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10호
<사기><역사>
색동회 손진태
먼 첨 달에는 우리 조선 사람과 인종상으로 가장 관계가 깊은 퉁구스 사람들과 몽고사람들의 생활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맨 처음 우리 조선에 들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하겠습니다.
먼 첨에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처음 할아버지들은 몽고 사람의 용감한 피와 퉁구스 사람의 튼튼한 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남에게는 결단코 지지 않고 싸움을 좋아하였습니다. 그러나 같은 동포들끼리와 형제들 사이에는 매우 어질고 순하였습니다. 그들은 결코 남의 것을 도적질도 아니 하였으며 거짓말도 아니 하였습니다. 그럼으로 밤이라도 문을 닫지 아니하고 자며 무슨 물건을 한데 두어 두었어도 그것을 몰래 가지고 가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 사람이 군사를 거느리고 조선을 치러 바다를 건너 들어온 일이 그때 있었습니다. 가만히 밤에 와서 보니 집집이 모두 문을 열어둔 채 곡식과 온갖 물건은 밖에 둔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도적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군사들은 「야, 조선 사람들은 정말 어진 사람들이로구나!」 하고 그대로 돌아갔습니다.
처음의 우리 할아버지들은 지금과 같이 훌륭한 집을 짓지 못하였으며 농사도 그렇게 많이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혹은 막을 치고 그 속에서 살았으며 혹은 움집을 파고 그 속에서 먹고 자고 하였습니다. 움집이란 것은 땅을 파서 방을 만들고 그 위에 지붕을 이는 집이올시다.
농사는 아주 조그맣게 지었습니다마는 그것은 모두 여자들이 지었습니다. 그리고 사나이들은 아침만 먹으면 활을 둘러메고 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산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은 사슴이며 멧돼지, 여우, 오소리, 너구리같은 기는 짐승들과 꿩, 참새 같은 날짐승들을 쏘아 잡았습니다. 그들은 사냥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총이 없음으로 활로 쏘아 잡고 창으로 찔러 잡았습니다. 또 그들은 개와 매를 반드시 데리고 다녔습니다. 개가 온 산으로 돌아다니다가 사슴이나 또 다른 짐승을 찾아내면 거기서 컹컹 짖습니다. 그러면 옛날 조선 사람인 우리들의 할아버지들은 활을 가지고 개 짖는 곳으로 쫓아갑니다. 활로 짐승을 쏘아 놓으면 짐승은 아파서 달아납니다. 짐승의 걸음을 사람으로는 따라가 낼 수가 없습니다. 그때 짐승의 뒤를 개들이 쫓아갑니다. 그래서 맞은 짐승의 넘어지는 곳에서 개들은 다시 컹컹 짖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개 짖는 곳으로 가서 죽은 짐승을 잡아옵니다. 개들은 냄새를 잘 맡음으로 짐승이 있기만 하면 찾아냅니다.
작은 짐승들은 우리 옛사람들의 밥이요, 반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짐승의 가죽은 벗겨 두었다가 추운 겨울에 옷을 지을 때에 안에도 대고, 밖에도 붙였습니다.
매는 꿩 잡기로 유명합니다. 꿩이 매를 보기만 하면 날개를 쓰지 못하고 터덕터덕 덤불 속으로 들어갑니다. 덤불 속으로 들어가도 머리만 덤불 속으로 박고 몸뚱이는 밖에 내어두는 것도 장관입니다. 그러면 매가 내려 덮쳐서 두 발 사이에 움켜쥐고 주인에게로 가지고 옵니다. 꿩의 고기가 맛난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올시다. 지금 사람들이 꿩 사냥도 하고 개 사냥도 하는 것은 장난으로 재미로 하는 것입니다마는 농사를 많이 짓지 아니 한 옛날 사람에게는 그것이 밥벌이였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장사도 하고 학교에도 다님으로 집들이 모두 한데 따닥따닥 붙어 있습니다마는 옛날 사람들에게는 장사도 없고 학교도 없음으로 여기 한 집, 저기 한 집 떨어져 살았습니다. 한 동네래야 다섯 집, 열 집에 지나지 못하였습니다. 이웃집 사람이 병이 나서 사냥을 못하게 될 때는 여러 사람들이 병난 집에 양식을 갖다 주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 집에 없는 것은 남의 집에서 얻어 왔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남에게 주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마는 그때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착한 이들이었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나 명절 날에는 서로 맛난 음식을 장만해서 이웃 사람들과 나눠 먹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모여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밤새도록 놀았습니다. 지금 어머니들과 누이들은 춤도 출 줄 모르고 노래도 할 줄 모르는 마치 벙어리 같습니다마는 그때의 어머니와 누이들은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불렀으며 아이들은 어머니들과 누이들에게 춤과 노래를 배웠습니다.
잔치가 있던지 농사를 지을 때에는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같이 바느질도 하고, 모도 심으며 가을도 거두었습니다. 그럼으로 무슨 일이든지 날래 쉽게 되고 재미스럽게 하였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돈을 받지 않고는 남의 일이라고는 손끝에도 걸지 않습니다.
다 같이 농사를 지었음으로 지금과 같이 이것은 너 땅이요, 저것은 내 땅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온갖 논과 밭이 모두 내 땅이요, 모두 남의 땅이었습니다. 같이 모를 심고 함께 풀을 매며 다같이 농사를 거두어서는 똑같이 곡식을 나눠 가져갑니다. 먹고 남는 곡식이 있으면 어려운 사람에게 모두 나눠주었습니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가서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병나 누워있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사람들이 가서 위로도 하고 먹을 것도 만들어다 주었습니다. 약도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남이야 병이 나서 죽거나 말거나 내 몸만 튼튼하였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며 의사들은 약값을 아니 가져가면 아무리 어려운 사람에게라도 감기약 한 첩을 아니 줍니다.
나그네가 지나치다가 아무 집에라도 들어가서 하룻밤 묵어가자고 하면 아무 집에서도 싫어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을 묵어가더라도 밥값이라고 받는 일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어질고 착한 그들이라도 한번 남의 나라와 싸우기만 하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내 먼저, 너 먼저 달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활쏘기며 창 쓰기를 연습하였습니다. 돌팔매 치기도 배우며, 씨름하기도 배웠습니다. 옛날의 싸움에는 활로 쏘고 창으로 찌르는 것이 많았습니다마는 때때로는 돌멩이로 저쪽 놈의 대가리를 때리기도 하고 가까이 닥칠 때에는 씨름으로 자빠트리기도 하였습니다. 또 때때로는 방망이 같은 것으로 두드려주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장난삼아 활도 쏘고 씨름도 합니다마는 그때 사람들은 마치 지금 병정들이 조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할 때에 쓰기 때문에 그런 것을 배웠습니다. 열아문해 전까지 평양에는 석전하는 풍속이 남아있었습니다 마는 그것은 씨름하는 풍속과 마찬가지로 옛날에 있던 것의 나머지 풍속이올시다. 아이들이 돌팔매 치는 것도 옛날 돌싸움 배우던 것의 엉터리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도적놈들이 저쪽에서 몰려들어오면 이쪽에서는 돌을 던지며 활을 쏩니다. 도적이 차차 가까이 오면 창으로 찌르고 방망이로 두드립니다. 그러다가 서로 맞닥치게 되면 씨름으로 자빠트립니다. 이렇게 야단을 치다가 도적놈들이 견디지 못하면 도적놈들은 달아나고 우리 군사들은 뒤를 쫓아갑니다. 도적을 쫓은 뒤에 군사들이 돌아오면 술과 먹을 것을 있는대로 내어놓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잔치를 합니다. 아이들과 부인들도 뛰고 구르면서 좋아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 군사들이 지는 날이면 큰일입니다. 아이들과 늙은이, 부인들은 집이고 무엇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재버리고 산골 속으로, 굴속으로 도망합니다. 그러면 도적들은 우리 동네로 와서 양식과 모든 물건을 도적해 가지고 도망갑니다.
옛날 사람들의 싸움은 모두 먹을 것을 얻기 때문이었습니다. 싸움이 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흉년이 들던지, 산에 짐승이 없게 되며 또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고기가 잡히지 아니 하면 먹을 것이 없습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굶어죽을 수도 없음으로 남의 것을 도적질하러 나갑니다. 그래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 × × ×
또 옛날 사람들은 글을 몰랐습니다. 그럼으로 지금과 같이 편지 같은 것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또한 편지하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러합니다. 지금 내가 멀리 있는 동무에게 먹을 것이 없으니 쌀을 닷 되만 보내달라고 할 때에는 나무막대기에다 금을 다섯 금을 파서 보냅니다. 또 혹은 굵다란 새끼 옆에다 가는 젓 새끼를 다섯만 꼬아서 보냅니다. 그러면 그것을 가져가는 사람은 저쪽에 가서 쌀만 달라고 하면 『하하 쌀 다섯 되로구나』하고 알아차립니다.
이런 옛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동생에게 돈 넉냥만 꾸어 달라고 나무때기에 금을 파서 보냈더니 그 동생은 돈이 있으면서도 없다고 보내주지를 아니 하였습니다. 그래서 형이 종이에다가 붉은 점과 푸른 점을 톡톡 찍어 보냈습니다. 그것을 본 동생은
『하하 형님이 매우 골을 내신 모양이로구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신 것을 보니』
하고 알아먹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음 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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