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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이야기/신화를 읽으며

물길을 다스린다는 것 - '곤'과 '우'의 치수 이야기

by 오른발왼발 2016.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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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을 다스린다는 것

- ‘곤’과 ‘우’의 치수 이야기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모든 생명은 바다로부터 왔다. 모든 생명은 물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사람은 물론이고 많은 동물과 식물은 물이 풍부한 곳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때론 물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파괴하기도 한다. 세계 곳곳에서 전해오는 홍수 신화는 생명의 원천인 물이 한순간에 모든 생명을 멸망시키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예로부터 사람들에게 물을 다스리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살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물을 다스리는 일은 더욱 중요해졌다. 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세상은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물을 다스리는 일에 많은 신경을 쓰는 나라다. 중국 곳곳을 연결하고 있는 운하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 신화에는 ‘곤’과 ‘우’가 물을 어떻게 다스렸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요 임금 시절 온 세상이 물로 가득 찼다. 요임금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세상에 큰물이 들어 걱정이다. 누구를 시켜 이 홍수를 다스리게 할까?”

신하들이 곤을 추천했다.

“곤? 그자는 안 되네. 고집불통이야.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

그러나 신하들은 계속 곤을 추천했고 요 임금은 마지못해 그에게 일을 맡겼다.

곤은 열심히 제방과 둑을 쌓았다. 하지만 아무리 높게 쌓아도 물은 넘쳐흘렀고 사람들은 그 물에 휩쓸려 생명을 잃곤 했다. 곤은 고민에 빠졌다.

“둑과 제방을 더 높이 쌓아야 할 텐데, 그 많은 흙을 어디서 날라 온담?”

그때 거북이와 올빼미가 나타나 곤에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늘나라 궁전에 신비로운 흙이 있는데 그 흙을 조금만 떼어서 물속에 던져 넣으면 저절로 불어나서 엄청난 양이 된대요.”

“뭐라고? 그것이 어디 있다고?”

“천제의 궁전이요. 그 흙은 식양이라고 하는데 조금만 떼어 물속에 던져 넣어도 엄청나게 불어나요. 식양은 천제의 보물이라서 아주 비밀스러운 곳에 숨겨져 있어요.”

곤은 고민에 빠졌다. 식양만 가져오면 제방과 둑은 쉽게 쌓을 수 있겠지만 천제의 보물을 훔쳤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곤은 결심했다.

“제방을 완성하지 못하면 저 불쌍한 사람들은 계속 물고기 밥이 될 거야. 내가 벌을 받더라도 가져오는 수밖에 없다.”

곤은 결국 하늘나라 궁전으로 들어가 천제의 보물인 식양을 훔쳐오는 데 성공했다. 조금씩 떼어 물속에 던져 넣으니 식양은 정말 한없이 불어났고 제방은 마침내 높이 쌓였으며 홍수는 거의 다 다스려진 듯했다. 큰물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갔던 사람들이 내려왔고 높은 산 동굴 속으로 들어가 있던 사람들도 마을로 돌아왔다.

천제의 궁전은 난리가 났다. 식양이 사라진 사실이 발각된 것이다. 불같이 노한 천제는 범인을 잡으라는 명령을 내렸고 식양을 훔쳐간 자가 곤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화가 난 천제가 곤에게 식양을 훔쳐간 이유를 대라고 했다.

“인간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차마 볼 수 없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천제의 보물을 훔쳐간 것은 그 무엇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범죄였다. 천제는 명령을 내렸다.

“저놈을 죽여라!”

결국 곤은 우산의 들판에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천제가 식양을 거둬들이는 바람에, 쌓았던 제방과 둑은 무너졌고 인간은 또다시 홍수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었다.1


인간을 위해서 천제의 보물까지 훔친 곤은 흔히 프로메테우스와 견줘진다고 한다. 물을 막기 위해 열심히 제방과 둑을 쌓는 곤의 모습에서는 뭔가 비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공한 듯 보였던 곤의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쌓았던 제방과 둑이 한꺼번에 다 무너지자 인간들은 그대로 물에 휩쓸려가고 말았다. 인간을 위해 목숨까지 걸고 식양을 훔쳐왔지만 그것이 오히려 해가 되고 만 것이다.

이 경우 과연 곤에 대해 우리는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까? 일단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 전에 다음 이야기를 한번 보도록 하자.


곤이 죽고 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였다.

천제는 신하에게서 이상한 소식을 들었다.

“곤의 시체가 썩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죽은 지 3년이나 지났는데?”

곤이 죽은 지 이미 3년이나 지났지만 시체가 썩지 않는 게 천제는 걱정이 되었다. 혹시 요괴라도 되어 자신을 찾아올까 걱정이 되었다.

“오도를 가지고 가서 그놈을 베어버려라.”

오도는 천하의 보검이었다. 그것으로 곤의 시체를 베어버린다면 죽은 자가 더 이상 요사스러운 짓은 못할 것이었다.

천제의 부하는 명령대로 곤이 묻혀 있는 우산으로 가서 오도로 곤의 시체를 갈랐다.

그 순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갈라진 곤의 뱃속에서 용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머리에 날카로운 뿔이 달린 규룡이었다. 그 용이 바로 곤의 아들 우였다.

규룡은 용트림을 하면서 하늘로 솟아올랐고 곤의 시체는 다른 동물로 변하여 우산에 있는 우연이라는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아버지 뱃속에서 나온 우는 곤이 이루지 못했던 꿈을 하나하나 실현시켜 나갔다. 천제는 아버지를 이어 우에게 물을 다스리게 했고, 응룡을 보내 우를 돕게 했다.

아버지 곤이 물을 막는 작업에 목숨을 걸었던 것과 달리 우는 물길을 트는 방법을 사용했다. 응룡을 앞세워 튼튼하고 긴 꼬리로 땅에 금을 긋게 해, 금이 생겨난 곳으로 물줄기가 흘러가게 했다. 그렇게 물길을 트며 황하에 이르렀을 때였다. 키가 크고 얼굴이 희며 물고기 몸을 한 신이 갑자기 물속에서 튀어나왔다. 황하의 신 하백이었다.

“이것을 가져가시오.”

하백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푸른 돌 하나를 우에게 건네줬다. 그 돌에는 무언가 구불구불 그려져 있었다. 물길을 그려놓은 그림이었다. 우는 하백이 전해준 지도를 보며 응룡에게 물길을 트게 했다.

우는 다른 신들의 도움도 받았다.

용문산을 뚫다가 어느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동굴이 어찌나 깊은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어두워졌다. 우는 횃불을 들고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안쪽 깊은 곳에서 뭔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동굴 속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것은 머리에 뿔이 돋은 엄청나게 기다란 검은 뱀이 물고 있는 구슬이었다. 우는 뱀이 이끄는 대로 동굴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넓은 곳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검은 옷을 입은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얼굴에 뱀의 몸을 한 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우가 물었다.

“혹시 화서씨의 아들 복희가 아니신지요?”

“그렇소. 내가 바로 구하신녀 화서씨의 아들 복희요.”

복희는 치수라는 위대한 작업을 하고 있는 우를 존경해 그를 돕고 싶어 했다. 복희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우에게 주었다.

“이것을 가지고 가시오. 그대가 물길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거요.”

대나무 조각처럼 생긴 그것은 옥간이었는데 하늘과 땅의 길이를 잴 수 있는 일종의 측량 기구였다.

하도와 옥간을 손에 넣은 우는 더욱더 힘을 얻어 치수 작업을 해나갔다.


아버지 곤과 아들 우의 치수 방법은 전혀 달랐다. 아버지 곤이 물길을 막아 물을 다스리려 했다면 우는 물길을 열어 물을 다스리려 했다. 그리고 그 결과 곤은 실패했고 우는 성공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답답해온다. 흐르던 강물을 막아 강물을 죽이고만 4대강 사업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물은 자고로 흘러야 한다. 흐르는 동안 물은 스스로를 자정시키며 맑아진다. 그걸 억지로 막았을 때 물은 자정 능력을 잃고 만다. 녹색으로 변한 4대강이 그걸 증명해준다. 4대강 사업은 녹색이 생명의 색이 아니라 죽음의 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기막힌 사업이었다. 죽음의 강으로 변해버린 4대강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바로 강을 다시 흐르게 해주는 것이다.

천제가 곤이 사용한 식약을 거둬가자 다스려진 것처럼 보였던 물은 예전보다 더 큰 재앙을 가져왔다. 흐르지 못하게 온통 막아두었던 것이 사라지는 순간 물은 쌓이고 쌓였던 에너지를 한꺼번에 방출하며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물을 다스리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우는 아버지를 이어 새로운 방식, 즉 물길을 내서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물을 다스릴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주는 지점이다.

물론 곤이 막은 물길을 4대강 사업과 그대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4대강 사업을 시행한 이명박과 곤은 그 의도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곤의 의도가 인간들이 편히 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면, 이명박의 의도는 국민들과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 위한 것이었다. 곤의 의도는 순수했고 이명박의 의도는 불순했다.

곤의 뱃속에서 태어난 아들 우가 곤과는 다른 방식으로 물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곤의 순수한 마음 덕분일 것이다. 우는 죽어서도 3년 동안이나 썩지 않은 채 있던 곤의 몸에서 태어났다. 우를 곤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꼭 아들이라고만 하기도 애매하다. 어쩌면 우는 ‘새롭게 태어난 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곤은 죽어서도 자신이 실패한 까닭을 곰곰 생각해 보았고, 물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 새로운 방법, 즉 물길을 터서 물이 흐르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물길을 내서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한 우의 방법은 완전히 성공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상하게 박근혜 탄핵을 외치는 촛불집회가 떠올랐다. 촛불집회는 물길과 아무 상관이 없다. 아니,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박근혜의 탄핵과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들의 열망 또한 거대한 물결 이상으로 거대한 흐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촛불 파도타기의 장관을 연출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물길을 막으면 막을수록 그 안에 내재된 에너지가 커지듯 지금의 이 흐름 또한 막으면 막을수록 점점 더 커져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즘 박근혜를 보면 다른 때보다 더욱 안타까워 보인다. 이제는 너무 커져버린 흐름을 어떻게 막아보기엔 역부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이 흐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조금이나마 매를 덜 수 있는 길이라는 걸 모르니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다.

더불어 이 촛불의 흐름이 4대강을 죽음으로 내몬 책임자에게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곤과 우가 와서 직접 이명박을 심판해줘도 신이 날 것 같다. 이명박이 곤처럼 새로 태어날 마음은 전혀 없을 테니 말이다.


  1. 《중국신화전설 1 역주편》(위앤커/민음사)에 의하면 신화 속의 곤은 다르다고 한다. 신화 속에서 곤은 하늘나라에 있는 수많은 신들 중에서 진정으로 백성들의 고통을 가엾어 했던 유일한 신이었다. 곤은 홍수로 고통 받는 인간들의 죄악을 사하여 주고 홍수를 거두어들이기를 바랐다. 아무리 간청을 해도 소용이 없자 곤은 스스로 홍수를 막기 위해 올빼미와 자라의 이야기를 듣고 하늘나라의 보물 식양을 훔친다. 즉 역사 속 곤은 임금의 명령에 따라 물을 다스리고, 신화 속 곤은 스스로 인간을 불쌍히 여겨 물을 다스린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늘나라의 식양을 인간들을 위해 훔친다는 점에서 곤은 그리스신화의 프로메테우스와 견줘진다. 이런 점에서 비록 곤이 물을 다스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인간을 위하는 마음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굴원은 곤을 동정하고 아파하는 어조로 다음과 같은 시를 쓰기도 했다. // 곤은 인간들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으로 인해 생명을 잃었지. // 결국엔 우산의 황량한 들판에서 죽임을 당했네. // 바로 그 곧고도 타협하지 않는 성품 때문에 // 곤의 치수는 헛된 것이 되고 말았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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