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께
선생님.
어김없이 또 한 해가 지났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올 봄은 몹시도 추웠습니다.
5월이면 가끔은 한낮에 반팔을 입고도 땀을 흘리기도 했던 것 같은데, 올해는 긴 팔에 점퍼까지 입고도 서늘하기만 합니다. 밤에도 자다 말고 추워서 잠을 깨는 날도 있습니다. 어제는 결국 보일러를 틀고 잠을 청했어요.
해마다 날씨가 이상하다고는 하지만 올해는 특히나 심상치가 않습니다. 3월엔 유난히 기온이 높아지더니 모든 봄꽃들이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트렸지요. 막상 그 꽃들이 필 때쯤엔 비바람이 불어와 한꺼번에 그 예쁜 꽃망울들을 떨어뜨렸지만 말이에요. 덕분에 올해는 봄꽃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요. 그리고 4월부터 지금까지 서늘한 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올봄을 이렇게 서늘하게 보내는 건 날씨 탓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사람들 마음은 날씨만큼이나 서늘합니다.
선생님도 이미 알고 계실 거예요. 세월호가 차가운 바닷속에 잠긴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하루 종일 뉴스를 보고 또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만 자꾸 쌓여갑니다.
서늘한 날씨, 서늘한 마음이 겹쳐서일까요? 몸도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엔 저만 그런가 했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비슷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몸이 아프면 정신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처럼, 정신이 아프면 몸도 같이 아픈 것 같습니다. 정신과 몸은 하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이번에 다시 읽은 《몽실 언니》는 예전과는 참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몽실 언니》를 처음 읽었던 건 어린이도서연구회 신입 모둠을 할 때였습니다. 그때는 솔직히 몽실이가 답답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어려서부터 고생고생하더니 나이가 들어서까지도 고생스런 삶을 선택한 몽실이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 다시 읽었을 땐 선생님이 《몽실 언니》에서 어떤 말씀을 하시려고 했는지를 생각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몽실이의 삶도 처음처럼 답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힘든 세상 속에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좋았습니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몽실 언니》를 다시 읽었습니다. 볼 때마다 조금씩 몽실이가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을 때는 유난히도 몽실이의 아픔이 절절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나 의지할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이 갓 태어난 난남이를 떠안은 채 전쟁이란 시련을 겪어냈어야 했던 몽실이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요즘 세월호를 보는 저만 해도 이렇게 추운데, 몽실이는 얼마나 춥고 힘들고 아팠을지,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제가 세월호를 보며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며 답답해하고 있지만, 몽실이가 살아내야 했던 세상은 훨씬 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몽실 언니》를 보면서 몽실이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도 꿋꿋하게 세상을 살아낼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을까를 생각하는 중입니다. 반은 알 것 같기도 하지만 여전히 반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 답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괜히 옛날엔 가뭄이 들면 임금이 나라를 잘못 다스려 하늘이 벌을 내린 거라고 여겼다는 이야기가 자꾸 떠오릅니다. 가뭄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도 임금에게 책임이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높은 사람이면 높은 사람일수록 말이에요.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은 스스로 찾아내는 거지요.’
아마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네요.
네.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내년엔 좀더 밝은 이야기로 선생님께 소식을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건강 챙기시며, 우리를 지켜봐 주세요.
2014년 5월 8일
오진원 올림.
이 글은 2014년 5월 14일 똘배아동문학회에서 주최한 권정생 7주기 추모제 발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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