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10호
<사담><역사>
권덕규
옛 풍속에 4명절이라는 말이 있다. 4명절이 무엇무엇인고 하니 설, 동지, 한식, 추석이다. 요사이 와서는 동지, 한식은 변변치 안 하여지고 설과 추석만 대단히 지내게 되었다. 설이란 한해가 바뀌는 아침이라 어느 나라, 너나 할 것 없이 좋아라 하여 빌고 잔치하여 지내지마는 이것은 의례요, 공통한 것이라 따로 말 할 것이 없고 오직 추석이야말로 반도 조선 사람의 특별한 명절이다. 그러나 이 명절의 이름을 추석이라고만 하여서는 보통으로 들리어지고 그리 대단치 않게 여겨진다. 이제 말하려는 『한가위』라는 말을 써야만 어찌 반갑고 예스럽고 그럴 상하게 입에 딱 들어맞는다. 『한가위』야말로 참으로 조선 사람이 쓰는 추석의 원이름이며 조선 사람만이 가진 조선말이다.
한가위 이야기를 하기 전에 조선 말로만 된 명절의 이름을 꼽아보자. 우선 정월초하룻날을 설이라 하나니 이는 설명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누구든지 아는 것이요. 둘째로 이월초하룻날을 종날이라 하나니 이에 대하여는 설명을 좀 붙이려 한다. 서울서는 긴 겨울에 둘러쳤던 병풍이나 거둬 치우고 쓰레질이나 하고 그럭저럭 하지만은 문밖만 나아가 시골로 내려서면 이날도 작지 않은 명절이다. 아니 노는 명절이라는 것보다 대단히 바쁜 명절이다. 겨우내 묵은 먼지나 티끌을 말끔히 치우고 미리 해 두었던 송편을 나이대로 담아먹으며 한 해 내내 일할 이야기를 하며 또한 일할 준비를 차리는 날이다. 그리하여 이 떡 이름을 나(나이)떡이라고 하고 이날 이름을 종날이라 하였다. 나떡은 물론 나이대로 먹는 떡이란 말이어니와 종날이란 뜻은 어이한 뜻인고. 이제의 말로 생각하면 종이란 말이 남에게 매이어 부림을 받는 사람, 곧 하인 그렇게 들리고 그리 하지만은 실상 그러한 것만은 아니다. 종이라는 말뜻이 힘을 부리는 사람이라는 것이며 또한 일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 일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점점 상일하는 사람말로 바뀌며 또 한번 바뀌어 남에게 부림을 받는 사람이란 말이 되고 말았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종날이라는 말은 일하는 사람의 날이란 말이다. 이월초하룻날이 이만큼 거룩한 뜻을 가진 날이라 이제에 일하는 날 곧, 노동하는 날을 무슨 데이니 하지만은 나는 이 종날이라는 말처럼 멋있게 들리지는 아니 한다.
흔히 오월 초닷샛날을 단오라 하여 그네도 뛰며 먹이를 차리어 이바지하며 지내지마는 이날의 원 이름은 수레날이다. 이 수레라는 말은 물건을 나르는 틀, 곧 바퀴 달린 연장을 가리킴이다. 예전 말에는 쑥이란 말과 취란 말과 수리취란 말이 한 가지요 다르지 아니하였다. 그리하고 수리와 수레를 다 수리라 하여 그 말이 같았다 그러한 까닭에 잎사귀가 수레바퀴 같이 둥글한 수레 곧 쑥으로 떡을 하여 먹는 날이 오월 초닷새 날이매 이날을 이름하여 수레날이라 하였다. 이제도 쑥개피리를 떡의 하나로 치는 것이어니와 발해나 고려 적에는 쑥떡이 음식 가운데에 첫째를 갔었다.
유월 보름날을 유두라 한다. 이는 고려 적에 동으로 흐르는 물 곧, 동유수에 가 머리를 감으면 바람머리를 앓지 않는다 하여 동유수에 가 미역을 감고 놀이를 차리던 날이다.
시월을 상달이라고 하고 이 달 맛날에 해먹는 떡을 부마떡이라 하여 정성을 드리나니 이는 우리 조선 사람이 온 인류의 조상이요, 만 임금의 임금이신 단군께서 시월 곧 상달에 나심을 기념함이다.
이제부터는 한가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조선이 워낙 농업국인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삼국의 신라에서는 이러한 일이 있었다. 임금의 따님 두 분으로 하여금 서울 안 육부의 아낙네를 모아 두 패에 나눠가지고 여름내 길쌈을 하여 팔월 보름날 가서 잘 잘못을 가리게 되었다. 이긴 패는 상을 타고 진 쪽을 벌을 받는다. 벌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진 쪽에서 이긴 패에게 음식을 대접하여 한 가지 노래하고 춤추어 즐기는 것이다. 어느때든지 진 쪽의 아낙네 하나가 일어나 춤을 추며 구슬프게도 노래를 하는데 그 노래 가운데에 획쇠 소리가 많이 끼어서 그 노래를 이내 『휙쇠가락』이라 하여 역사에까지 적었다. 때는 신라의 셋째 임금 유리 임금 적이라 하였다. 노래는 아래와 같다.
획쇠가락(회소곡)
에-획쇠
에-획쇠
서늘바람 스쳐가고
보름달은 깨끗하다
× ×
에-획쇠
에-획쇠
우리나라 고운따님
몸소앉아 베짜신다
여섯주비 가시내는
모이기도 모였세라.
× ×
어디보자 네광우리
잔뜩차서 좋겠구나
아이고 요런 내광우린
다차려면 골잘해지
곁고틀며 갸웃배쭉
우스개로 아양피며
노래불러 술먹인다
× ×
획쇠 획쇠
획쇠 획쇠
섭섭함도 있거니와
우리나라 골잘사람
옷감이 넉넉하니
얼씨구도 좋을씨구
× ×
에라만수 나라따님
가엽게도 애쓰신다
한대(천하)온대(팔방) 사람들아
힘을 다해 길쌈하자.
× ×
에-휙쇠
에-획쇠
서늘바람 스쳐가고
보름달은 깨끗하다
이것이 한가위에 노는 풍속이 된 것이다. 그런데 한가위라는 말은 그 달에 한가운데라는 말이요 또한 가운데 토막 같은 아쉬운 날이란 말이다. 우리말에 가운데를 가분대라고도 함으로 가부라고도 한다.
또 한가지, 가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는 신라의 끄트머리의 남북조 때라 신라가 가끔 북조 발해의 지근거림을 입어서 견디기가 정히 성가시다가 한번은 별러서 싸움한 결과에 크게 발해를 이겼다. 이 승전한 날이 곧 한가위날이었다. 그리하여 이 기념으로 한가위에 전후 사흘을 놀며 갖은 먹이를 차리어 잔치하였다. 어떤 편으로는 이것이 더욱 먹거리가 있는 것이다.
획쇠 획쇠 서늘한 사람 스쳐가고 보름달은 깨끗하다. 더하도 덜하도 말고 매양 장천한 가위같기만 바란다고 친한 친구다 청하여 차린 음식 대접하며 가위 이야기를 하여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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