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과 한음.
어렸을 때 꽤나 많이 봤던 이야기입니다.
정확하게 어떤 책으로 봤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오성과 한음의 장난 속에 감춰진 재치와 지혜를 보며 감탄하며 보곤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제부턴가 오성과 한음은 어렸을 때의 기억만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십여년간 옛이야기를 공부하면서도 오성과한음의 이야기는 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드디어 오성과 한음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소 의외였습니다.
<한국구전설화 1-12>(평민사) 가운데 오성과 한음의 이야기가 생각보다는 좀 적었습니다.
혹지 제가 미처 못 봤는지는 모르지만
1. 이항복의 혼사(평북 1)
2. 오성의 굿(강원)
3. 오성대감의 일화(충북)
4. 한음과 오성의 장난 수작(충남)
5. 오성대감의 기지 1(전북 1)
6. 오성대감의 기지 2(전북 1)
7. 오성대감 일화(전북 1)
8. 거짓말하면 똥 먹는다(전북 2)
9. 오성이 똥 먹다(전북 2)
10. 오성과 정녀(전북 2)
11. 장가 들기 전에 신부될 처자를 본 오성(전북 2)
12. 오성 내외의 수작(전북 2)
13. 오성과 한음의 장난(전북 2)
14. 오성과 대장장이(전북 2)
이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야기 편 수만 따지자면 다른 이야기랑 견줄 때 그렇게 적은 수라고 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봤던 숱한 이야기들은 어디에서 나왔던 것인지 그 행방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어릴 때 기억으로는 오성과 한음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오성과 한음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단 2편(오성과 한음의 장난, 오성과 대장장이)이었습니다.
하다못해 담에 넘어온 감나무 가지에 열린 감은 누구의 것인지를 묻는 이야기... 방안에 팔을 뻗고는 이 팔이 누구 팔이냐고 묻는 이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어릴 적 기억이 틀린 것이었을까요?
아님 어릴 적 봤던 오성과 한음의 이야기들이 진짜 구전설화가 아니라 어린이책에 맞게 그럴 듯하게 만들어졌던 걸까요?
참으로 아리송합니다.
같이 공부하는 분의 말씀이 이 이야기는 교과서에 실렸었다고 하십니다.
음...
역시 교과서 탓이었을까요?
기회가 되면 옛날 교과서를 꼭 살펴봐야겠습니다.
구전설화에 실린 이야기의 대부분은 다소 민망한 19금짜리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오성과 한음 이야기의 대부분이 이런 이야기라니 다시 한번 놀랍니다.
오성의 어린시절 이야기인 '오성과 대장장이'는 제가 알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오성의 지혜로움보다는 앞날을 내다보고 준비해주는 오성을 몰라보는 속 좁은 대장장이의 모습이 더 부각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오성과 한음 이야기인데 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건 당연하다 싶어지기도 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요즘의 눈으로 보면 신경에 거슬리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특히 여성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성과 한음을 한대 '탁' 때려주고 싶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이야기들이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구전되고 있는걸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이야기들은 모두 너무 강렬한 이미지를 줍니다.
상황 하나하나가 우스워서 너털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가 없게 합니다.
민담의 본령은 '재미'에 있다고 하지요.
이런 의미에서 오성과 한음은 민담의 노릇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실재 인물 이야기라는 점에서 순수한 민담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말이지요)
이번에 오성과 한음 이야기를 보면서 조금 실망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새로운 발견도 있었습니다.
바로 오성 부인의 이야기 덕분입니다.
장가들기 전에 신부될 처자를 본 오성, 거짓말하면 똥 먹는다, 오성 내외의 수작 등은
오성 부인 역시 오성 못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오성보다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어렸을 때 추억 속의 오성과 한음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대신 오성 부인이라는 당당하고 재기 넘치는 여성을 만났다는 점에서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구비문학대계에는 오성과 한음 이야기가 훨씬 많습니다.
약 70편 정도 검색이 됩니다.
언듯 살펴보긴 했는데 구비문학대계의 작품 역시도 한국구전설화의 이야기랑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더 꼼꼼히 검토를 해봐야겠습니다.
구비문학대계의 목록입니다.
1집 1책 : 오성과 한음(똥 넣은 홍시감), 오성과 한음(수박농사 감나무 임자)
1집 2책 : 오성대감 이야기
1집 7책 : 개구장이 오성과 한음, 정풍신과 오성 대감
2집 3책 : 숙종과 이항복
2집 5책 : 오성대감의 장난, 오성의 제문, 개 꾸짖듯 하려다가 망신당한 오성대감의 아들
2집 6책 : 오성과 대장장이, 오성대감과 그 부인, 오성대감과 그 장인, 오성의 담력
2집 7책 : 오성과 선생
2집 8책 : 오성대감의 지혜, 오성과 한음
2집 9책 : 오성과 한음(초상집 얘기), 오성대감의 지혜
3집 1책 : 한음과 오성, 이항복의 재치
2집 2책 : 오성 이항복의 일화, 원귀로 죽을 사람 살린 오성, 저승사자를 쫓은 오성대감, 오성과 신립
3집 3책 : 죽을 아이에게 살 방법을 알려 준 오성
4집 3책 : 똥 만두 먹은 오성, 오성과 한음, 오성의 침착성, 오성의 파혼하기 성혼하기, 오성과 이여송, 오성과 대장군
4집 5책 : 오성의 담력과 지략
5집 5책 : 오성대감의 시묘를 한 사람
5집 6책 : 한음의 기지와 괴력
5집 7책 : 오성대감의 출세, 오성대감의 꾀
6집 3책 : 오성대감 이야기 1, 오성대감 이야기 2, 오성과 이여송, 오성과 한음
7집 10책 : 짐승 소리를 알아들은 오성대감
7집 13책 : 오성대감 부인의 정절, 수수께끼로 도깨비 쫓은 오성대감
7집 14책 : 오성대감 부부의 소화
7집 15책 : 오성의 조사인곡 의리부당
7집 16책 : 오성과 한음의 일화 (1), 오성과 한음의 일화 (2), 귀신에게 글귀 맞춰 준 오성대감, 오성과 한음의 일화 (3)
7집 17책 : 부인에게 당한 오성대감, 한음을 골려준 오성대감, 손님으로 둔갑한 여우를 퇴치한 오성, 스승을 능가한 소년 오성
7집 1책 : 오성대감 이야기
7집 3책 : 오성과 한음
7집 5책 : 정숙한 오성대감의 부인, 오성대감의 원놀음
8집 10책 : 한음의 아들
8집 14책 : 오성과 한음, 오성과 한음의 부자 다툼, 한음과 오성 (1), 한음과 오성 (2), 오성대감의 귀신 퇴치
8집 3책 : 오성과 한음
8집 4책 : 오성과 담배 장수
8집 5책 : 오성대감 이야기
8집 9책 : 오성대감의 수모, 오성과 한음 (2), 오성과 한음 (1)
9집 2책 : 오성 이항복
9집 3책 : 유 벙어리와 이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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