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1. 5.
책보다 더 좋은 이야기
이야기는 참 좋다. 책이 없어도 할 수 있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할 수 있고, 잠자기 전에 서로 마주 누워서도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참 재밌다. 책에 있는 똑같은 내용이라도 이야기로 하면 더 재밌을 때가 많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 표정이 재밌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하는 사람의 모습이 재밌다. 괜히 상대가 더 멋있어진다.
이야기는 착하다. 이야기하다가 말문이 막히거나 하면 이야기를 듣던 사람이 나서게 한다.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 까먹으면 듣던 사람이 알려주기도 하고, 때론 맞장구도 쳐준다. 결코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만 모든 걸 맡기지 않고 함께 한다.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책에서 읽은 이야기, 옛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 그리고 겪은 이야기, 지어낸 이야기, 거기다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면서 조금씩 살이 붙어 달라진 이야기까지. 정말 이야기의 세계는 끝이 없다.
이야기를 못한다고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 청산유수로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밌지만, 이야기를 못하는 사람이 진지하게 하는 이야기는 또 기가 막히게 재밌다. 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 맛. 그것도 이야기를 듣는 맛이다.
이야기를 할 때는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에 눈빛이 오고간다. 이야기는 혼자서 할 수가 없다. 나와 상대가 함께 있어야만 한다. 그러니 이야기는 절대 일방적이지 않다. 서로에게 믿음이 생긴다.
그런데 이 좋은 이야기 문화를 점점 보기 어려워진다. 이야기는 원래의 자유분방함을 잃어버리고 점점 고정된 틀이 되고 마는 것 같다. 이야기를 몰라서 못하고,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에 대해 배려를 할 여유가 없이 늘 일방적으로 흐르는 분위기 때문인 듯하다.
추운 겨울이다. 겨울은 아무래도 이야기의 계절이다. 이번 겨울엔 아이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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