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밤에 낳은 아이
대단한 한 남자의 이야기
- 첫날 밤에 낳은 아이 -
오늘은 혼인날이다. 자, 이번 이야기만큼은 다들 신랑 입장이 되어 보자.
혼례를 잘 마친 첫날 밤, 갑자기 신부가 끙끙 앓더니 아기를 낳았다!
이 황당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를 하겠는가?
아마 대부분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혼인을 무효화시키지 않을까 싶다. 욕을 바가지로 하면서 말이다.
이보다 조금 나은 사람이라면 일단 가엾은 아이와 신부를 생각해 아기를 받아내는 일 정도는 했을 법 싶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남들은 감히 생각지도 못할 처신을 한 특별한 신랑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첫날 밤 신부가 아기를 낳자, 신랑은 이불 솜을 뜯어 아기를 감싸 돌다리 아래 가져다 둔다. 그리고 장모를 불러 미역국에 밥을 먹고 싶다고 부탁한다. 장모가 미역국을 가져오자 신랑은 이를 신부에게 먹이고, 날이 밝자 바로 신행길에 나선다.
돌다리 근처에 도착하자 신랑은 무슨 소리가 들린다며 하인에게 돌다리를 살피게 한다. 하인이 돌다리 아래에서 갓난아기를 데리고 오자, 신랑은 이 아이를 자기 아이처럼 키웠다.
정말 놀라운 처신이다. 과연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싶다.
하지만 궁금하지 않은가?
그 아이는 어떻게 자랐을지, 또 살면서 신랑이 신부를 추궁하지나 않았을지가 말이다.
신랑 신부는 두 아들을 더 낳았고 다른 부부들처럼 잘살았다. 첫날 밤 낳은 아이는 영특했고, 신랑은 그 아이를 자기 아들보다 더 사랑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 뒤 남편은 부인에게 그날의 일에 관해 물었다.
부인이 말했다.
이야기 판본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개는 달의 기운이 들어와서, 햇빛이 오줌에 닿아서, 오줌을 누다 지렁이가 닿아서, 꽃의 신이 와서 아기가 생겼다고 한다.
현대적 사고로 보자면 말도 안 되는 대답이다.
하지만 동정녀 마리아도 성령으로 잉태했고, 주몽도 햇빛이 유화부인에게 닿아서 잉태했고……, 이야기에서 찾으려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중요한 건 이렇게 잉태한 아이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정말 특별한 존재였을까?
그런데 알다시피 그런 존재들은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
아이는 서당 아이들의 놀림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에게 사실을 확인한 아이는 집을 떠난다. 아이는 중이 되어 공부를 계속하기도 하고 지리박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 아들은 집에 돌아온다.
아이가 집을 떠날 때 혹시라도 ‘지금까지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놈’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네가 나가서 어떻게 하려고?’하며 답답함 반 걱정 반의 시선을 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으론 아이의 입장에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엾어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어쨌건 아이는 집을 떠났고, 그동안 연락이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아이는 자신을 길러준 부모를 잊었던 걸까?
아이가 부모를 잊지 않았던 건 분명하다. 결국엔 다시 돌아왔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돌아온 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였다. 그것도 마치 묫자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묫자리를 구하려던 바로 그때 나타났다.
중이 되어 돌아온 아들은 좋은 묫자리를 봐두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친자인 두 아들과 어머니는 돌아온 아들의 말을 믿고 따른다. 하지만 묫자리는 먼 곳에 있었다. 그것도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었다. 돌아온 아들은 가족들에게 배를 타기 전 잠시 쉬고 식사라도 하라고 한 뒤, 아버지 시신을 태운 배에 올라 홀로 떠나버린다.
남겨진 가족들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시신은 찾을 길이 없었다.
가족들 처지에서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셈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그 집안사람이 성묘를 할 수 있게 됐던 건 3대손 혹은 5대손 대였다고 한다. 후손이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나 어느 섬에 가게 됐는데, 그 섬에 묘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비석엔 ○대 손, ○○가 성묘하러 올 것이라 쓰여 있었고 말이다.
후손은 깜짝 놀란다. 왜냐하면 비석에 적혀 있는 ○대 손, ○○가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괘씸함은 둘째치고, 궁금하지 않은가?
도대체 그 아들은 왜 아버지의 시신을 가족들에게서 떼어냈던 걸까? 그리고 먼 미래에 ○대 손, ○○가 이곳에 오게 될 것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던 걸까?
이야기의 화자는 말한다. 첫날 밤 신부가 낳은 아기를 기른 사람은 한양 조씨였다고 한다.
한양 조씨. 문득 조씨 한 명이 떠오른다. 조광조. 얼른 찾아보니 역시 한양 조씨였다.
많고 많은 조씨 가운데 왜 조광조가 떠올랐을까?
이야기의 배경이 언제쯤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첫날 밤 신부가 아기를 낳은 상황에서 신랑의 행동은 결코 일반적이지는 않다. 지금 시대에도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웬만큼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하지 못할 행동이다.
더구나 이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이야기에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하지만 그는 죽은 뒤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할 운명이었다.
아마 이런 대목이 내가 조광조를 떠올린 이유였던 것 같다.
실제로 조광조는 기묘사화로 전남 화순에 유배를 갔다가 사약을 받고 죽는다. 당시 역적이었던 조광조의 시신은 양팽손이 은밀히 수습하여 쌍봉사 골짜기 일명 조대감골에 가매장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뒤에야 고향인 용인에 매장되었다.
한편 경북 영양군에 있는 주실마을은 조광조의 후손들이 사화를 피해 정착하게 된 곳이라고 한다. 조광조가 사면 복권된 것이 선조 초라고 하니, 그 후손들 입장에서는 약 50년가량 성묘나 제사 같은 건 지낼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조광조의 시신은 후손들이 아닌 외부인에 의해 거둬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외부인이라고는 하지만 조광조와 아무 인연이 없는 인물일 수는 없다. 양팽손은 조광조와 함께 성균관에서 수학한 사이로, 조광조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친구처럼 지냈다고 한다. 그는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 · 김정 등을 위해 상소를 올렸다가 벼슬을 잃고 고향에 돌아왔는데, 그곳이 바로 조광조가 유배 온 지역이었다.
조광조 후손들 입장에서 양팽손은 가족 이상의 귀인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신적인 기운으로 잉태되었다가 첫날 밤 태어났던 바로 그 특별한 아이가 연상되기도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듯이 조광조와 관련 있는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설사 첫 출발이 그랬다손 치더라도 듣는 사람에 따라서 또 다른 이야기를 떠올릴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옛이야기를 보며 이렇게 특정 인물이 떠오르는 건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