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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관련/그림책

흰곰

by 오른발왼발 2018.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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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곰의 모습에 겹쳐지는 우리의 모습

 

 

 

 

 

《흰곰》(이미정 그림/아이세움/2012년/절판)

 

 

 

사람들은 말로 소통을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고, 자기의 감정을 전한다. 상대가 하는 말을 듣고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의 감정에 공감한다. 하지만 때로는 서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을 때가 있다. 이럴 땐 오히려 말이 없기 때문에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림책은 글과 그림으로 독자와 소통을 한다. 하지만 이 책에는 글이 없다. 즉 글자 없는 그림책이다.
글자 없는 그림책에 부담감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다. 책을 본다면 으레 글을 읽는 것으로 여겨져 왔고, 그림책을 볼 때도 글에 먼저 눈이 가는 습관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이 없는 그림책을 보면 어떻게 봐야 할 지, 무엇을 봐야 할 지 막막해 한다. 아이가 이런 책을 들고 와서 읽어 달라 하기라도 하면 아주 난감해하는 부모님들도 계시다.

 

하지만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을 할 때보다 더 깊은 속마음을 알아챌 수 있듯이, 그림책 역시 그림만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경우다. 글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훨씬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만약 여기에 글이 끼어들었다면 감정 선이 여지없이 무너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책을 한 번 살펴보자.
표지에는 창살 속 흰곰의 모습이 있다. 흰곰의 표정은 묘하다. 무표정한 것 같으면서도 그 눈빛은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슬픈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어서 나오는 장면은 동물원에서 흰곰을 본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모습이다. 한가롭게 누워 있는 흰곰들, 그리고 얼음 위에 혼자 앉아 있는 흰곰.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더 이상 이 장면을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는 없다. 표지에서 보았던 흰곰의 모습 때문이다. 혼자 떨어져 있는 흰곰과 표지의 흰곰은 하나로 겹쳐지며, 이 흰곰이 결코 창살 안에서 행복할 수 없음이 전해 온다.

 

창살 안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흰곰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창살을 벗어나는 것뿐이다.
그리고 흰곰은 마침 열려 있던 문 밖으로 나온다. 이제 흰곰은 어디로 가야 할까?
막상 창살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흰곰에게 창살 밖 세계는 낯설기만 하다. 가야할 방향조차 찾을 수 없다.   이 때 흰곰의 눈에 띈 건 놀이동산에서 날아가는 주황색 풍선이다. 흰곰은 주황색 풍선을 따라 간다. 이제 흰곰에게 주황색 풍선은 자신이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안내자와 같은 존재인 셈이다.
하지만 복잡한 놀이동산을 빠져나와 도심 속 높은 빌딩들이 솟아 있는 곳에서 주황색 풍선을 계속 따라가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결국 주황색 풍선은 높은 빌딩에 가려 사라지고, 흰곰은 도심 속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닌다.

 

얼마나 헤맸을까? 어느 새 해가 지고 하늘엔 별이 총총 뜬 밤이 되었을 때, 흰곰은 건물 옥상에 설치된 커다란 전광판 속에서 다시 주황색 풍선을 발견한다. 그리고 무조건 그 속으로 뛰어든다. 그래서 흰곰이 가게 된 곳, 그곳은 바로 흰곰의 고향 북극이다.
흰곰이 북극으로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흰곰이 북극으로 가는 과정을 맘껏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여기에 괜한 글을 덧붙였다면 오히려 상상력을 깨고 말았을 것이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흰곰의 고향 찾기라고만 생각해도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그런데 이 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흰곰의 모습 속에 나 자신의 모습이 겹쳐진다. 보이지가 않을 뿐이지 창살 속에 갇혀 답답해하는 건 흰곰이나 나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흰곰이 주황색 풍선을 놓치고 난 뒤에 보여주는 복잡한 지하철, 정신없이 바쁘게 다니는 사람들, 온갖 잡동사니가 있는 황량한 공사장, 화려한 도심의 뒷골목들이 마치 우리의 우울한 삶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이 없을 때 오히려 서로 깊이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듯이, 글 하나 없이 마음속으로 들어와 깊은 울림을 주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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