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많은 원폭피해자들이 있어요
『할아버지와 보낸 하루』(김금숙, 도토리숲, 2016)
1.
1945년 8월 6일 그리고 8월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원자폭탄의 위력은 대단했다.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약 16만명, 나가사키에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약 7만 4천명. 정확한 사망자의 숫자는 아직까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망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화상, 피폭으로 인한 암과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피해자는 더욱 많다. 그것도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면서 말이다.
일본은 최초의 원폭 피해국가이자 유일한 원폭 피해국가가 됐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사망한 사람들 가운데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역사임이 분명하다.
일본은 해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 희생자 위령 평화기념식’을 연다. 저녁에는 강에 등불을 띄워 보내는 행사가 열린다. 원폭 사망자를 추모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행사다. 그런데 여기엔 빠진 것이 있다. 어쩌다 일본이 원폭 피해국가가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시장에는 일본의 원폭 피해를 직간접으로 다루고 있는 어린이 책이 여럿 번역되어 나와 있다. 전쟁의 참상과 원폭의 피해로 엄청난 고통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책을 볼 때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런 엄청난 피해를 입은 일본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뭔가 좀 찜찜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 당사국으로서의 반성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또 그들이 강제로 끌고 갔던 조선인들, 또 식민지 조선에서 먹고살 길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왔던 조선인들의 피해는 보이지도 않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으로 사망한 조선인 사망자들의 숫자만도 4만 명이나 되는 데 말이다. 마치 먼저 상대편의 것을 뺏기 위해 공격을 했다가 되레 역공을 당한 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과 같다. 그 와중에 근처를 지나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아예 모른척하고 말이다.
2
일본은 원자폭탄 두 방에 결국 항복을 했고,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 선언으로 우리나라도 해방을 맞이했다.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살고 있었다. 전체 원폭 피해자 가운데 조선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훌쩍 넘는다는 사실이 이를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당시 생존자 가운데 일부는 일본에 남았고, 또 일부는 조국으로 돌아왔다. 『춘희는 아기란다』(변기자 글,정승각 그림,사계절,2016)가 일본에 남아있는 조선인 원폭피해자의 이야기라면 여기서 다룰 『할아버지와 보낸 하루』는 조국으로 돌아온 원폭피해자의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원자폭탄이 투하된 바로 그날과, 모든 것이 변해버린 그날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할아버지는 당시 여덟 살이었다. 엄청나게 큰 불꽃이 지나간 뒤 모든 것은 달라져있었다. 엄마는 무너진 집 더미에 깔려 있었고, 동생이 있던 방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정신없이 아빠와 누나를 찾아 시내로 나갔다. 시내의 모습은 더 끔찍했다. 겨우 아빠와 누나를 찾긴 했지만 아버지는 바로 숨을 거두고 만다. 다섯 명이었던 가족은 이제 세 명만 남았다.
남은 가족은 귀국선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곳은 엄마의 고향인 합천. 하지만 그곳에서도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설상가상 몸에는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피폭으로 생긴 병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사람들은 원폭 피해자를 이상한 눈으로 봤고, 그래서 그 사실을 숨기며 지냈다. 다행히 지금은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치료를 받으며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문을 연 건 1996년. 피폭을 당한지 무려 51년이란 세월이 지난 뒤였다. 할아버지 나이가 당시 여덟 살이었으니 쉰아홉 살이 되어서야 혜택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이 할아버지는 얼마나 엄청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을까? 막연히 머릿속으로 그 고통을 떠올릴 수는 있지만 할아버지를 비롯한 피폭 피해자들의 고통을 현재의 우리가 생생하게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 책에 아쉬움이 남는다. 합천에 도착한 뒤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생활하기까지 51년이란 세월동안 겪어야 했던 오랜 시간의 고통이 펼침면 한 면만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뒤에도 이야기는 이어진다. 할아버지는 결혼을 해서 아들과 딸을 낳았는데, 중학교 때까지는 건강하던 딸이 갑자기 말을 안 하고 이십년 넘게 방에만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 딸의 이야기는 바로 피폭 2세들이 겪는 고통의 이야기다. 안타까운 건 이들 피폭 2세의 경우는 그 어떤 지원도, 복지시설도 없다는 사실이다.
원폭 피해자의 문제가 단지 지나간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3.
이 책은 구성과 형식이 조금 복잡하다. 프롤로그에서는 화자인 아이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게 되는 상황을,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는 아이와 아버지가 이후에도 할아버지를 계속 만나러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문에서는 할아버지를 취재하는 현재의 모습과 할아버지의 증언인 과거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만화 형식이고, 또 본문에서도 현재의 모습을 보여줄 때는 만화의 말풍선 형식을 활용해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과거의 모습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이야기를 펼쳐내기 위해, 또 원폭 피해자의 문제는 지나간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는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치밀한 고민에서 나온 구성과 형식일 것이다. 그러나 치밀한 고민이 독이 된 측면도 있다. 복잡한 구성과 형식은 독자가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또 내용에서도 아이와 아버지, 할아버지의 과거와 현재, 피폭 2세인 할아버지의 딸,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종이학 등 많은 내용이 담기다 보니 집중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그만큼 작가가 이 책을 만들며 많은 고민을 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지금껏 찾아본 바로는 이 책은 국내의 원폭피해자를 다루고 있는 유일한 어린이 책이다. 원폭피해자문제는 지금껏 역사책에서 한두 줄 정도로 지나가버리고 만 가슴 아픈 역사다. 그런 이야기를 수면 위로 이렇게 끌어올려놓기 위해서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어쩌면 이 책은 우리에게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가슴 아픈 원폭피해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들에 대한 복지가 간절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또 원폭피해자들은 우리나라 사람이건 일본 사람이건 똑같이 안타깝지만 일본은 피해자라는 사실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라는 사실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국내의 원폭피해자를 다루는 더 많은 어린이 책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나올 책들은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책이 되길 바란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이 갖고 있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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