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발왼발 2024. 3. 1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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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에서 벗어난 라푼첼

 

 

 

 

 

라푼첼,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를까?

상추, 높은 탑, 그리고 긴 금발의 머리카락이 아닐까?

 

상추

 

라푼첼의 엄마는 마녀의 정원에 있는 상추를 먹고 라푼첼을 낳았다. 라푼첼은 상추라는 뜻이다.

엄마가 먹었던 상추 그 자체가 된 라푼첼. 이렇게 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 지점으로 돌아가 보자.

엄마는 집 뒤에 있는 작은 창으로 마녀의 정원을 내려다본다. 마녀의 정원이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한 것을 봐서 창은 높은 담장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높은 곳에 있는 창에서 내려다보는 엄마. 어쩐지 라푼첼이 갇혀 있던 탑이 연상된다. 탑에 갇힌 라푼첼은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엄마와 라푼첼은 같은 처지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마녀의 정원에 있던 상추가 엄마의 눈에 띄었다. 엄마는 그 상추가 너무나 먹고 싶은 나머지 점점 초췌해져 간다. 엄마가 상추를 먹고 싶었던 건 임신으로 인한 입덧 때문이었을까? 보통 번역본에서는 임신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림형제 민담집(김경연 옮김/현암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옛날 한 부부가 살았다. 오랫동안 아이를 바랐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마침내 아내에게 조짐이 보였고, 이제 자애로우신 하느님께서 소원을 들어주시리라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표현이 애매하다. 임신을 한 건지, 아니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어쩌면 아직 임신을 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의 집은 생명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마녀의 정원은 싱싱한 생명력이 넘친다. 부인은 집 뒤에 있는 작은 창으로 내려다본 마녀 정원의 상추를 탐했다. 남편은 마녀의 정원으로 상추를 따러 가고, 그 뒤에 상추의 분신과도 같은 라푼첼이 태어난다.

역으로 생각해 본다면 남편이 상추를 따러 마녀의 정원에 가지 않았다면, 부인은 라푼첼을 낳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마녀의 정원은 아이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일 수밖에 없다. 마녀의 정원과 임신은 생산력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이런 의미에서 부인은 이미 임신한 상태였던 것이 아니라 마녀 정원의 상추를 먹음으로써 임신하게 된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마녀의 정원(마녀)은 부인이 내면에 억누르고 있던 또 다른 자아라고 할 수 있다. 마녀의 정원이 집 뒤쪽에 있다는 점, 또 아래쪽에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부인은 결혼은 했지만, 생산력의 바탕이 되는 에로스적 사랑을 터부시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창으로 마녀의 정원을 두려워하며 내려보듯이 말이다. 부부가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란, 상추를 보는 순간 먹고 싶다는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듯 휘몰아쳐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얻은 딸이 라푼첼이다.

 

높은 탑

 

마녀는 라푼첼이 열두 살이 되는 해에 숲에 있는 탑에 가둔다. 라푼첼의 엄마가 작은 창으로 마녀의 정원을 내려다봤듯이, 라푼첼 역시 작은 창으로 숲을 내려다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엄마의 삶이 라푼첼에게로 대물림된 것이다.

열두 살에 라푼첼을 탑에 가둔 건 말할 것도 없이, 이 시기가 성에 눈을 뜨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엄마(마녀)는 자신이 그랬듯이, 라푼첼이 성적인 것으로부터 강제적으로라도 보호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방법은 하나뿐이다. 세상과 고립되게 가두는 것!

라푼첼이 갇힌 탑은 층계도 문도 없이 작은 창만 하나 있었다. 참으로 이상하다. 층계도 문도 없는 탑에 과연 두 사람은 어떻게 올라갔을까? 라푼첼을 가둔 뒤에는 라푼첼의 머리카락를 타고 올라간다 해도, 처음엔 방법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결국 옛이야기는 상징으로 말한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다. 라푼첼이 갇힌 탑이란 실재하는 탑이 아니라 엄마 자신이 가져왔던 그릇된 성적 관념으로 만든 탑인 셈이다. 따라서 그 탑에서 라푼첼과 소통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엄마뿐이다. 엄마는 탑에 올라갈 때 라푼첼의 금빛 머리카락을 타고 올라간다. 여자의 머리카락은 예로부터 여성의 성적 매력이 집약된 부위로 여성성을 상징했다. 엄마는 라푼첼을 가두긴 했지만 라푼첼의 성적 매력을 보여주는 머리카락은 잘 관리하게 했다. 엄마가 라푼첼의 금빛 머리카락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은 마치 금빛 트로피를 들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딸의 여성스러운 매력을 자랑스러워하면서, 동시에 이 여성성이 에로스적 사랑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중적 마음을 갖고 있던 것이리라.

라푼첼이 스스로 볼 수 있는 세계는 탑의 작은 창으로 보는 세상이 다였다. 이것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작은 창을 통해 보이는 세계가 다라고 믿었을 테니 말이다.

 

긴 금빛 머리카락

 

하지만 세상은 라푼첼이 작은 창으로 보던 세계가 전부는 아니었다. 창밖에서는 또 다른 사건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왕자는 엄마가 라푼첼의 머리카락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봤고, 엄마가 했던 그대로 라푼첼이 있는 탑으로 올라간다.

엄마의 계산은 틀렸다. 엄마는 라푼첼을 탑에 가둠으로써 성적인 것들로부터 보호하려 애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둘은 곧 사랑에 빠졌고, 비단실로 사다리를 엮으며 도망칠 준비를 한다.

이를 눈치챈 엄마는 라푼첼의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 황야로 내쫓는다. 라푼첼의 여성성을 없애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의 발단이 된 라푼첼의 머리카락으로는 왕자를 꾄다. 라푼첼의 마음에 들어온 남성성도 없애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왕자는 탑에서 뛰어내리고, 가시덩굴에 눈이 찔려 눈이 멀고 만다.

정말 참혹하기 그지없다. 이 상황에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세상으로부터 라푼첼을 보호하려 애쓴 자신의 노고가 모두 헛된 것이 되었다며 한탄하고 있을까? 아니면 제멋대로 남자를 만난 라푼첼에 대해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 씩씩거리고 있을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라푼첼의 엄마만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남자를 잘못 만나 이렇게 비참해지지 않도록 세상으로부터 더욱 잘 보호해야겠다 결심하는 경우도 많을듯싶다. 나 자신도 이런 마음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몇 년을 비참하게 지내던 라푼첼과 왕자는 결국엔 만난다. 라푼첼은 쌍둥이 남매를 낳았고, 라푼첼의 눈물 두 방울은 왕자의 눈을 적셔 다시 눈을 뜨게 한다.

탑에서 엄마의 삶을 대물림하듯 살던 라푼첼이었지만 결국 엄마와는 다른 삶을 찾은 셈이다.

 

라푼첼은 쌍둥이 남매를 낳았습니다

 

앞의 이야기가 또다시 반복되는 셈이지만,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집 뒤에 있는 작은 창으로 마녀의 정원만을 바라보던 엄마는 딸 라푼첼을 낳았다. 그리고 엄마는 마녀가 되어 라푼첼을 탑에 가뒀다. 라푼첼은 오로지 탑의 작은 창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을 뿐이며, 소통하는 사람도 엄마뿐이다. 엄마는 라푼첼의 머리카락을 타고 탑으로 들어온다. 라푼첼의 여성성만이 강조되고, 거기에만 매달리는 상황인 셈이다.

하지만 어느 날 왕자가 탑에 올라옴으로써 라푼첼의 세상은 달라진다. 물론 머리카락을 잘린 채 황야로 쫓겨나지만, 머리칼은 여성성의 상징이었을 뿐, 라푼첼의 여성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쩌면 라푼첼은 겉으로 드러난 여성성을 상징하는 머리카락에만 집중하는 대신 집중할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됐을 것이다. 낯선 변화가 라푼첼을 성장하게 한 것이다.

왕자는 라푼첼의 머리카락이라 생각하고 탑에 올라가지만 기다리고 있던 건 마녀였다. 왕자가 탑에서 뛰어내릴 때 가시에 찔려 눈을 멀게 되는 것은 자신이 머리카락에만 정신이 팔려 제대로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듯 싶다. 그리고 왕자 역시 눈이 먼 채 몇 년간 황야를 헤맨다. 왕자 역시 많은 걸 생각하며, 자신을 돌아봤을 것이다. 그러니 왕자 역시 달라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 몇 년간 황야를 헤매다 만난다. 그 사이 라푼첼은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 여자아이 혹은 남자아이가 아니라 쌍둥이 남매다! 그리고 쌍둥이 남매를 보살핀다. 이는 라푼첼이 엄마와 달리 내면의 여성성과 남성성을 통합하며 성장했다는 의미라 생각한다. 라푼첼의 눈물 두 방울이 상처받은 남성성의 상징인 왕자의 눈을 다시 뜨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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