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가족의 갈등과 해소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김려령 글/노석미 그림/문학동네어린이/2007년)
2007년 한 해 어린이문학계에서 눈여겨 볼만 한 사건 가운데 하나로 작가 김려령을 등장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기억을 가져온 아이』로 마해송문학상을,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로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완득이』로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차지했다. 김려령은 이렇게 한 해에 세 개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그 이름을 알렸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 이미 아흔한 살이었던 증조할머니에게 항상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이십 년 뒤 자신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는 작가의 소개글이 인상 깊게 남는다. 엘리너 파전이 먼지 가득한 작은 책방에서 책을 읽으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듯이 김려령은 증조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듣고 자라며 이야기 세계를 키워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김려령의 이야기 속에는 할머니의 존재가 유난히 묵직하게 다가온다.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는 흔히 ‘배 아파서 낳은 대신 가슴으로 낳았다’고 표현하는 공개입양아에 대한 이야기다. 입양을 해도 아이가 모르게 하던 것과 달리 공개 입양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요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는 책이다. 공개입양은 입양을 한 아이가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충격도 줄이고,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나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나 다 똑같은 자식이라는 사실을 천명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작가는 공개입양아인 하늘이의 내면을 통해 새로운 가족의 형태인 공개입양 가족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주제에만 매달리다 보면 자칫 교훈적인, 빤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인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있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가 인물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아주 성공적이다. 주인공 하늘이의 심리에 따라서 독자의 마음도 이렇게 저렇게 함께 움직인다. 그만큼 각 상황에서의 하늘이 심리와 행동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공 하늘이는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입양된 아이다. 그리고 태어난 지 100일 만에 선천성 심장질환으로 수술을 받았다. 덕분에 하늘이 가슴에는 길이 19.7센티미터, 두께 0.6~0.8센티미터 가량의 해마가 새겨졌다. 어쩌면 하늘이는 입양된 덕분에 목숨도 구했고, 의사 엄마 아빠와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 됐는지도 모른다. 아빠는 국내 입양 홍보 대사고, 정신과 의사인 엄마는 탤런트만큼이나 유명하고, 하늘이와 잡지사며 텔레비전 인터뷰에 나가는 걸 즐긴다.
언뜻 겉으로 드러난 조건만 보면 하늘이는 무척 행복할 듯싶다. 흔히 하는 말마따나 입양이 되지 않았더라면 누릴 수 없는 행복이다. 그러니 지금 부모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이야기는 시작부터 그렇지 않다. 하늘이는 행복은커녕 너무 아파하며 살고 있다. 가슴으로 낳았다는 말은 ‘난 널 낳지 않았어’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입양아 기념행사 같은 곳에는 정말 가고 싶지 않다.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척 웃어야 하는 건 너무 힘들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도 견디기 어렵다. 엄마 아빠 덕분에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알아볼 때마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떠올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버려진 강아지를 볼 때, 혼자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볼 때, 덩그러니 떨어진 낙엽을 볼 때면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통과하곤 한다. 하늘이의 상처받은 마음은 하늘이 가슴에 새겨진 해마와 겹쳐진다. 가슴에 안고 있는 슬픔, 심장수술로 생긴 자국인 해마는 하늘이의 슬픔을 대변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하늘이 처지가 참 안 됐다 여겨진다. 하늘이 엄마가 하늘이한테 대하는 모습 역시도 가식처럼 여겨진다. 텔레비전이나 잡지사 인터뷰에서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서 위장을 하는 이중인격자처럼 여겨진다. 공개입양을 선택한 건 하늘이가 아니라 어른들이고, 어른들은 자기만족 때문에 공개입양을 하고 있다는 의심까지 들게 했다. 그만큼 하늘이란 인물에 푹 빠져들어 있었다. 하늘이 엄마는 왜 그렇게 얄미운지, 또 할머니는 왜 그렇게 미운지. 하늘이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문득 깜짝 놀라고 말았다. 평소에 공개입양에 대해서 적극 찬성하고 있었는데, 하늘이 마음을 따라 읽다 보니 어느 순간 공개입양이라는 게 허울만 좋을 뿐 정작 입양된 아이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공개 입양된 아이의 입장에서 작가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사건은 내 예상을 배반하며 쉽게 풀렸다. 입양 가족 모임에서 알게 된 한강이의 가출, 느닷없는 엄마의 손찌검, 할머니가 들려주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꿈, 혼돈……. 그리고 조금은 느닷없는 엄마와의 화해. 지금까지 엄마에 대해서 느꼈던 감정은 배 아파서 낳은 친딸이라해도 누구나 겪는 갈등인데, 엄마나 하늘이나 모두 입양이란 사실을 온전히 떨쳐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도드라져 나타난 것이라는 깨달음. 한강이의 가출 역시도 입양된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니라 불량 서클에 가입하라고 협박하는 선배들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사실. 의외로 한강이는 양부모보다 못한 친부모들이 세상에 널렸다며 입양된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히려 입양된 사실에 예민한 건 어른들이고 말이다. 하늘이의 고민은 어느 순간 다 해결되고 만다. 하늘이의 괴로운 마음에 한껏 동조되었던 입장에서는 조금 맥이 풀리기도 한다. 정말 이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였을까 싶기도 하다.
아쉬움을 달래며 책을 덮자 하늘이와 하늘이 가슴의 해마가 눈앞에 선명하게 다가온다. 해마는 단순히 심장수술 자국이 아니라 하늘이가 겪은 마음의 상처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는 것, 그리고 하늘이처럼 비록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하늘이 엄마 역시 가슴에 해마를 갖고 있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이는 역시 작가가 창조한 인물의 생생함과 해마라는 조금은 낯선 상징이 하나로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줄거리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할머니의 모습을 꼭 기억하고 싶다. 가장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하늘이와 엄마 아빠를 서로 연결해주고 있다. 심술궂게 말을 내뱉으면서도 진심에서 하늘이를 사랑하는 걸 느낄 수 있는, 진짜 인간다운 인물이었다. 할머니의 존재가 진정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16호(2007년 12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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