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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팥이 영감과 우르르 산토끼

by 오른발왼발 2019.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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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이 영감 이야기의 참뜻은 무얼까?

 

《팥이 영감과 우르르 산토끼》(박재철 글, 그림/길벗어린이/2009년) 

 



 

 

1.

누구나 이 옛이야기 그림책을 보면 앙증맞은 산토끼들의 모습에 반해 버릴지도 모른다. 새콤달콤 산딸기도 따 먹고 오독오독 칡뿌리도 캐 먹으며 노는 산토끼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개구쟁이 아이들이다. 이 산토끼들이 팥이 영감네 팥밭에서 팥을 따 먹다 걸리자 우르르 도망을 간다. 산토끼들을 쫓던 팥이 영감은 그만 꽈당 넘어지고 화가 나서 눈, 코, 입, 귀에다 곶감이랑 대추랑 홍시랑 밤을 꽂고 죽은 척 꼼짝도 안 한다. 산토끼들은 팥이 영감을 묻어주기로 한다. 꽃다발을 엮어 꽃무덤을 만들어주기로 한다. 그런데 갑자기 팥이 영감이 벌떡 일어나 산토끼들을 모두 잡아가지고 가마솥에 넣고 불을 붙인다. 산토끼들은 무를 넣어야 맛있다며 떠들고, 팥이 영감이 무를 가지러 간 사이에 모두 가마솥에서 나오지만 팥이 영감과 딱 마주치고 만다. 팥이 영감과 산토끼들 사이에 한바탕 추격전이 벌어진다. 팥이 영감의 모습은 꽤나 심각해 보이지만 정작 토끼들은 유쾌한 놀이를 즐기는 표정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을 보고 나면 아주 유쾌하고 산뜻해진다. 글도 보통 옛이야기 서술과는 조금 다르다. 서사에만 중심을 맞추지 않고 의성어와 의태어의 묘미를 살려가며 쓴 글은 발랄하고 분위기랑 잘 맞아떨어진다. 마치 창작 그림책을 읽는 느낌이다. 산토끼들은 조금 얄밉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 귀여워서 방금 한바탕 난리가 났긴 했지만 금방 무슨 난리가 났었는지를 잊게 만든다.

 

2.

만약 원래 이야기를 모르고 있었더라면 너무 잘 만들어진 이 책에 대한 의심은 추호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래 이야기를 알기에, 이 매력 만점의 책이 그리 편안하지만은 않다.
책 뒤에 있는 해설에서 밝혀 놓았듯이 원래 이 이야기는 뒷부분이 더 있다. 팥이 영감이 토끼를 솥에 넣고 불을 빌리러 간 사이에 토끼는 가마솥에서 빠져나오고 대신 방안에 있던 아이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토끼는 아기인 척 포대기를 쓰고 누워 있다. 그 사실을 모르는 팥이 영감은 토끼 대신 아기를 먹는다. 이건 우리 아기 손 같은데, 이건 우리 아기 발 같은데……, 하면서도 그냥 다 먹어치운다. 그러자 토끼가 뛰쳐나오며 팥이 영감이 아기를 삶아 먹었다고 소리치며 달아난다. 팥이 영감은 울타리 앞에서 달아나는 토끼의 뒷다리를 잡지만 토끼가 자기 다리는 안 잡고 울타리 다리만 잡느냐고 하자 토끼 다리를 놔주고 울타리 다리를 잡는다. 판본에 따라서는 토끼가 놀리는 대로 장독대에 돌을 던져 다 깨고, 지붕이랑 볏가리에다 불을 던져 몽땅 다 불태우기도 한다. 토끼를 잡으려던 팥이 영감은 멸문지화를 당한 셈이다.
결국 이 이야기에서 핵심은 토끼와 팥이 영감의 대결이다. 그 대결은 처음엔 팥이 영감이 토끼를 가마솥에 넣음으로써 이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승패는 갈린다. 팥이 영감은 아기를 잡아먹은 꼴이 됐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토끼에게 계속 속으면서 집안을 풍비박산을 내고서야 끝난다. 그러니 토끼가 이겨도 아주 크게 이겼다.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아주 끔찍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채록된 자료가 있는 《임석재 전집》(평민사)이나 《구비문학대계》(한국학연구소)의 자료를 살펴보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 토끼 편을 들고 있다.
왜일까? 그냥 이야기만 보자면 팥이 영감은 멸문지화를 당할 만큼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이토록 엄청난 벌을 받게 됐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은 왜 팥이 영감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고 토끼 편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이처럼 사람들이 토끼 편에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토끼의 대결 상대인 팥이 영감에 대해 화자나 청자 모두 감정이 안 좋다는 뜻일 것이다. 마치 《꾀보 막동이》나《왕굴장굴대》로 알려진 ‘주인집을 망하게 한 종’ 이야기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에서 막동이나 왕굴장굴대는 주인을 속여 재산을 빼앗고 결국엔 식구들까지 모두 물에 빠뜨려 죽게 만든다.
막동이나 왕굴장굴대의 모습은 토끼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특별한 이유 없이 한 집안을 풍비박산 낸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 역시 이야기를 하는 화자나 듣는 청자 모두 막동이와 왕굴장굴대의 편이다.
그럼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과연 무엇일까? 비록 이야기에 나오진 않지만 막동이나 왕굴장굴대가 평상시에 양반들에게 모진 구박을 받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특히나 주인이 막동이나 왕굴장굴대를 괴롭히는 장면은 당시로서는 이야기를 주고받던 사람들 사이에 충분한 공감대가 있었기에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대신 이들에겐 자신을 괴롭히던 양반과 자신을 대변하는 종의 대결에서 종이 통쾌하게 승리하는 이야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팥이 영감과 토끼’도 마찬가지다. 이야기엔 나오지 않았지만 토끼가 팥이 영감을 괴롭혔던 무언가가 있었고, 이 때문에 팥이 영감과 토끼의 대결 구조도 나왔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일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이 책을 보며 우선 떠올랐던 건 요즘 문제가 되는 멧돼지 문제였다. 언제부턴가 시작된 멧돼지와 농부의 관계가 마치 팥이 영감과 토끼의 문제 같아 보였다. 멧돼지가 내려와 농부들이 힘들게 가꾸어놓은 농작물을 자꾸 먹어치우니 농부들 입장에서 멧돼지는 해만 끼치는 나쁜 짐승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멧돼지를 잡아 그 피해를 막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멧돼지는 자신의 서식지였던 산을 사람들에게 빼앗겼기 때문에 내려온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좇아 산을 개발하면서 살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눈에 띠는 멧돼지가 많다 보니 멧돼지의 개체 수가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당장의 이익 때문에 멧돼지를 잡는다. 나중엔 더 큰 자연의 불균형이 오고 그 피해가 우리 후손들에게 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토끼가 팥이 영감이 아기를 잡아먹게끔 만드는 모습이나, 팥이 영감이 자기가 먹고 있는 것이 토끼가 아니라 아기 몸의 일부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먹는 것 또한 어느 정도 맞아떨어져 보였다. 마치 우리가 자연을 파괴하면서 ‘혹시’하면서도 그냥 두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이렇게 하면 그 죄가 고스란히 농부에게 돌아가기 때문다. 멧돼지들의 서식지를 파괴한 건 농부들이 아닌데, 괜히 평범한 농부와 멧돼지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혹시 ‘팥이 영감’과 ‘토끼’가 실은 액면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상징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진다. 그러던 차에 <어리석은 녹두영감과 꾀 많은 토끼>(구비문학대계 7집 4책)를 봤다.

 

“토까이는 오르막에는 잘 올라간다. 내리막에는 잘 못 내려가면서.”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앞발은 짧고 뒷발은 긴 토끼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목이지만 굳이 이 대목을 왜 마지막에 넣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혹시 토끼가 진짜 토끼나 멧돼지 같은 짐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상징할 수도 있겠다 싶어졌다. 그건 산에는 손쉽게 올라갔지만 내려오기는 힘든 존재, 팥이 영감과 같은 존재가 완전히 망해버리는 것을 환영할만한 무언가여야 했다.
한참 고민 끝에 떠오른 건 화전민이었다. 마을에서는 더 이상 살기 힘든 사람들이 손쉽게 택할 수 있는 방법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 화전을 일구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번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이 다시 마을로 내려오기는 힘들었다. 산에 들어가 살 수밖에 없었던 약하디 약한 사람들, 혹시 토끼는 이 사람들을 상징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 토끼를 잡으려고 지나칠 정도로 애를 쓰는 팥이 영감은 지주나 양반들을 의미하고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토끼가 팥이 영감으로 하여금 아기를 삶아먹게 하고, 나락에 불을 지르게 하고, 지붕에 불을 지르게 하고, 장독을 깨게 하며 집안을 망하게 한 까닭이 설명되는 듯싶었다. 토끼와 팥이 영감의 대결 구도가 이해가 되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모두 토끼 편이 될 수 있었던 까닭도 이해가 됐다.

 

3.

물론 이런 해석은 다분히 주관적일 수 있다.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꺼내는 건 너무 잘 만든 옛이야기 그림책 《팥이 영감과 우르르 산토끼》 때문이다.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문화가 사라진 오늘날, 사람들은 옛이야기를 책으로만 본다. 때문에 책으로 나온 옛이야기의 영향력은 아주 대단하다. 그 책이 잘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불특정 다수에 대한 영향력은 더 커진다. 책으로 옛이야기를 만나는 아이들은 책에 있는 이야기만이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책이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할 것 같다. 잘 만든 책이기도 하지만 내가 알기로 어린이 책으로는 처음 나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괜한 걱정이 든다. 이야기의 핵심인 팥이 영감과 토끼가 대결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라진 채 팥이 영감과 토끼들이 벌이는 한바탕 신나는 소동으로만 기억하게 될까봐 말이다.

 


- 이 글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분기별로 펴내는 《어린이문학》 2010년 여름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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