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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발왼발의 독서학교/아이+책+엄마

옛날이야기는 아이와 함께 진화한다 < 1 > 반쪽이

by 오른발왼발 2025.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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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옛날이야기는 아이와 함께 진화한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지금도 밤마다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지금은 나보다 더 많은 옛날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엄마한테 듣는 이야기는 또 다른 맛이 있기 때문이다

 

 

옛날 옛날에 뽕나무하고 대나무하고 참나무가 있었거든. 그런데 하루는 뽕나무가 방귀를 뽕~ 뀐 거야. 그러니까 대나무가 대끼, 이놈!’ 하고 야단을 쳤지. 그 모습을 보고 참나무가 참아라, 참아라했대.”

아이가 잠이 안 온다고 칭얼댈 때면 토닥토닥 아이를 재우며 옛날이야기를 해주곤 했어요. 처음으로 아이에게 해준 이야기가 바로 뽕나무 대나무 참나무였어요. 두 돌이 좀 지난 아이에게 복잡한 이야기는 무리였기 때문에 제가 아는 가장 짧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은 거였지요. 말놀이의 재미도 느낄 수 있었고요.

참나무 참 착해.”

그치? 엄마도 그래.”

그리고 이렇게 몇 마디 주고받다 보면 아이는 자연스레 잠이 들곤 했어요. 그래서일까요? 언제부턴가 아이는 잠자기 전에 옛날이야기를 듣는 게 아주 당연한 일이 됐어요.

, 이제 자자.”

ㅎ고 불을 끄면 그 말을 옛날이야기를 해준다는 말과 거의 같은 말로 생각했거든요. 저는 밤마다 옛날이야기를 해야 했어요.

사실 저는 어릴 적에 옛날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옛날이야기는 당연히 책으로 보는 거라 생각했었죠. 옛날이야기를 새롭게 볼 수 있었던 건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옛날이야기를 공부하면서부터였어요. 하지만 공부를 한다고 해서 옛날이야기를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당연히 누군가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가장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였어요.

하지만 아이 때문에 용기를 냈지요. 그리고 밤마다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답니다.

 

 

옛날이야기는 아이와 함께 진화한다

 

본격적으로 옛날이야기를 해준 건 아이가 네 살 때였어요. 이 무렵 제가 가장 많이 들려준 건 반쪽이였어요. 제가 꼭 이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려고 마음먹었던 건 아니었어요. 아이는 한번 이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해도 늘 반쪽이만 들려달랬어요.

아이는 반쪽이가 묶여 있던 바위랑 나무를 쑥 뽑아내고,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잡는 장면에서 감탄을 하곤 했죠. 부잣집 딸을 데려오면서 벌어지는 소동에서는 아주 신나했고요.


아이는 다섯 살 때
반쪽이를 책으로 만나게 됐어요. 그림책이 아니라 저학년 그림동화로 나온 도둑나라를 친 새신랑(김중철 엮음/강우근 그림/웅진주니어)이었죠. 이 책에는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아이는 반쪽이만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달랬어요. 한 달에 넘도록 이 책에서 반쪽이만 봤어요. 그러더니 하루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여기 반쪽이가 몸을 돌리면 나머지 반쪽이 있는 거 맞지?”

아이는 제가 이야기로만 들려줄 때는 반쪽이 모습에 대해 뭐라 말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림이 실려 있는 책을 보니 반쪽이 모습에도 신경이 쓰였던 것 같아요. 이 책에는 몸이 반쪽뿐이니 반쪽이 모습이 나와 있어요. 얼굴도 반밖에 없고, 옷을 입은 한쪽 팔과 다리는 아무것도 없이 펄럭이는 모습이에요. 아이는 지금까지 반쪽이이야기를 들으며 반쪽이가 진짜로 몸이 반밖에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그림을 보고는 반쪽이가 진짜 몸이 반쪽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긴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를 부정하고 싶어진 모양입니다.

이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먼저 안 보여 준 게 참 다행이다 싶어졌죠. 아이는 가끔 자기는 엄마 몸의 반밖에 안 된다고 말하곤 했어요. 반쪽이가 몸이 반쪽이었던 것처럼 아이도 엄마랑 견줄 때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반쪽이가 나무랑 바위를 뽑아내고 호랑이를 잡고 하는 장면에서 신나했던 건 반쪽이의 감춰진 힘을 봤기 때문이었고요. 아마 자기도 반쪽이처럼 감춰진 힘을 발휘할 때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이야기에 빠졌던 것 같아요. 만약 이런 아이에게 진짜로 몸이 반밖에 없는 모습으로 그려진 반쪽이그림책을 먼저 보여줬다면 아이는 반쪽이이야기의 느낌을 반밖에 느끼지 못했을 것 같아요. 어쨌든, 그 후로도 반쪽이는 아이가 가장 즐겨 듣는 이야기의 하나였어요. 잠즐기 전뿐 아니라 버스에서도, 길을 걸어가면서도 반쪽이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했죠.

 

아이가 일곱 살 때였어요. 그날도 저는 아이에게 반쪽이이야기를 열심히 들려주고 있었죠.

엄마, 그런데 반쪽이는 왜 색시한테 자기랑 결혼하겠냐고 물어보지 않아?”

아이가 물었어요.

저는 아차 싶었어요. 제가 몇 년째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주고 있는 동안 아이가 자란 거예요. 처음엔 반쪽이한테만 동일시했던 아이는 커가면서 점차 같은 여자인 색시 입장까지 생각하게 됐던 거지요. 반쪽이가 색시랑 결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색시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고요. 시대도 변했지요. 옛날 반쪽이가 이야기로 전해지던 시기에는 색시의 의견 따위는 필요 없었을지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반쪽이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해도 결혼을 하려면 색시 의견을 들어야 해요.

맞아. 색시 의견도 물어봐야지. 반쪽이는 색시한테 자기랑 결혼하겠냐고 물었어. 색시도 좋다고 했지. 그래서 반쪽이랑 색시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대.”

저는 얼른 아이 말을 받아서 이야기를 마무리했죠. 당연히 다음부터는 반쪽이이야기를 할 때면 색시의 의견도 물어봤고 말이에요. 옛날이야기가 한 단계 진화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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