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10호
<인물><역사>
이상대
김시습 어른은 지금으로부터 491년 전 세종대왕 때에 서울 동촌에서 나셨습니다.
나신 지 겨우 여덟 달이 되자 배운 데 없이 글을 알며 이 외에도 여러 가지로 총명한 표적을 들어내서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그 외할아버지께서는 말도 채 배우기 전에 『천자문』이라는 중국 글을 가르치시니 떼떼하고 입으로 옮기지는 못하여도 뜻은 다 알았다 합니다. 아직 제 나라 말도 옮길 줄 모르는 어린 아이가 남의 글부터 배운다는 것은 옳다고 할 일은 못 되지만은 입으로 떠듬거려도 붓고 종이를 주면 능히 그 뜻을 글로 썼습니다.
이 시절만 하여도 중국 글만 힘쓰는 때였음으로 어른께서 공부하시고 지으신 글이라는 것은 거의 다 중국 글이었습니다.
첫돌을 지냈을 때의 일입니다. 그 외할아버지께서 예전 귀글을 베끼게 하셨는데 그때까지도 말은 못하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서
『꽃이 난간 앞에서 웃으나 소리를 듣지 못한다.(花笑檻前聲未聽)』
하셨더니 시습 어른께서는 병풍에 꽃 그림을 가리키며 떼떼하고 또
『새가 수풀 아래서 울되 눈물을 볼 수 없다.(鳥啼林下淚難着)』
하시니 시습 어른은 또 병풍에 새 그림을 가리키며 떼떼떼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가르쳐 주는 글은 다 깨닫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 해에 옛글을 백 마디나 넘겨 벗겼습니다.
세살 되던 해 봄에 비로서 말을 하여 외할아버지께 귀글이란 어떻게 짓는 것이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외할아버지께서는
『귀글이란 글자를 일곱자씩 모아 짓는 것인데 끝에다가 운이라는 것을 달고 소리의 높낮이를 보아 한 아름다운 말을 만드는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심심만 하면 할아버지께 운자를 내어줍시사 하여 읽어선 맛이 있고 보아선 산뜻한 귀글을 많이 지으셨고 또 몇 천 마디되는 길고 어려운 줄글도 많이 지으셨습니다.
다섯 살 때에는 벌써 중용, 대학이란 책을 다 알고 글에 대하여는 거의 막힐 것이 없을 만큼 알았습니다. 그럼으로 신동이라는 소문이 나매 가까이 계신 뜻 있는 어른들은 여러 가지로 글에 당한 시험을 해보시나 막힐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기재요 신동이라는 이름이 더욱 높아지고 널리 퍼져서 나라에까지 들렸습니다.
임금께서는 시습 어른을 대궐로 불러 들이사 귀글을 짓게 하시니 빠르게 짓는 글이 자자가 주옥이로시다. 임금께서 대단히 기특하게 아시사 비단 백필을 내리시며 가지고 가라 하시니 시습 어른은 백필을 다 풀어서 한데 잡아맨 뒤에는 한 끝을 허리에다가 매고 하직하고 나오시니 비단은 나오는 대로 줄줄 따라나옵니다. 임금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더욱 기특히 아셨습니다. 시습 어른의 어렸을 때 총명하고 신기함은 다 이러하였음으로 누구든지 이 아이의 장래가 범상치 않을 것을 짐작하였고 뜻있는 어른들은 시세를 생각하고 큰 재목 되기를 바랐습니다.
시습 어른을 전해야 할 일은 그 어른의 총명한 것과 재주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재주라는 것은 재주가 있다고 귀한 것이 아니라 재주가 있으면 큰일을 이룰 수 있는 까닭에 귀한 것이다. 시습 어른도 만일 아무 것도 이루신 것이 없었다 하면 별로 전해질 것이 없겠고 또 재주는 하늘에서 타고난 것도 귀하지마는 사람이 힘써서 얻은 재주가 더욱 귀한 것이라 시습 어른도 만일 당신의 애와 힘으로 닦은 것이 없었다 하면 재주가 있었다고 그리 일컬을 것이 없을 것이올시다.
그러나 시습 어른은 하늘에서 타고나신 재주가 이미 그처럼 장하신 데다가 당신이 애를 써서 닦으신 재주가 더욱 많았고 또 그 재주를 써서 참되고 크고 좋은 일을 이루시려고 정성을 쓰신 까닭에 그 어른의 일을 전해야 할 것이올시다.
시습 어른이 사람을 사귀어 보고 세상을 지내보시는 동안에 깊이 느끼신 바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하는 일은 그 소견의 테가 너무도 좁고 작은 데다가 속이 얕아서 거기서만 오비작거리고 요롱요롱하느라고 아름다이 잘 될 세상을 더럽게 만들며 참되어야만 할 사람까지 거짓 것이 되어서 캐등 위에서 공명 싸움을 하고 벼륵선지에 이익 다툼을 하는 판에 모든 큰 것이 다 부스러짐을 보시고는 깊이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더 한 걸음 나가서 목구멍에 낱알 기운을 하느라고 대가리를 들이박고 등허리에 실오라기를 걸치느라고 얼이 빠져 헤매이는 데서 모든 큰 것이 생겨나지 못함을 보시고는 더욱 깊은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때 그때만 알고 요것요것만 좋아하는 이 세상의 사람을 크고 멀게 고쳐볼까 하시고 많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생각하고 생각해서 깨달은 것일랑 좋은 글로 나타내 보여야만 하겠는즉 당신을 글 잘하는 사람이 되셔서 한 세상에 별이 되고 만 시절에 빛이 되시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처럼 아름다운 산과 내와 들과 나무를 가졌지마는 한 사람도 이처럼 거룩한 사람과 살림과 일과 공장이 있지마는 한 사람도 이 거룩한 것을 그려내는 이가 없고 가로로 보나 세로로 보나 앞을 살피고 뒤를 살펴도 노래하고 읊조릴 거리는 많아도 이 소임을 맡을 사람이 없으니 이것을 애달피 아는 그 사람의 가슴이야말로 참으로 쓰라릴 것이올시다. 이것이 시습 어른으로 하여금 하루바삐 당신의 몸을 붓대에다 붙여 가지고 모든 일을 종이 바닥 위에다 베풀려는 생각을 간절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런 포부를 가지시고 기껏 해보려는 결심으로 우선 이 세상에서 모든 헛된 것을 먼저 떼버리셨습니다. 그래서 한갓 깊은 산 속 시원한 곳을 쫓아다니시며 한 평생 느끼면 읊으시고 깨달으면 적으셨습니다. 그것들 가운데는 말할 것 없이 우리에게 끼쳐주신 큰 것이 쌓여 있습니다. 이리하실 동안에 어려움과 괴로움도 많이 겪으셨지마는 오직 일생을 하루같이 실증을 내거나 성을 내는 일 없이 마음대로 뜻대로 참되고 크고 좋은 것을 많이 만드셨습니다.
시습 어른은 이렇게 하셔서 그 생명의 내림이 늘 우리 가슴 가운데에서 뛰고 그 재주가 부질없는데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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