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 불편함, 그리고 진실
《어떤 아이가》(송미경 글/서영아 그림/시공주니어/2013년)
1. 낯설고 불편한, 하지만 신선한
참으로 낯설고 불편한 이야기들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낯설고, 그 속에 담긴 내용 또한 불편하기 짝이 없다. 괘씸하다면 괘씸하다고 할 만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칠 수도 없다. 가슴을 콕콕 찌르는 뭔가가 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아주 낯설고 이상한 이야기, 하지만 읽다보면 결국 우리 현실 속 이야기임을 깨닫게 한다.
많은 책들이 우리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이처럼 낯선 방식으로 현실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없었다. 어쩌면 익숙하게 느껴질 만한 우리의 현실이건만 이야기하는 방식이 낯선 탓에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 낯설고 신선한 이야기 속에는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불편한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낯설고도 신선한, 그리고 불편하기까지 한 이 이야기들이 묘한 느낌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낯설게 하기의 즐거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2. 특별한 이야기 다섯 편
이 책에는 모두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가운데 특별히 더 마음에 가는 이야기는 표제작인 「어떤 아이가」다. 하지만 나머지 네 편 역시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작품이다. 이 책에 실린 다섯 편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살펴보자.
「어떤 아이가」
가족 해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을 정도로 흔하디흔한 일이 된 세상이다. 가족 해체의 원인이 어디 있고, 해결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 또한 많아졌다. 흔해진다는 건 익숙해진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무감각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해체되어 가는 가족 이야기다. 하지만 접근 방식은 아주 특별하다.
이 집에서 그동안 함께 살았다는 아이가 써 놓은 쪽지에는 함께 살던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조목조목 적혀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다섯 식구의 집에 컵도, 칫솔도 여섯 개씩이었고 가족사진에도 낯선 아이가 찍혀 있다.
그제야 가족들과 이야기해보지만 그 아이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알게 되는 건 가족끼리 서로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형은 주인공 아이의 학년도 모르고 있었고, 아빠는 늘 물을 떠다주던 아이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가족사진에서 얼굴을 확인한 엄마의 얼굴은 아이가 기억하는 엄마보다 훨씬 늙어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 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다는 어떤 아이의 흔적을 찾는 과정이 가족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 집에 함께 살았다는 아이의 의미를 곰곰 생각하게 된다.
또 다른 가족을 찾아 떠났다는 어떤 아이. 그 아이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그 아이가 숨어 살 수 있는 집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어른동생」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끔은 지나칠 정도로 어른스러운 아이도 있고, 몸만 클 뿐 여러 모로 볼 때 어린아이 같은 어른도 있다. 이른바 정신 연령이 실제 나이와 다른 경우다.
이런 경우 각자 자기 나이에 맞게 행동을 해야 맞는 걸까? 아님 타고난 자기의 정신 연령대로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이 책에 나오는 다섯 살 동생의 마음 나이는 서른넷이다. 하지만 마음 나이가 서른넷이라고 아이가 아닌 건 아니다. 다섯 살 또래 아이들처럼 새코미랑 젤리쭉쭉 같은 걸 좋아하고,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떼를 쓰곤 한다. 즉, 마음 나이를 뺀 모든 건 다섯 살 아이랑 똑같다.
반면 서른네 살 먹은 정우 삼촌의 마음 나이는 열세 살이다. 허구한 날 집에서 조립 로봇이나 만들고, 인생은 음식과 음악만 있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 삼촌을 향해 엄마는 나잇값을 못한다고 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쩌랴. 삼촌 마음은 열세 살, 아이인 것을.
우연히 이 비밀을 알게 된 주인공 ‘나’는 혼란스럽다. 이야기를 읽는 독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실제 나이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마음 나이를 갖고 있는 사람들.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가 과제로 남은 셈이다.
「없는 나」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는 말은 흔히 듣지만 ‘없는 나’라니! 제목만으로도 섬뜩해지고 만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외할머니로부터 낳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던 아이. 외할머니의 바람 탓이었을까? 아이는 태어났으되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난 것을 기뻐해 준 사람은 오직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아이가 살아가는 것을 느꼈고, 아이가 잘 커나갈 수 있도록 보살폈다. 엄마 외에 아이를 느낄 수 있었던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눈먼 소녀, 그리고 죽기 직전의 외할머니였다.
분명 보이지 않고 느끼기만 할 수 있는 아이지만 사람들은 아이 엄마가 꾸며 놓은 아이 물건만 보고 그 아이가 남자아이라고, 직접 봤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아이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보이는 물건만으로 아이를 규정하는 것이다.
과연 이 아이는 진짜로 태어난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일까? 참으로 오묘한 이야기다.
중요한 건 아이가 ‘없는 나’로 태어난 건 축복받지 못할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그 아이에 대해 아는 건 그 아이의 물건들뿐이라는 사실이다.
참으로 씁쓸하다. 보고 싶지 않는 건 없는 취급을 하고, 보이는 사물 몇 가지만으로 제멋대로 안다고 떠벌이는 우리의 모습이 ‘없는 나’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지.
「귀여웠던 로라는」
인형 같이 귀여운 모습으로 엄마의 쇼핑몰 모델 일을 하던 로라가 어느 순간 토끼 인형이 되고 만다. 아니, 로라만 바뀐 게 아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모두 토끼 인형이 되고 로라가 좋아하던 토끼 인형 토순이는 살아있는 토끼가 된다.
이게 다 무슨 일일까?
“난 더 이상 자라지 않겠구나. 다행이야.”
로라가 토끼 인형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한 이 말이 그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는 로라를 자신이 운영하는 쇼핑몰 모델로 쓰기 위해서 로라가 더 이상 자라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로라는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로라는 토끼 인형이 되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로라는 진짜 토끼가 된 토순이의 도움으로 진짜 토끼가 되어 숲으로 간다.
과연 엄마는 진짜로 쇼핑몰 모델 일을 위해서 로라가 자리질 않길 바랐던 걸까? 아마 그것만은 아닐 것 같다. 엄마들 중에는 엄마의 만족을 위해 아이를 자신만의 인형으로 만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라푼첼에 나오는 마녀가 라푼첼을 높은 성에 가두고 자기만 보고 싶어 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 가방에서 나오신다」
아버지가방에서나오신다.
초등학교 때 띄어쓰기 공부를 할 때 자주 인용되던 문장이다.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셔야지 가방에서 나오시면 되겠느냐고 야단을 치시던 선생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아버지들은 진짜로 가방 속에 들어가 계신다. 하루에 세 번 아버지 가방의 지퍼가 열리며 손이 나오면 밥을 드려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는 늘 가방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아이들에게는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한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나타날 때까지는.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들과 함께 먹고 놀았다. 그리고 떠나기 전 모두에게 목말을 태워줬다.
이제 아이들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바뀐다. 그 아이와 아버지가 떠난 뒤, 아이들은 가방 속에만 있던 아버지를 꺼낼 생각을 한다.
가족들과는 아무런 소통을 하지 못한 채 권위만을 내세우며 좁디좁은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 지내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지금의 아이들이 커서 아버지가 되었을 때는 가방에 갇힌 아버지들은 없길 바란다.
3. 존재에 대해 묻다
다섯 편의 작품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개성으로 자신의 존재를 또렷하게 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작품에도 공통점은 있다. 다섯 편 모두 존재에 대해 묻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아이가」는 가족이란 존재에 대해서, 「어른동생」은 원래의 나이와는 다른 마음 나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 「없는 나」는 나 자체의 존재 의미와 함께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 「귀여웠던 로라는」은 인형 같은 삶과 살아있는 삶에 대해서, 「아버지 가방에서 나오신다」는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물론 이 외에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더 많은 존재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문학적 즐거움과 함께 가슴이 묵직해지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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