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안 돼, 데이빗!》으로 유명한 그림책 작가 데이빗 섀논의 작품이다.
주인공 카밀라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아이다. 학교 가는 첫날, 친구들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옷을 마흔두 번이나 갈아입다가 그만 온몸이 무지개처럼 색색의 줄무늬가 되고 만다. 그리고 줄무늬는 그냥 가만 있는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말하는대로 시시각각 변한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할 때는 성조기 모양으로, 아이들이 “물방울 무늬를 보여 줘!”라고 소리치면 물방울 무늬로…… 그야말로 주위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바뀌는 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남들의 눈치만 보면서 잘 보이려 애쓰는 카밀라의 모습을 상징적이면서도 재밌게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이상하게 몸이 변해가면서도 친구들이 놀릴까봐 자기가 좋아하는 아욱콩을 안 먹으려하는 카밀라의 모습에서 알량한 자존심만으로 생각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의사며 과학자들이 다 와서 보고는 아무런 치료책은 내놓지도 못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아주 협소한(!) 지식만을 중얼거리며 상황을 악화시키는 모습을 보면서는 전문 지식이라는 미명아래 무능력함을 감추는 부조리함도 느낄 수 있었다.
상황 자체는 약간 엽기적이면서도 아이들이 흥미를 갖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나름대로 주제도 분명하다는 점, 그리고 사회에 대한 풍자는 물론이고 어른들까지도 많은 걸 느끼게 해 줄거라는 생각에 이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순간, 이 책이 정말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카밀라가 잘못한 점은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조금 과장되었을 뿐 누구나 저지르고 있는 잘못인데 그 모습이 변해가는 게 너무나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약을 먹고는 캡슐 모양이 되기도 하고, 나중에는 온 몸이 약초가 돋고 동물 꼬리가 생기기도 하다가 결국 방 안으로 흡수되어 방 자체가 되어버리는 게 어찌 보면 협박처럼 느껴졌다.
이 책을 그냥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망설여졌다. 기껏 작업이 다 끝났는데, 다시 다른 책을 골라서 한다는 게 솔직히 좀 번거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갈등하는 나를 보고 남편도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아니, 왜 하필 그 책을 읽어주려고 해? 난 그 책 너무 끔찍하던데.” 남편도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불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결국 아이에게 의견을 물었다.
“왜? 그 책 재미있는데.”
“이 책 무섭지 않니?”
“아니. 하나도 안 무서워. 웃겨.”
아이는 왜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아이의 말을 듣고 다시 책을 꺼내 들었다.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 건 왜일까? 한참 생각해 보니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인 듯 싶다. 만약 이렇게 과장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현실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아이들에겐 협박이겠지만 너무나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아이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적어도 카밀라처럼 지나치게 남의 눈치는 보지 않기 때문에 카밀라 같은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고, 사실 카밀라에게 생긴 일도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믿음으로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줬다.
아이들을 꾸준히 관찰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마지막 판단이 맞았을지 틀렸을지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빨리 읽어도 10분은 넘겨 걸리는 적지 않은 분량이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야기에 몰입하는 모습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읽어주기가 끝나고 책을 놔두고 같테니 두고 보라고 하자 아이들 몇 명이 한꺼번에 달려나와 서로 책을 가져간다고 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아이 가방에 이 책이 들어있었다. 왜 더 돌려가면서 보지 책을 가져왔냐고 물어보니, 1조 아이들만 이 책을 갖고 보고 다른 아이들한테는 보여주지도 않아서 화가 나서 가져왔다고 한다. 1조 아이들이 책을 독점하고 안 내놓으려고 했던 건 다시 생각하면 이 책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오래 갖고 있고 싶어했다는 뜻이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지금도 이 책이 조금은 고민이 되기는 한다. 내가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의견도 올려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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