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다움의 미덕을 보여주다
《나도 예민할 거야》(유은실 글/김유대 그림/사계절/2013년)
1. 뭐든지 잘 먹는 사랑스런 아이, 정이
‘꼬붕아 미안해. 너는 정말 맛있구나.’
나는 슬프다. 맛있어서 슬프다.
풋. 『나도 예민할 거야』의 마지막 장면을 읽는데,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시골에서 아빠가 기르던 닭 꼬붕이를 먹는 정이의 모습이다.
처음엔 꼬붕이를 먹는 아빠랑 할머니가 야만인처럼, 마녀처럼 보였던 정이였다. 그런데 닭 다리를 입에 넣자 너무 맛있어서 멈출 수가 없다. 닭 다리를 다 먹고 국물에 찰밥까지 말아먹고 말았다.
자신이 먹은 게 꼬붕이라는 사실은 슬프고, 입에서 느끼는 꼬붕이는 정말 맛있었다. 결국 정이는 울면서 맛있게 먹는다.
뭐든지 잘 먹지만 마음만은 순수한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모습을 이보다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싶어졌다.
문득 우리 아이가 어렸을 때 모습이 떠올랐다. 동물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아이는 한동안 고기를 먹는 일 때문에 고민을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
“너무 불쌍하긴 하지만 너무 맛있어서 어쩔 수가 없어.”
그리고 눈물을 쪼르르 흘렸다.
정이의 모습과 꼭 닮았다. 먹는 걸 좋아하는 것까지.
먹는 일은 누구나 날마다 하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특별한 사건이라 할 수도 없다. 동화의 소재로 눈에 확 띄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사건이 버라이어티하게 벌어지는 것보다 더 아이다움을 제대로 보여주는 건 아이의 평범한 일상이다. 평범한 속에서 보이는 아이만의 특별함이야말로 아이다움이 가장 잘 드러난다. 어쩌면 우리 동화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바로 이런 일상의 이야기들이 아닐까 싶다.
뭐든지 잘 먹는 아이 정이, 우리 동화에서 가장 아이답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아닐는지.
2. 일상에서 찾아낸 아이다운 캐릭터
『나도 예민할 거야』는 2011년에 나온 전작『나도 편식할 거야』의 연작이다. 뭐든지 잘 먹는 아이 정이와 편식쟁이에 예민하기 그지없는 오빠 혁이의 이야기다.
정이와 혁이는 남매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오빠는 안 먹어서 탈, 동생은 너무 잘 먹어서 탈이다. 그래서 두 학년이나 차이가 나지만 동생인 정이가 키도 더 크고 몸무게도 더 많이 나간다.
오빠 혁이는 예민한 성격 탓에 잠도 잘 못 자고 아무 거나 잘 먹지 못한다. 동생 정이는 순해서 잘 자고 아무 거나 잘 먹는다. 엄마 마음은 자꾸 예민하고 약한 오빠에게 쏠린다. 오빠가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침대를 사주기로 한다. 정이는 아무 데서나 잘 자니까 오빠 것만!
침대를 갖고 싶은 정이는 결심을 한다. 예민해지기로. 아무 데서나 잘 자는 딸 안 하기로. 정이는 오빠처럼 예민해지면 침대가 생길 거라 믿는다. 단순한 논리다. 『나도 편식할 거야』에서 엄마가 오빠한테만 장조림을 주는 것을 보고 편식하기로 마음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일부러 편식하기가 어려웠던 것처럼, 일부러 예민해지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결국 서러움에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결국 엄마는 이층침대를 사준다.
순한 정이의 모습과 예민한 오빠의 모습은 선명하게 대비되어 더욱 분명한 자신만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두 사람 모두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3. 차별은 없다
흔히 동화에는 선악의 구도가 있다. 주인공이 있으면 주인공을 괴롭히는 쪽이 있다. 결국 문제가 해소되기는 하지만 해결이 되기 전까지는 선악의 구도가 유지되곤 한다.
그런데 이 책엔 그런 선과 악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예민한 오빠와 순한 정이.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좋고 나쁘고 한 구별은 없다. 오빠가 예민하다는 이유로 오빠 편을 들어주는 엄마지만 그렇다고 늘 오빠 편은 아니다. 엄마는 장조림 때문에 서운해 하는 정이의 마음을 눈치 채고는 편식쟁이 오빠한테만 주려고 했던 장조림을 몽땅 정이에게 주기도 한다.
정이와 오빠 혁이가 다른 건 좋고 나쁜 차이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유전자 때문이다.
그래서 속상한 마음에 ‘나도 편식할 거야’ ‘나도 예민할 거야’하고 결심을 했던 정이의 마음도 쉽게 풀어진다. 아빠를 꼭 닮았기 때문에 길을 잃었다가도 집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편식쟁이에 예민해서 잠도 못 자는 혁이도 자기 잘못은 없다. 잘못이 있다면 그건 유전자 때문이다.
작가는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만일 가르치려고 하는 작가였다면 편식쟁이 오빠는 당장에 문제아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서로 다름을 타고난 유전자가 다를 뿐이라는 논리로 가져간다. 누가 더 좋고 나쁜지 따위는 사라진다.
4. 이런 동화, 자꾸 만나고 싶다
참 행복해지는 이야기다. 정이는 정이대로, 혁이는 혁이대로 평범한 일상 속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진다. 두 아이의 표정과 마음이 고스란히 다가온다. 서로 상반된 캐릭터지만 선악의 구별도 없다. 다름은 단지 두 아이의 특성일 뿐이다.
이런 동화, 자꾸만 보고 싶다. 별난 소재를 찾아 헤매는 것도 좋지만 평범한 일상의 아이들의 모습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어린이문학》 2013년 여름호
'어린이책 관련 > 우리창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아이가 (0) | 2018.09.10 |
---|---|
시간 가게 (0) | 2018.08.15 |
삼백이의 칠일장 1, 2 (0) | 2018.07.02 |
그림자 도둑 (0) | 2018.06.10 |
위안부 할머니 꽃할머니 - <나는 수요일의 소녀입니다>,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 (0) | 2018.03.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