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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주먹만한 아이, 주먹이

by 오른발왼발 2021.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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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먹이의 탄생

 

아이가 없는 부부가 아이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드디어 부부에게 아이가 태어난다(혹은 얻게 된다). 그런데 그 아이는 보통 아이들과는 달리 아주 작다. 태어나기만 작게 태어난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태어날 때 모습 그대로,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오랫동안 간절히 바라서 아이를 낳은 부모의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아이는 너무나 작고 여려 보인다. 아니, 실재로 갓 태어난 아이는 너무나 작고 여리다.

하지만 주먹만 하다는 건 보통의 아이보다도 더 작다는 의미다.

그런데 진짜로 주먹만 했을까? 어쩌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별로 마음에 드는 표현은 아니지만, 흔히 작고 귀여운 사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이처럼 부모의 눈에 주먹이가 너무나 귀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늘 주먹만 하게 보였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주먹이가 정말로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주먹만 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주먹이는 계속 자라고 있었는데, 부모 눈에만 주먹이가 늘 어린 시절 그 모습으로만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2. 집 밖을 벗어난 주먹이

 

어느 날 아버지는 주먹이를 주머니에 넣고 낚시를 갔다. 심심할 때마다 주머니 안에 있는 주먹이와 말을 했다. 옆에서 낚시질 하던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아무도 없는데 말을 하는 걸 보니 미쳤는가’ 하고 생각했다.

 

집안에서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하던 주먹이가 드디어 집 밖을 나온다. 아버지를 따라 강에 낚시를 간 것이지만 그래봐야 주먹이는 주머니 속 신세다. 주먹이는 갑갑하다. 아무리 부모의 사랑이 극진하다 해도 아이는 부모의 사랑만 먹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먹이는 갑갑하다고 내놔 달라고 한다. 아버지는 주먹이를 꺼내주기는 하지만 감투 안에 넣어둔다. 아직은 주먹이를 세상에 내놓기 불안한 아버지는 자신의 그늘을 벗어나지 않길 바란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주먹이가 주변 세계에 호기심을 갖는 건 당연하다.

주먹이는 강에서 노는 물고기를 보고 자기도 물고기와 놀아보겠다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하지만 커다란 물고기에게 꿀꺽 삼키고 만다. 다행히도 옆에서 낚시하던 사람이 이 물고기를 잡고, 물고기에서 사람 소리가 나자 물고기 배를 갈라본다. 덕분에 주먹이는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주먹이는 물고기 배 속에서 나오자마자 뛰어 달아나 소가 풀 뜯어먹는 곳까지 온다. 그러다 소가 뜯어먹는 풀에 휩쓸려 소의 배 속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이번엔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도 소가 똥을 눌 때 똥과 함께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바깥세상은 역시 만만치가 않다. 위험의 요소가 많다. 아버지 품을 벗어났다 고된 하루를 보낸 주먹이. 과연 주먹이는 또다시 바깥세상으로 나가려 할까? 아니면 이불 밖은 위험해!’하며 부모의 품안에서 지낼까?

주먹이는 아버지의 주머니 속이 갑갑했다. 하지만 평북 본과 경기 본에는 물고기 배 속과 소의 배 속이 갑갑하다는 말은 없다. 어쩌면 주먹이에게 물고기 배 속과 소의 배 속은 아버지 주머니 속보다는 갑갑한 곳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는 그림책의 서술과는 전혀 다른 지점이다. 주먹이(이혜리 그림/김중철 엮음/웅진/1998)이나 주먹이(서정오 글/이영경 그림/곧은나무(삼성출판사)/2006)에서는 모두 물고기 배 속과 소의 배 속에서 갑갑해, 갑갑해!’를 외친다. 이런 서술에서는 집보다 바깥세상이 더 갑갑하고 두려운 곳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그림책에서는 평북 본과 경기 본에는 없는 새에게 낚아채어 가는 화소까지 추가되어 있다. 물론 새에게 낚아채어 가던 주먹이는 한없이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온 주먹이가 겪은 바깥세상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세상처럼 느껴진다.

3. 주먹이는 집에 어떻게 돌아왔을까?

 

밖에서 아버지, 아버지 부르는 소리가 나서 보니 주먹이가 소똥을 온몸에 묻히고 와 있었다. 어떻게 소똥을 이렇게 온몸에 묻혔느냐고 물으니 소가 먹는 풀에 휩쓸려 소 배 속에 들어갔다가 소가 똥을 누어서 밖으로 나오게 되어서 돌아왔다고 했다.

 

주먹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주먹이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집을 찾아온다. 그런데 어떻게 왔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좀 뻘쭘한 결말이다. 뭔가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고 끝난 느낌이다. 물고기한테 꿀꺽 삼켜지고, 풀에 휩쓸려 소의 배 속에 들어갈 만큼 작은 주먹이가 어떻게 집에 찾아왔을까 궁금하지만 이야기에선 그 답을 찾기 어렵다. 물론 물고기 배 속에서 나온 뒤에도 풀숲에서 여유롭게 소를 보고 있던 주먹이를 생각하면 충분히 잘 찾아왔을 것 같다고 여겨지긴 한다.

하지만 그림책은 다르다. 주먹이는 풀밭에서 길을 잃는 바람에 놀라고, 소의 커다란 입이 다가와서 놀라고(그림책 속 주먹이는 이게 소라는 사실도 모른다), 새가 채 가는 바람에 놀란다. 주먹이 주위엔 온갖 위험이 있고 그 속에서 주먹이는 무기력해 보인다.

그래서 이런 주먹이가 집을 찾아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물론 그림책에는 주먹이가 집을 찾아오는 화소 자체가 없다. 이야기 순서 자체가 소의 배 속->->물고기로 이어지면서 낚시를 하던 아버지가 주먹이를 다시 찾는 결말이다.

그림책 속 주먹이는 평북 본이나 경기 본과 비슷한 줄거리지만 주먹이의 모습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4. 주먹이와 아버지

 

주먹이네 집에서는 주먹이가 돌아오지 않아서 걱정이 되어 이리저리 찾아다녔는데도 없어서 집에 돌아와서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소똥을 잔뜩 묻힌 주먹이가 돌아온다.

 

주먹이를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아버지가 막상 주먹이가 없어졌는데도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이다.

주먹이가 오지 않아 걱정을 한 건 틀림없지만 아주 적극적으로 찾으러 다닌 것 같지도 않다. 주먹이와 다시 만나는 장면도 극적인 느낌은 없다. 오히려 데면데면하게 느껴진다.

어드러캐서 소띠를 왼몸에 무테 개지구 있네.”

잃어버렸던 주먹이를 본 아버지가 한 말은 이것뿐이다. 주먹이가 집을 잘 찾아온 것에 대한 칭찬도 없고, 반가움도 없다. 오히려 주먹이 몸의 티를 잡아내려는 모양새다.

감투에 넣어둔 주먹이가 사라지고 한참 동안 보이지 않자 주먹이가 자신의 품을 떠났다는 것을 눈치라도 챈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품에 가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아니면 주먹이가 잘 찾아오리나는 믿음이 있었던 것일까?

어쩐지 아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난 뒤에 어색해진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5. 아쉬움

 

주먹이는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갑갑해하고 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집안에 있는 것만으로는 아이의 호기심을 다 채울 수 없고, 더 이상 자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주먹이는 아버지의 호주머니에서 나왔지만 그 때문에 위기에 처하게 된다. 물고기를 보고 싶은 호기심에 물속에 들어갔다 물고기에게 잡아먹히고, 소를 구경하다 소에게 먹힌다. 보통 이렇게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다는 것은 다시 태어남을 뜻한다. 이는 주먹이가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뜻한다.

하지만 사실이 이렇다 해도 뭔가 부족해 보인다. 주먹이가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장면이 없기 때문이다. 주먹이가 집에 어떻게 돌아갔을지 궁금해진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두 번의 모험을 통해 주먹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하기에는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림형제의 엄지 동자와 크게 대비되는 점이다. 엄지동자는 스스로 마차를 몰고자 하고, 낯선 남자들을 따라 길을 떠나고자 하고, 도둑들과 어울려 도둑들을 혼내주기도 한다. 그리고 주먹이처럼 소에게 삼켜지고, 늑대에게 삼켜진다. 그러자 실컷 먹게 해 주겠다며 늑대를 속여서 자기 집으로 가게 한다.

그림형제가 처음 수집한 판본은 어땠을지 알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보는 그림형제 이야기는 여러 번에 걸쳐 정교하게 다듬고 각색을 한 이야기다. 반면 채록되어 있는 2편의 판본은 날 것 그대로다. 지금까지 채록된 판본이 2편뿐이라는 사실은 원래 많이 구전되지 않던 이야기일 수도 있고, 혹은 채록자가 조사를 한 지역이나 사람이 한정적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이야기가 미완성처럼 느껴지는 것이 진짜로 이처럼 완성도가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공교롭게도 구술을 했던 사람이 이야기하는 재주가 좀 부족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이 책으로는 제법 많이 출간이 된 이야기다. 그러나 아쉽게도 두 편의 그림책 속의 주먹이는 채록된 이야기와는 달리 마지막까지도 여전히 처음 모습 그대로 작고 약한 아이로 머물러 있다. 앞으로 좀 달라진 모습의 주먹이 그림책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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