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들이 편안히 잠들기를 바라며
《잠들지 못하는 뼈》(선안나 글/허태준 그림/미세기/2011년)
1.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
보도연맹 사건.
1950년 한국전쟁 중에 약 20만명의 민간인이 극우단체에 의해 학살된 사건이다. 이때 학살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국민보도연맹, 흔히 보도연맹이라 불리는 단체의 회원이었기 때문에 ‘보도연맹 사건’이라 부른다.
보도연맹은 좌파 전향자로 구성된 반공단체 조직이다. 그렇다면 왜 좌파 전향자로 구성된 반공단체 조직원들인 이들이 한국전쟁의 와중에 학살당해야만 했을까?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일 년 전인 1949년 6월 결성된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가입한 사람보다는 강제로 가입을 한 사람이 많았다. 좌파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가입을 해야 했는데, 좌파라는 것 자체가 애매한 점이 많았다. 게다가 공무원들의 실적주의, 지역별 할당제 때문에 자신도 잘 모르는 사이에 가입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보도연맹이 설립된 지 불과 반 년만인 1949년 말에 이미 가입자 수가 30만 명에 달했다는 점은 저변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은 북한의 공격에 밀려 후퇴를 하면서 보도연맹원들이 북한군이 점령한 지역에서 북한군에 협조할까 하는 의심에 이들을 대량 학살하기 시작했다. 10대 학생이라고 해도 보도연맹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것만으로 학살 대상이 되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산골짜기, 우물, 갱도 등에 모아놓고 한꺼번에 총살하기도 했다. 이때 학살된 사람의 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최소 20만 명 이상이라 추산만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끔찍한 사건은 오래도록 역사의 기억에서 지워져 있었다. 보도연맹 사건을 주도했던 군인과 경찰 그리고 반공을 국시로 하는 정부가 이 사건을 철저히 은폐하고 금기시했기 때문이다. 운 좋게 목숨을 건진 보도연맹원도, 유가족들도,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자칫하면 좌익으로 몰려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도연맹 사건은 가해자의 입장에서도,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가 됐다.
2.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
누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기 마련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기에 억지로 기억을 지우려고도 하고, 기억을 애써 외면하며 멀어지려고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의식에서 그 기억을 지웠다 해도 무의식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문득문득 다시 떠오르며 일상을 방해하고 파괴해나간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묻어두면 당장은 편안할 수 있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채 묻어둔 역사는 두고두고 짐이 될 뿐이다. 사건의 당사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란 단지 지나간 일의 기록이 아니다. 역사는 현재의 의미이고 미래에 대한 방향이다.
보도연맹 사건도 아주 가끔씩 수면에 떠올랐던 적이 있다. 하지만 기억을 덮고 싶은 사람들에 의해 다시 묻혔다. 90년대 말, 보도연맹 사건 피해자들의 유해가 부분적으로 발견되었고,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한국전쟁 때 민간인들이 희생된 곳으로 확인된 168곳 가운데 몇 곳을 먼저 선정하여 본격적인 유해 발굴 작업을 시작했다. 발굴 현장에서는 유해와 유품 외에도 집단 학살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M1 · 칼빈 소총 탄알과 탄피, 수갑, 삐삐선 등이 나왔다. 목격자, 유족, 가해자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드디어 그동안 지워졌던 보도연맹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2009년 11월 26일, 진실화해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보도연맹원 4,934명의 희생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북한군에 점령되지 않은 경남과 경북 일부 지역, 그리고 국군이 후퇴하는 길목이었던 청원 지방에서 희생자가 많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미군의 개입도 확인했다.
이제 예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서 알고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렇게 발표가 된다고 해서, 그게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기억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한 지금, 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기억을 다시 일깨울 계기가 없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진실화해위원회의 발표는 마지막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불편해 했던 이 사건과 마주볼 수 있는 시작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이 책이 보여주는 보도연맹 사건
앞선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잠들지 못하는 뼈』는 진실화해위원회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보도연맹 사건에 관한 책이다. 과연 이 책에선 보도연맹 사건을 어떻게 보여주고 있을까?
이 책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발굴한 유해를 연구하는 유해감식센터에 찾아온 한 할머니의 기억을 통해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
할머니가 살던 곳은 청주에서 삼십 리가 좀 넘는 거리에 있는 강내면 궁현리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이다.
어린 남주였던 시절, 할머니는 행복했다. 약간의 불편함과 어려움은 있었지만 단란한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 엄마, 그리고 충북도청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청주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모범생 현기 오빠, 남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을 때 맘이 편한 남주, 남들 눈에 띄는 걸 좋아하고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하던 여동생 향주까지, 모두 다 행복했다. 전쟁이 났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불행의 씨앗이 있다면 그건 아버지가 보도연맹원이라는 사실이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지서에서는 보도연맹에 가입시켜야 할 사람들 명단을 이미 가지고 있었고, 그 속에 아버지 이름도 있었다. 삼일절 기념식에 연설을 들으러 갔던 것만으로 아버진 빨갱이가 되어 있었고, 빨갱이 집구석은 불을 확 질러 버린다는 말에 전향서를 쓰고 보도연맹원이 되고 말았다.
마을에 전쟁이 가까워 오기 전, 남주네는 죽음의 그림자가 먼저 왔다. 청주에서 돌아와야 할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청주에서도 행방이 묘연했다. 아버지는 방공호를 파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이혜숙 선생님은 남주와 향주에게 말했다.
“일 끝나면 보도연맹만 모이라고 할 텐데, 아버지 절대 못 가시게 해라.”
뜀박질 속도가 빨랐던 향주가 뛰어갔지만 옆에 다른 사람이 많아서 제대로 말을 전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는 면사무소 창고에 갇혔고, 미국 비행기의 폭격으로 창고는 산산조각이 났다. 향주는 아버지에게 달려가다 청력을 잃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난 뒤엔 방안에 틀어박혀 바깥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귀를 틀어막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 결국 스무 살 되던 해 목을 매고 말았다. 오빠도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이 책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보도연맹을 둘러싼 이러저러한 사정을 남주네 가족의 일화를 통해 보여준다.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도 편을 나누고, 반대 세력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는 모습, 보도연맹원을 모집하는 과정, 또 보도연맹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또 그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까지 말이다.
전쟁의 참상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강제로 보도연맹원으로 가입이 되고, 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불편함을 겪다,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해야 했던 사람들. 이 책은 남주네 가족 이야기를 통해 보도연맹 사건의 광풍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4. 이 책이 뼈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
이 책에는 큰 장점이 있다. 역사를 현재의 이야기로 연장시키는 구성이다.
이야기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어린 남주네 가족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과거의 남주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다.
현재 이야기의 주인공은 태오다. 태오는 진실화해위원회 유해발굴단에서 유해발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유해감식센터에서 연구보조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태오는 유골들에게 음악을 들려준다. 처음엔 그저 발굴 작업을 하며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서였지만,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관객들의 들리지 않는 반응을 느꼈고, 그래서 감식센터에서도 틈만 나면 유골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어렸을 적, 논에서 나온 사람 뼛조각을 묻어주고 위로해주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네 집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국가유공자인 할아버지는 보도연맹 사건의 가해자였다. 할아버지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가해자로서 공개적인 증언을 했다. 하지만 그 증언은 지역신문에만 일부 실렸을 뿐 거의 보도되지 않았고, 그래서 다른 식구들은 여전히 그 일을 몰랐다. 할아버지의 생신날, 태오는 보도연맹 사건을 두고 큰아버지와 논쟁이 붙는다. 할아버지는 태오에게 묻는다.
“이왕 지나간 일을 새삼 파헤칠 필요가 있겠느냐?”
태오는 ‘유족을 위해서, 국민 전체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대답한다. 국가가 국민을 쉽게 죽이고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면,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일이 또 생기게 될 거라고.
태오네 가족의 모습은 보도연맹 사건이 결코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대비되는 할아버지네 분위기, 할아버지 생신 날 태오가 큰아버지와 붙었던 논쟁의 모습은 바로 현재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태오는 여름방학 동안 한국전쟁 때 민간인 학살 장소로 확인된 168곳을 돌며 전국 순회 위령 공연을 한다. 그리고 개인 블로그에 그 기록을 남기며 네티즌들과 소통한다. 당연히 호의적인 반응뿐 아니라 좌파는 모조리 제거해야 한다는 욕설도 듣는다. 하지만 그래도 공연을 계속한다. 이것이 태오가 뼈들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왔다 갔다 하는 구성이 읽어내기에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런 구성 덕분에 이 책은 보통 역사동화와는 달리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역사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우리가 찾을 차례다. 태오가 뼈들을 기억하는 방법을 찾은 것처럼, 이제 우리도 뼈들을 기억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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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분기별로 펴내는 《어린이문학》 2012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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