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이해하는 전쟁
그림책으로 이해하는 전쟁
'전쟁'이란 말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상하게도 전쟁은 너무 쉽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이라크와 미국의 전쟁도 마찬가지지요. 전쟁은 아주 먼 곳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미사일은 한참을 날아가 정해진 목표물을 파괴합니다. 공격을 받는 쪽에서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공격을 하는 쪽에서 볼 땐 그저 단추 하나를 누른 것에 불과하지요. 마치 게임에서 목표물 명중시키기 위해서 단추를 눌러대는 것 같습니다.
뉴스를 통해 보는 전쟁의 모습도 비슷합니다. 캄캄한 가운데 터지는 미사일을 보며 어린아이들은 불꽃놀이를 연상하기도 합니다. 공격을 하는 미국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반하기도 하지요. 아이들이 주로 보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는 전쟁의 참상을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면 전쟁에 대해 잘못된 생각과 환상을 품기도 하고, 전쟁을 마치 게임처럼 여기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쟁을 이야기하는 그림책들은 아이들에게 전쟁의 본질과 참상을 깨닫게 해 줍니다. 책에 나오는 나라는 대개 가상의 나라입니다. 사건도 그렇지요. 하지만 가장 밑바탕에 흐르는 본질은 지금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전쟁은 아이들의 세계에서 비껴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전쟁 가운데 가장 고통을 당하는 건 바로 아이들이지요. 그런 점에서 아이들에게도 전쟁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괜히 전쟁에 관한 책을 보여주고 억지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필요는 없을 겁니다. 다른 그림책을 읽어주듯 자연스럽게 읽어주고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게 해 주는 게 가장 좋지요. 생각할 거리가 많은 만큼 아이들은 스스로 묻기도 하고, 묻지 않아도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할 겁니다. 때론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가간의 전쟁에 대해서, 혹은 아이들 세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전쟁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왜?>(니콜라이 포포프/현암사)는 전쟁의 시작과 끝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표지도 그렇지만 책을 펼치면 먼저 푸른 벌판에 꽃을 들고 평화롭게 앉아 있는 개구리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전쟁을 다룬 책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만치요.
그런데 개구리가 앉아 있는 곳 가까운 곳에서 쥐 한 마리가 땅을 파고 나옵니다. 손에는 우산을 들고요. 쥐는 개구리가 갖고 있는 꽃을 빼앗아갑니다. 전쟁의 시작입니다.
다음엔 개구리 세 마리가 쥐 한 마리를 공격해서 꽃과 함께 쥐가 갖고 있던 우산을 차지합니다. 다시 쥐 세 마리가 개구리들을 공격하고요.
이렇게 꽃 한 송이 때문에 시작된 전쟁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규모가 커지고 비극으로 치닫게 됩니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건 검게 타버린 들판과 동족의 죽음, 망가진 우산뿐이지요. 이 책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전쟁이 몰고 오는 참혹한 결과를 그림만으로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전쟁의 시작이 아이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사건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합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상대방 걸 갖고 싶어서 뺏는 것과 닮았다고 할까요?
하지만 아이들끼리는 그저 툭탁거리며 치고 받는 듯 해도 조금 시간만 지나면 큰 무리 없이 그냥 마무리가 되곤 합니다. 대개 큰 싸움으로 번지는 건 누군가 개입을 하고 한쪽 편을 들면서죠.
그 편들기는 대개 옳고 그름은 뒷전이고 '내 친구' '내 아이'를 괴롭히는 상대에 대한 응징의 성격을 띨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사건의 본질은 잊혀지고 상대에 대한 분노만 남을 때도 생기지요.
<왜?>라는 제목처럼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책입니다.
<전쟁>(아니이스 보즐라드 글, 그림/비룡소)은 제목처럼 전쟁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문제와 해결 방법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책은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전쟁이 얼마만큼 맹목적인가를 먼저 이야기하고 있지요.
빨강 나라와 파랑 나라는 왜 전쟁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날마다 전쟁을 합니다.
어느 날, 빨강 나라의 왕자는 파랑 나라의 왕자 파비앙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하지만 파비앙은 전쟁에도 관심이 없었고, 물론 말을 타는 것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결국 파비앙은 약속 장소에 나가면서 말 대신 암양을 타고 나갑니다. 그런데 정말 빨강 나라 왕자는 어이없이 죽고 맙니다. "매애애!"하고 우는 양 울음소리에 말이 놀라 앞발을 번쩍 드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만 거죠.
빨강 나라 군인들은 창을 겨누고 아우성을 쳤고 놀란 파비앙은 뛰어 달아납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달아난 왕자는 아버지인 파랑 나라의 왕한테서 추방당하고 맙니다.
비로소 전쟁에서 벗어나게 된 파비앙은 할 일을 찾습니다. 빨강 나라, 파랑 나라 두 나라에 편지를 보내는 거죠. 두 편지의 내용은 똑같았습니다. 자신은 노랑 나라로 왔고, 굉장한 군대를 갖고 있으니 내일 아침 전쟁터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었죠. 하지만 약속 장소에서 만나게 된 건 빨강 나라와 파랑 나라였죠. 두 나라는 노랑 나라에 대항하기 위해서 동맹을 맺고, 그곳에서 노랑 나라 군대를 기다립니다. 하루, 이틀, 사흘…… 지나면서 군인의 아내들이, 여자들과 아기들이, 심심해하는 아이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전쟁터는 어느새 마을처럼 변해갑니다. 파비앙이 군대 없이도 전쟁을 끝낸 거지요.
파랑 나라에서는 겁쟁이로 보였던 파비앙이 사실은 용기와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게 반갑습니다. 제목부터가 굉장히 무거워 보이고 글이 많기는 하지만 파랑, 빨강, 노랑색을 테마로 한 그림이 선명하게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책입니다.
<새똥과 전쟁>(에릭 바튀 글, 그림/교학사)은 전쟁이 얼마만큼 어처구니없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전쟁은 새똥 때문에 일어납니다. 어느 날, 빨간 나라 임금과 파란 나라 임금이 산책을 하고 있을 때 날아가던 새들이 싼 똥이 두 임금의 콧등에 떨어진 거죠. 처음에 두 임금은 소리내어 웃습니다. 하지만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집니다.
"한 나라의 임금이 다른 나라 임금의 코에 묻은 새똥을 보고 웃다니!"
"누가 할 소리. 이건 전쟁감이요!"
전쟁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에게는 새똥 이야기는 쏙 빼고 엉터리 명분을 내세웁니다.
"파란 나라는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소. 게다가 성이 우리랑 너무 가까이 있소."
전쟁은 계속되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지만 두 나라 임금은 전쟁을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전쟁은 계속되어야만 했지요. 두 나라 사람들은 서로 땅굴을 파서 상대의 성을 점령합니다. 하지만 성만 바뀐 셈이 되고 말았지요. 결국 두 나라는 땅에서 만나 결판을 짓기로 합니다. 그런데 마주 서고 보니 파란 나라 아이들은 빨간 나라 사람들과 함께 있고, 빨간 나라 아이들은 파란 나라 사람들과 함께 있습니다. 전쟁 동안 아이들을 까맣고 잊고 있다보니 성이 바뀌자 이렇게 되고 만 거죠.
아이들은 서로 어울려 함께 놀고, 사람들은 창과 깃발을 내려놓습니다. 평화를 바라지 않는 건 두 임금뿐이었지요. 두 나라 사람들은 두 임금에게 장기판을 주고 장기판 위에서 전쟁을 벌이게 하고 다시 평화를 되찾습니다. 이제 빨간 나라와 파란 나라는 하나가 됩니다. 빨간 성, 파란 성 대신 빨간 집과 파란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마을이 생겼으니까요.
이 책을 보고 있다보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전쟁들도 이렇게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은 따로 장기판을 주고 떼어놓던지 하고 말이에요.
<꼬마 구름 파랑이>(토미 웅거러 글, 그림/비룡소)는 앞서 책들과는 조금 다른 색을 지녔습니다.
꼬마 구름 파랑이가 자신의 온 몸을 바쳐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내용이지요.
파랑이는 걱정도 없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꼬마 구름이었지요.
다른 모든 구름이 비를 내리고 천둥번개를 내뿜어도 까딱하지 않았고요. 대신 매일매일 무럭무럭 자라며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자기 몸 안으로 들어온 모든 것들을 파랗게 물들이곤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랑이는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며 싸우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결심을 합니다. 비를 내리기로 말이에요.
파랑이는 비를 내리고, 내리고, 또 내려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다 내립니다.
파랑이는 사라졌지만 대신 도시에 타오르던 불은 꺼지고 세상 모든 것들이 파랗게 변하고, 사람들은 서로서로 사이좋게 살게 됩니다. 파랑이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세상의 평화를 가져온 거지요.
비가 오는 날 사람들이 우산을 쓴 장면이 있는데 그 우산이 사람들 머리 위에 박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장면이 너무 끔찍해서 보여줄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장면은 비가 내려도 나만 비를 피하면 된다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파랑이의 모습과 대비되도록 상징적으로 그려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들이 똑같이 파랗게 변한 것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처음 사람들의 싸움이 피부색 때문이었던 걸 생각한다면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된 거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문득 인간 방패를 자처하고 이라크로 들어간 분들이 떠오릅니다.
그 분들과 꼬마 구름 파랑이가 곧 하나가 아닐까 여겨지네요.
이렇게 전쟁과 관련된 그림책을 소개하다 보니 몇 가지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됩니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그렇기 때문에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때문에 어떤 명분을 내세운 전쟁이든지 전쟁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 <새똥과 전쟁>도 그렇지만 흔히 전쟁을 다룬 책은 빨간 나라와 파란 나라로 대비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꼭 우리 나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그 때문에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더욱 전쟁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또 아이들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건 바로 아이들 자신임을 알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전쟁은 바로 아이들의 현실 문제이기도 하겠지요. 그러고 보니 그림책에서 전쟁을 해결하는 사람들도 바로 아이들이네요. <전쟁>에 나오는 파비앙 왕자, <새똥과 전쟁>에서 두 나라의 화합을 이끌었던 아이들, <꼬마 구름 파랑>의 주인공 파랑이도 바로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아이와 함께 전쟁을 다룬 책들을 함께 보면서 아이들의 앞날을 고민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때론 곤혹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함께 고민하는 것이 이 땅에서 전쟁을 잠재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고, 또 아이의 미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니까요.
교원에서 발행하는 <플러스 맘> 5월호에 쓴 글입니다. 유아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더 많은 책들을 넣지는 못했습니다. 전쟁에 관한 그림책은 이밖에도 아주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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