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권정생/권정생 추모

아기 늑대 세 남매

by 오른발왼발 2022. 5. 9.
728x90

권정생 선생님께.

 

선생님, 잘 지내시죠?

벌써 열다섯 번째 편지네요.

 

올해는 어린이날 100주년이 되는 해였어요. 100년 전 어린이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금 어린이들의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더불어 제 어린 시절, 또 이제는 다 커버린 저희 아이의 어린 시절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어요.

그리고, 선생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궁금해지기도 했어요.

선생님, 혹시 어려서 별명 같은 건 없으셨나요? 어린 시절엔 다들 별명이 많잖아요. 그 별명이 지독하게 듣기 싫었던 적도 있었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그 별명이 그립기도 해요. 참고로. 제 별명은 아주 오랫동안 오징어였어요. 어린 시절엔 별명이란 것이 대개는 이름 때문에 생기는 거 아시잖아요. 물론 오징어란 별명 말고도 다른 별명도 있었어요. 진돌, 동그랑땡……, 뭐 이런 것들이었죠.

선생님, 만약 어린 시절 별명이 없으셨다면 늑대는 어떨까요? <아기 늑대 세 남매>에 나오는 아기 늑대들이 꼭 선생님의 어린 시절 모습처럼 느껴지거든요.

제가 이 동화를 처음 본 건 아주 오래전이에요. 20년도 훨씬 넘었지요. 하느님의 눈물(산하)을 읽는데 갑자기 <아기 늑대 세 남매>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여름성경학교에 가고 싶은 아기 늑대들이 사람으로 모습을 바꾸죠. 여우가 변신을 한다는 건 들어봤어도 늑대가 변신을 하는 건 못 들어봤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그런데 아기 늑대 세 남매뿐이 아니라 아버지 늑대도 어릴 때 여름성경학교에 가봤다니! 정말 신기했어요.

 

제가 <아기 늑대 세 남매>를 처음 본 건 《하느님의 눈물》이었는데, 《하느님의 눈물》에 실린 동화 세 편을 따로 엮어서 《아기 늑대 세 남매》란 책이 새로 나와 있어요.

 

저는 아기 늑대들이 여름성경학교에 가서 혹시나 무슨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면서 봤어요. 그런데 아기 늑대들은 정말 똘똘해요. 첫날, 아기 늑대 한 마리가 하고 늑대들만 뀔 수 있는 방귀를 뀌는 실수를 했지만, 두 번 실수는 하지 않았죠. 늑대 방귀를 나오게 하는 칡꽃과 망개 열매를 먹는 것도 포기하면서 말이에요. 아주 속이 깊은 아기 늑대들이에요. 덕분에 5일 동안이나 빠짐없이 나가서 배울 수 있었다니, 저도 괜히 뿌듯해졌어요.

선생님께서 교회를 언제부터 다니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선생님도 아기 늑대들과 같은 마음으로 다녔을 것만 같았어요. 아님,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과 만나면서 어린 시절 선생님 모습을 발견하셨던 걸까 싶기도 했고요.

아무튼, 저는 <아기 늑대 세 남매>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재미있어서 남편에게도 보여줬죠. 남편도 아주 재미있다고 했어요. 그러다 남편 배꼽 주위에 있는 털을 보고 , 늑대지?”하고 소리치기도 했죠. 늑대가 사람으로 둔갑을 해도 늑대 자국이 남아있는데, 그게 바로 배꼽 둘레에 노란 털이 한 줌 나 있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때는 남편을 늑대라고 확신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노란 털이 아니었으니 다른 산짐승일까 생각해보고 있어요.

 

《밥데기 죽데기》는 두 가지 판형으로 나와 있어요. 왼쪽은 보급형, 오른쪽은 칼라판이에요.

 

제가 선생님 별명으로 늑대가 떠오른 이유는 <아기 늑대 세 남매> 때문만은 아니에요. 밥데기 죽데기에도 늑대 할머니가 나오잖아요. 저는 <아기 늑대 세 남매>의 늑대들의 모습과 밥데기 죽데기의 늑대 할머니가 모두 선생님의 모습이 투사된 것만 같아요. 선생님이 늑대의 모습을 빌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만 같아요.

<아기 늑대 세 남매>에서 엄마 늑대는 사람들과 짐승들이 서로 못 믿게 된 것을 못마땅해 했었지요. 그래서 서로서로 무서워하는 것이라고, 서로 믿고 살면 얼마나 좋겠냐고 했어요. 밥데기 죽데기의 늑대 할머니는 남편과 자식을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사람으로 둔갑한 늑대지요. 하지만 결국엔 모든 걸 용서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온 힘을 다 쓴 뒤 세상을 마쳐요.

이야기는 많이 다르지만 두 이야기는 서로 통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아기 늑대 세 남매>에서는 선생님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이 떠오르고, 밥데기 죽데기에서는 나이 드신 뒤의 선생님 모습이 떠올라요.

어떠세요? 이만하면 늑대라는 별명이 제법 선생님이랑 잘 맞는 것 같지 않으세요? 이렇게 쓰고 보니 앞으로는 선생님 이름 앞에 늑대라는 말을 꼭 붙여서 불러보고 싶어요.

늑대 권정생 선생님, 이렇게 말이에요.

선생님도 마음에 드시죠? 아마 마음에 드실 거예요.

 

 

2022511

오진원 드림

 

추신 1.

선생님, 올해는 잠깐이라도 하늘나라에서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려 보세요.

늑대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그것도 함께요.

 

추신 2.

선생님, 올해부터는 똘배어린이문학회에서 해마다 열어왔던 "그리운 권정생 선생님" 추모제의 방식이 바꿨다고 해요.

똘배어린이문학회 주관 하에 개인이나 단체가 돌아가며 추모제를 주최한다고 해요.

올해는 511, 대전 그림책방 넉점반에서 열려요.

장소가 바뀌었어도, 선생님께서 잘 지켜보시겠죠?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