아이는 그림과 점점 멀어진다.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아이에게 야단을 치기 전에 아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가만 들여다보고, 아이가 무얼 그린 건지 아이의 말을 들어보자. 그럼 아이는 엄마 눈에 낙서처럼 보였던 것들을 하나씩 가리키면서 말한다. 이건 뭐고 저건 뭐고 하며 말이다. 그림 속에는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이야기 세계가 들어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딱 알맞은 책이다.
커다란 크레용으로 코끼리가 쓰윽- 쓰윽- 그릴 때마다 그 그림은 연못이 되고, 불이 되고, 바나나가 된다. 코끼리가 얼마나 잘 그렸는지 다른 동물들은 깜박깜박 속고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코끼리가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는 않는다. 코끼리는 코로 크레용을 들고는 달려간다. 달려가면서도 긴 줄을 그리면서 말이다.
이 책의 그림은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크레용(원래는 크레파스와 다른 거지만 우리는 흔히 같은 걸로 생각합니다.)으로 정말 쓰윽- 쓰윽- 그려놓은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이 책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직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려보지 못한 아이라면 분명히 이 책을 보자마자 크레용을 달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럼, 망설이지 말고 아이 손에 크레용을 쥐어주자. 아이들이 맘껏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