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소년 명우의 남한 생활 적응기
《나는야, 늙은 5학년》(조경숙 글/정지혜 그림/비룡소)
이명우.
키 130cm, 몸무게 27kg.
15살.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주인공 명우를 보여주는 모습은 다소 낯설다. 왜소한 체격도 그렇지만 15살에 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것도 낯설다.
하지만 명우의 이 모든 상황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설명이 있다. 그건 바로 명우가 탈북 소년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식량난을 대변하듯 명우는 어려서부터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그러다 보니 영구치는 유치를 밀어내지도 못해 열다섯 살이 되도록 유치를 갖고 있다. 성장판은 활동을 멈췄다. 이차 성징이 나타나지 않은 건 물론이다.
그렇다. 이 책은 탈북 소년의 이야기다. 탈북 소년을 소재로 한 동화는 2002년을 시작으로 여러 편이 나와 있다. 가장 먼저 선보였던 건 꽃제비 아이들의 이야기였지만 점차 탈북 소년의 남한 정착기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탈북 소년의 이야기는 뭐라고 말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우선 북한의 식량난은 객관적 사실이 분명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서 아주 달라질 수 있다. 게다가 탈북 과정과 남한에서 학교를 다니며 겪는 갈등과 해소라는, 다소 판에 박힌 이야기 구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탈북 소년의 이야기에 눈을 돌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건 우리의 현실에 눈을 감겠다는 뜻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수가 아직은 소수이지만 앞으로는 더 많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책에 대한 평가는 작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기 보다는 그들이 처한 현실과 고민들을 등장인물을 통해 얼마나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가에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목소리를 철저히 낮추고 있다. 이 말은 주인공이 고민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 따로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인물들은 있다. 명우 형제의 정착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 김 선생님, 옆반 담임인 비행접시 선생님은 이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당장 닥친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 뿐이다. 덕분에 이야기는 교훈으로 빠지지 않는다.
탈북 과정을 빼고 남한에서 정착하는 과정에만 초점을 맞춘 것도 이 책의 미덕이라 여겨진다. 이야기는 명우가 하나원에서 퇴소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탈북 과정이나 북한에서의 생활은 중간 중간 명우의 고민과 혼란 속에서 보일 뿐이다. 이야기는 우리와 다른 특별한 곳에서 온 명우의 이야기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우리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아이 가운데 특별한 한 아이로 다가온다.
명우의 눈으로 본 남한은 참 혼란스럽다. 남한의 집은 다 번듯하고 좋은 줄 알았지만 형이 살고 있는 동네는 초라한 집들이 다닥다닥 이어져 있다. 학교에 들어가자 이상하고 힘든 건 더 많아진다. 영어를 배우는 것도 그렇지만 사회 과목은 더욱더 힘들다. 김일성 한 사람이 했다고 알고 있던 사실들은 세종대왕, 유관순, 김구로 나뉘어야 했다. 짝꿍 은지가 개가 죽었다며 묻어달라며 부탁을 해 왔을 때는 ‘남조선 개만도 못한 북쪽 사람들의 처지’가 떠올랐다. 제대로 먹지 못해 병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죽고 나서도 거적에 둘둘 쌓여 마을 뒷산에 파묻혔다. 은지네 개의 죽음이 개죽음이 아니라 아버지 죽음이 개죽음이라는 생각에 분해지기도 했다. 명우의 혼란스러운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다가온다. 더불어 명우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형 명철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명철이는 북한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목숨을 무릅쓰고 밀주를 만들었고, 삼 년이나 중국을 떠돌았다. 명철이는 조국을 배반할 수 없다며 중국에 남았던 누나와 북한에 남은 엄마를 찾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하지만 외로움은 어쩔 수 없다. 간이라도 빼줄 듯 치켜세워주는 여자에게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려 그 돈을 몽땅 빼앗긴다.
이 책에서 다소 아쉬운 건 담임 선생님의 모습이다. 마치 명우의 앞길을 막기 위한 사람처럼 명우에 대해 지나친 거부감을 보인다.
하지만 진짜 아쉬움은 표지 그림에 있다. 재미있는 그림이긴 하지만 정작 그림 속에 주인공 명우는 없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명우를 괴롭히던 동진이다. 뒤표지의 작은 그림도 마찬가지다. 어째서 명우는 사라지고 동진이만 남았을까? 어쩐지 주인공 명우가 멀리 밀려난 것 같아 안타깝다.
<고래가 숨쉬는 도서관> 2010년 봄호(통권 19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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