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고양이가 찾으러 간 구슬은 무엇이었을까?
《개와 고양이》(김중철 엮음/유승하, 최호철 그림/웅진주니어/1999년)
《개와 고양이》(암정진 글 인강 그림/시공주니어/2006년)
《개와 고양이》(박영만 원작/이붕 엮음/강혜술 그림/사파리/2009년)
1.
‘개와 고양이’는 우리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이야기다. 아마도 교과서에 실렸던 이야기이기 때문일 거다. 언제부터인지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문화가 사라지면서 교과서는 획일화된 옛이야기를 전하는 장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가난한 할아버지가 잉어를 잡았는데, 잉어가 울면서 살려달라고 하자 불쌍한 마음에 잉어를 살려준다. 그러자 잉어가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을 줬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잘 살게 된다. 강 건너 사는 욕심쟁이 할머니가 그 구슬을 훔쳐 가려고 방물장수로 변장해 할머니에게 간다. 욕심쟁이 할머니는 할머니 구슬을 구경하는 척 하다가 가짜와 바꿔치기 해서 달아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다시 가난해졌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키우던 개와 고양이는 은혜를 갚기 위해 구슬을 찾아 나선다. 개와 고양이는 구슬을 찾은 뒤 다시 강을 건넌다. 하지만 개가 고양이한테 자꾸 말을 시켰고, 참다못한 고양이가 대답을 하느라 입을 벌리는 바람에 구슬은 강물 속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고양이는 그 구슬을 삼킨 물고기를 뜯어먹다 구슬이 나와 할아버지 할머니께 갖다 준다. 그 뒤 개와 고양이는 사이가 나빠졌다.
아주 어린 아이들을 뺀다면, 우리나라 사람 거의 대부분이 아는 이야기다. 알고 있는 이야기도 거의 똑같다. 그림책으로 나와 있는 《개와 고양이》 가운데 이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는 없다. 대표적인 《개와 고양이》 그림책으로 뽑은 세 권 역시 마찬가지다.
김중철과 임정진이 다시 쓴 《개와 고양이》는 개와 고양이의 보은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할아버지가 길에 쓰려진 개와 고양이를 구해오는 장면이 있고, 박영만 원작의 《개와 고양이》에는 할아버지가 용궁에 가서 지내다 연적을 받아오는 장면이 있다는 점이 차이가 있을 뿐 기본 줄거리는 같다.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바로 그 이야기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구슬을 얻게 된 사연과 구슬을 잃어버리고 난 뒤 개와 고양이가 찾아오는 장면이다. ‘잉어의 보은’을 연상시키는 앞부분은 구슬을 전해주고 나면 더 이상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 그러다보니 이야기를 듣고 남는 건 이야기의 뒷부분이다. 우리가 흔히 이 이야기의 제목을 ‘개와 고양이’로 알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2.
어찌 보면 앞부분과 뒷부분은 각각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개와 고양이가 사이가 나빠진 유래담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잉어의 보은과 개와 고양이의 보은이 합쳐진 ‘보은담’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하지만 보은담으로 보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보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준 잉어의 보은이라는 부분은 너무 퇴색한 느낌이고, 개와 고양이의 보은이라는 부분은 좀 애매하다. 보통의 보은담이 은혜를 입은 동물이 극적인 순간에 은혜를 갚는 것으로 끝나는 것과는 잉어는 구슬을 주고 나면 이야기에서 멀어지고 만다. 개와 고양이는 정말 목숨을 구하는 은혜를 입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김중철과 임정진의 이야기에서처럼 개와 고양이가 할아버지 덕에 목숨을 건졌을 수도 있지만 실은 개와 고양이란 늘 사람과 함께 살며 지내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개와 고양이가 잃어버린 구슬을 찾아다 준 공은 중요하지만 이야기의 원천이 구슬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뭔가 빠진 것만 같다. 게다가 잉어의 보은에 해당하는 앞부분의 이야기는 ‘잉어 색시’의 앞부분과 너무도 비슷해 자꾸 연상 작용을 일으키곤 한다.
그러다 《한국구전설화 1-12》(평민사)에서 ‘개와 고양이’ 이야기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개와 고양이’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야기의 앞부분에 잉어를 구해주고 구슬을 얻는 이야기 대신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신묘한 보배, 《한국구전설화 1 : 평북 1》, 임석재 엮음, 160쪽
△고양이와 개의 보은, 《한국구전설화 1 : 평북 1》, 임석재 엮음, 169쪽
△구렁이에서 얻은 영주와 고양이와 개, 《한국구전설화 7 : 전북 1》, 임석재 엮음, 222쪽
△고양이와 개의 보은, 《한국구전설화 7 : 전북 1》, 임석재 엮음, 225쪽
△개와 고양이의 보은, 《한국구전설화 10 : 경남 1》, 임석재 엮음, 176쪽
△고양이와 개의 보은, 《한국구전설화 12 : 경북》, 임석재 엮음, 68쪽
이야기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할아버지가 구슬(혹은 연적)을 얻게 되는 과정이 달랐다. 잉어 대신 주로 구렁이가 등장한다. 아주 가끔은 구렁이 대신 호랑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잉어가 등장할 때처럼 보은의 결과 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이 구렁이가 잡은 꿩을 먹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자라서 장가를 가는데, 가는 길에 구렁이가 나타나 잡아먹겠다고 한다. 원래 꿩은 자기가 먹을 먹이였는데, 그걸 대신 먹고 아이를 낳았으니 당연히 자기 먹이가 되어야 한단다. 아이는 기왕 기다렸으니 자기가 장가를 들고 올 때까지만 기다리라고 한다. 장가를 가서 색시한테 그 말을 하자 색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신랑 집으로 가는 길에 구렁이가 나타나 약속대로 신랑을 잡아먹으려 한다. 그러자 색시는 구렁이한테 신랑 대신 자기가 먹고 살 수 있게 해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신랑을 못 잡아먹는다고 한다. 구렁이는 구멍이 뚫린 구슬(연적)을 주며 각 구멍마다 쌀 나오라면 쌀 나오고, 돈 나오라 하면 돈이 나온다고 알려줬다. 하지만 마지막 한 구멍만은 무슨 구멍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색시는 나머지 구멍이 무슨 구멍인지 알려주지 않으면 신랑을 못 잡아먹는다고 버틴다. 구렁이는 어쩔 수 없이 알려준다. 미운 놈한테 ‘너 죽어라’하면 죽는 구멍이라 했다. 색시는 이 말을 듣자마자 구렁이에다 대고 ‘너 죽어라’ 하고 말했고, 구렁이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두 사람은 그 구슬을 가져와 쌀이며 돈이며 나오게 해서 잘 살았다.
뒷부분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같다. 구슬을 잃어버리고 개와 고양이가 찾으러 가는 이야기 그대로다.
물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개와 고양이’처럼 잉어가 등장하는 판본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잉어가 살려준 보답으로 구슬을 주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 《구비문학대계》(한국학중앙연구소)에 실린 이야기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뒷이야기인 개와 고양이가 구슬을 찾아오는 이야기는 빠진 채 앞부분의 이야기만 전하는 경우는 훨씬 더 많았다.
어찌된 일일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똑같이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구전 채록된 자료에서는 그 흔적을 볼 수가 없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1940년에 나온 《박영만의 조선전래동화집》 속의 ‘개와 고양이’가 있고, 이에 앞서 손진태가 1922년에 채록한 ‘개와 고양이와 구슬’이 있다. 박영만의 책에는 구술자 이름이 없지만 손진태 책에는 구술자 이름이 있다. 바로 방정환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개와 고양이’는 방정환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3.
개와 고양이가 찾아온 구슬은 과연 어떤 구슬이었을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잉어를 살려준 보답으로 얻은 걸까, 아님 구렁이가 내뱉어준 구슬일까. 잉어든 구렁이든 구슬이 갖는 공통점은 있다. 잉어는 물의 왕인 용왕으로 상징되곤 하는 존재다. 구렁이는 용으로 승천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다. 그러니 구렁이가 내뱉어준 구슬은 용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여의주일 가능성이 높다. 물속에 사는 용왕과 하늘로 승천하는 용은 서로 다른 존재지만 물을 관장한다는 점에서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결국 잉어의 구슬이든 구렁이의 구슬이든 신비한 능력이 있는 여의주가 틀림없다.
하지만 어쩐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개와 고양이’ 보다는 구렁이가 등장하는 이야기 쪽에 좀 더 매력이 느껴진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잉어의 보은이라는 맥락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구렁이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는 구렁이가 구슬을 내뱉고 죽음으로써 앞부분이 일단락되기 때문에 뒷부분에 개와 고양이 이야기가 나오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또 용왕(용)은 여의주가 없으면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과연 용왕이 할아버지에게 구슬을 내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보통 ‘잉어 색시’ 이야기에서 총각에게 구슬을 내주는 용왕이 나오긴 하지만 알고 보니 그 구슬은 용왕의 공주이다. 진짜 여의주와는 다른 구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구렁이가 가지고 있던 구슬은 여의주일 가능성이 높다. 구렁이는 보통 구렁이가 아니고 용이 되려고 승천을 준비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승천이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다. 구렁이가 꿩을 잡아먹으려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구렁이가 나오는 이야기에는 유독 새가 많이 등장한다. ‘까치의 보은’ ‘꿩의 보은’ ‘학의 보은’ 같은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많고 많은 구렁이의 먹잇감 가운데 이야기에 등장하는 건 늘 새 종류다. 구렁이는 새를 잡아먹으려는 걸 방해하는 사람을 해치려 하지만 결국 실패를 하고 만다. 구렁이가 용으로 승천하기란 그만큼 어렵기만 하다.
구렁이가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하나의 여의주가 필요하다. 하지만 구렁이가 갖고 있던 여의주는 불완전했다. 여의주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다. 용이 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구렁이의 몸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때문에 여의주에는 구렁이의 내면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미운 사람한테 ‘너 죽어라’ 하는 구멍이 있다는 건 수양이 덜 됐다는 뜻일 게다. ‘오늘이’에서 욕심 많은 이무기가 여의주를 두 개나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용으로 승천을 못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욕심을 내려놓은 이무기의 여의주를 받은 오늘이는 신의 세계로 들어갔지만, 구렁이의 구슬은 불완전했기에 인간 세상으로 왔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구슬을 욕심낸 할머니 때문에 한바탕 소동도 벌어지고, 사이좋던 개와 고양이도 사이가 나빠지고 말이다.
4.
본래 옛이야기란 구전이 되면서 조금씩 이야기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라도 이야기를 다시 쓴 작가에 따라서, 또 이야기를 해석해 그림으로 표현해낸 그림작가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지곤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개와 고양이’는 어느 그림책이나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누구나 이야기를 비슷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궁금했다. 수많은 구전 채록 기록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우리가 흔히 아는 ‘개와 고양이’ 이야기 말고 구렁이가 나오는 이야기도 가끔은 나오는 게 정상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이번엔 그림책이 아닌 읽기책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발견했다. 《옛이야기 보따리 8-호랑이 뱃속 구경》(서정오 글/보리)에 실린 <여섯 모 난 구슬>이었다. 이 책이 처음 나온 게 1999년. 벌써 10년도 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듯 싶다. 나 역시도 이 책을 몇 번이고 읽었지만 이 이야기가 실렸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마도 여러 이야기 가운데 한 편으로 들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5.
개와 고양이가 찾아온 구슬이 무엇이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렁이가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또 있다. 바로 이야기에 등장하는 색시의 모습이다.
두 이야기에 나오는 여성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보통 이야기에서 할아버지가 받아온 구슬을 잃어버리는 건 할머니다. 할머니는 착할지는 몰라도 어리숙하고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구렁이가 나오는 이야기-물론 <여섯 모 난 구슬>도 마찬가지인데-는 다르다. 신랑이 구렁이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당당하게 맞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색시다. 똑똑하고 당당한 그 모습에 끌리고 만다.
옛이야기 그림책은 웬만한 출판사에서는 다 나온다지만, 앞으로 더 많은 그림책이 나오리라 여겨진다. 아니, 나오길 희망한다. 옛이야기 그림책이 갖는 한계와 문제점은 많지만,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문화가 사라진 지금, 옛이야기 그림책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이야기라도 이야기가 전해지는 동안 다양한 판본이 만들어지듯이 더 많은 옛이야기 그림책이 나온다면 , 그림책 역시 달라질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올 새로운 《개와 고양이》 그림책을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분기별로 펴내는 《어린이문학》 2010년 겨울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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