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께
선생님 잘 지내시죠?
동시집 《산비둘기》를 봤어요. 선생님이 이 동시집을 손수 만드실 때, 이 동시집이 출판되어 저까지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셨을 거예요. 세상에 딱 두 권밖에 없는 책, 더구나 누군가에게 사적으로 선물했던 책이었으니까요.
예전에 선생님이 이오덕 선생님과 주고받았던 편지가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 생각이 나기도 했어요.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겐 커다란 선물이었지만, 선생님도 우리처럼 기뻤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선생님 마음을 헤아려보던 것도 잠시였어요. 책을 펼치면 제가 몰랐던 선생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냥 좋아하곤 했어요.
《산비둘기》에 실린 동시를 한 편 한 편 읽어봤어요. 예전에 보았던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과는 느낌이 달랐어요. 동시가 아니라 그냥 ‘어린이 시’ 같달까요? 어린이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진짜 ‘어린이 시’ 말이에요. 그래서일까요? 동시를 읽으며 ‘아, 선생님은 이때쯤 이렇게 살아가셨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편씩 동시를 써나가는 선생님 모습도 떠올랐어요.
만약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살아계셔서 이 동시집을 다시 정리해 발표하신다면 빼고 싶은 동시도 있고, 또 조금 다시 고쳐 쓰고 싶은 동시도 있을 것 같았어요.
“에헤, 이 사람들이 별걸 다 끄집어내 보고 있어. 그만하게! 그만해!”
이렇게 말씀하실 것도 같았어요.
하지만 전 여기서 아주 마음에 드는 동시를 발견했어요.
<사이>
식이하고 사이좋음
돌이가 밉고
돌이하고 사이좋음
식이가 밉고
식이하고 돌이하고
사이좋을 때
그때는
그때는
어찌 될까?
그때는
나 혼자
외톨이 될까?
고백하건대,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마음이 들었던 적이 아주 많거든요. 그런 제가 마음에 안 들 때도 많았는데 선생님도 저랑 같은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구나 싶어 아주 마음이 놓였어요.
<땅그림>
앞마당에 앉아
그림 그리자
돌이하고
나하고 그리자
정말은
돌이 키가 더 클지 모르지만
정말은
돌이 주먹이 더 클지 모르지만
내가 그리니까
내 마음대로
돌이는 조그맣게
나는 크게 그리자
커다란 내 옆에
조그만 돌이가
겁나는 듯 서 있다
어쩐지 안 됐다
조그만 돌이 그림
다시 지우고
나하고 똑같이
그려놓자
키도 똑같고
손도 똑같고
사이좋게
사이좋게
서 있다.
이 동시도 좋았어요.
<사이>에서 조금은 옹졸한 내 마음이 보였다면 <땅그림>은 옹졸한 가운데도 그렇지 않은 내 마음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안상학 님이 쓰신 해설 글도 봤어요.
선생님께서 글을 쓰신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고요. 그런데 동시로는 하지 못할 말이 있어서 동화를 썼고, 동화로는 하지 못할 말이 있어 소년소설을 썼고, 소년소설로는 하지 못할 말이 있어서 소설을 썼는데, 그마저도 속 시원하게 다 말하지 못해서 글쓰기에 한계를 느끼셨다고요.
안상학 님은 이렇게 볼 때 동시는 할 말을 가장 하지 못한 장르가 되는 셈이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이 어떤 말이냐에 따라 그 말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가 있기 마련이고, 동시가 그 할 말을 가장 잘 표현해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선생님도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소설 《한티재 하늘》을 쓰시고 난 뒤, 다시 동화 《밥데기 죽데기》와 《랑랑별 때때롱》을 쓰시진 않았을 테니까요. 선생님께서 조금 더 사셨다면 분명 좋은 동시집을 우리에게 주셨을 거라 믿어요.
선생님께서 오소운 목사님께 이 책을 만들어 전한 것이 1972년이라고 하셨죠? 30대 중반의 선생님이 정성을 다해 직접 동시집을 만들고 계시는 모습이 보이는 듯 해요. 그동안 써놓았던 동시를 골라서 쓰고, 색종이를 오려 붙이고, 그림을 그리고, 책으로 정성껏 묶는 모습에서 선생님의 정성이 느껴져요. 마지막에 '오소운 목사님께'하고 꾹꾹 눌러 쓰는 모습까지요.
무엇보다 저는 선생님의 재능에 감탄을 했어요. 만약 선생님께서 미술 공부를 하셨다면 그쪽으로도 재능을 발휘하시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색종이 몇 장으로 모양을 냈다’고 하기엔 너무 세련됐다는 느낌이었어요. 표지의 배색도 좋고, 삐뚤삐뚤한 글씨체도 잘 어울렸어요. 본문에 있는 색종이 모양과 직접 그리신 그림도 좋았고요.
선생님,
혹시 책 읽고 글을 쓰는 일 말고, 무언가 배우고 싶은 걸 배워본 적 있으세요?
하늘나라에서는 여유가 있을 테니 미술 공부를 꼭 해 보세요. 아마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림은 젬병인 저는 샘이 나서 끙끙 앓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럼, 내년에 다시 연락드리도록 할게요.
5월 같지 않게 추운,
2021년 5월 10일.
오진원 드림.
이 글은 2021년 5월 12일 똘배아동문학회에서 주최한 권정생 14주기 추모제 발표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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