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괴물을 대하는 자세
《괴물 길들이기》(김진경 글/송희진 그림/비룡소/2009년)
1. 민수, 괴물을 만나다
민수는 피아노 학원에 가기 싫은 날은 일부러 고수부지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돌아간다. 괴물을 처음 만난 그날도 그랬다.
다른 날과 다른 점이라면 심술이 나서 풀 사이로 보는 돌을 발로 뻥 찼는데 알고 보니 그 돌이 어른 머리통보다 큰 돌이었고, 덕분에 민수는 펄쩍펄쩍 뛸 만큼 발가락을 심하게 다쳤다는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돌 밑으로 드러나 보이는 구멍을 보다 그만 잠이 들어버리는 바람에 피아노 학원에 못 가고 말았다. 가기 싫은 건 마음뿐이었는데, 결국엔 못 가고 만 것이다.
“이건 분명히 음모야.”
민수는 꼭 무언가가 피아노 학원에 못 가게 방해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뭔가 이상하게 생긴 동물들이 나타났다. 황금빛 털에 주둥이 위쪽엔 뾰족한 뿔이 나 있고, 두 눈은 하늘만 쳐다보는 것처럼 위쪽으로 모여 있다. 민수는 그 동물들이 “왜? 돼!” 하고 짖는 것 같아서 한 마리에게는 “왜?” 또 한 나리에게는 “돼!”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왜?’와 ‘돼!’는 민수를 따라 집으로 온다. 그런데 오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왜?’와 ‘돼!’는 민수 눈에만 보이고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도대체 ‘왜?’와 ‘돼!’의 정체는 뭘까? 혹시 ‘음모’랑 관련이 있는 걸까?
2. 괴물, 민수를 괴롭히다
‘왜?’와 ‘돼!’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민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민수 너, 이리 좀 와 봐!”
“왜?”
“뭐? 왜? 이 녀석이 뭘 잘했다고 말대답이야, 말대답이?”
엄마가 화난 목소리로 부를 때 민수 눈에는 달항아리를 향해 가는 ‘왜?’가 눈에 들어왔고, 혹시라도 달항아리가 깨질까 걱정이 되어 ‘왜?’를 부른 것이 화근이었다.
“너 어디 갔다 왔어? 피아노 학원 빼먹고 어디 갔다 온 거야? 민수 너 그래도 돼? 학원 빼먹고 그러면 돼, 안 돼?”
“돼!”
“뭐? 돼?”
이번엔 ‘돼!’가 접시꽂이를 건들이고 있어서 부른다는 것이 화근이었다.
“왜? 돼!, 왜? 돼!, 왜? 돼!”
게다가 ‘왜?’와 ‘돼!’는 계속 짖어대고 엄마는 민수가 엄마를 약 올린다고 생각하고 민수 궁둥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발을 다쳐서 아프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다른 사람들은 다 ‘왜?’와 ‘돼!’를 못 보는데 할머니는 ‘왜?’와 ‘돼!’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할머니는 어떻게 ‘왜?’와 ‘돼!’를 알고 있을까?
3. 괴물을 쫓아내기로 하다
민수는 ‘왜?’와 ‘돼!’를 쫓아내기로 했다. 커다란 고릴라 인형을 졸고 있는 ‘왜?’와 ‘돼!’에게 던지자 ‘왜?’와 ‘돼!’의 뿔에 정확히 꽂혔다. 민수는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고릴라 인형에 깔려 있는 ‘왜?’와 ‘돼!’를 커다란 비닐봉지에 넣어 갖다 버리는데 성공한다. 또 엄마도 드디어 민수가 엄지발가락을 다친 사실을 알게 됐다. 모든 게 다 해결이 되는 듯 싶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모든 건 다시 틀어져 버린다. 갖다 버리는 게 해답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밤새 뒤척이다 아침에 깨보니 시간은 9시 반. 엄마가 병원에 가야 한다고 선생님한테 전화를 드렸다지만 눈을 뜨자마자 깜짝 놀랐다. 놀랄 일은 또 있다. 어제 저녁 할머니랑 내다 버렸던 고릴라 인형이 들어 있는 비닐봉지가 떡하니 돌아와 있다. 삼촌이 수위실 앞에서 들고 왔단다.
민수가 ‘왜?’ ‘돼!’ 괴물을 겨우겨우 잡아서 쫓아냈는데 들고 오면 안 된다고 하자 삼촌은 말했다. 그렇게 함부로 버리면 다른 애들 집에 따라가서 엄청 말썽을 피우고, 더 무시무시하게 커져서 다시 찾아온다고. 알고 보니 삼촌은 크면서 엄청나게 많은 괴물들을 집에 데리고 왔던 괴물 전문가다. 그런 삼촌이 방법을 알려준다. 가장 좋은 건 괴물을 길들이는 것이라고. 그럼 괴물은 마음속으로 쏙 들어와 버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된다고 한다. 괴물을 길들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냥 길들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된다고 한다. 민수는 긴가민가하면서 속으로 ‘왜?’와 ‘돼!’를 길들이겠다고 외쳤다. 그러자 괴물들은 사라져 버렸다.
4. 괴물의 정체는 무엇일까?
괴물은 사라졌다. 처음 등장할 때의 신비감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싱거운 퇴장이다. 왠지 민수와 괴물이 좀 더 치열하게 지내고, 괴물을 없애기 위해서도 좀 더 치열하게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 됐어야 할 것 같다.
현실에서 이런 삼촌이 있으면 참 든든하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삼촌이 지나치게 빨리 개입을 했다. 민수 보고 괴물 하나를 길들였으니 불쑥 클 거라고 했지만 괴물을 쉽게 길들이는 방법을 알려준 탓에 더 많이 클 수 있는 기회를 없앤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돼!’라는 괴물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괴물의 정체는 곧 자기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민수의 입장에서는 괴물을 집에 데려온 지 겨우 이틀 만에 모든 사건이 해결 된 셈인데, 과연 그럼 민수는 ‘왜?’ ‘돼!’하는 반항심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게 된 걸까? 이렇게 쉽게 괴물을 길들일 수 있다면 앞으로 나타나는 그 어떤 괴물도 쉽게 길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괴물은 더 이상 괴물일 수가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괴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5. ‘왜?’ ‘돼!’와 옛이야기 속 괴물 ‘조마구’
‘조마구’ 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조마구는 엄마가 차려놓은 밥과 반찬을 다 먹어치운다. 그 모습에 화가 난 엄마가 조마구를 때리지만 그 때마다 조마구는 점점 커져서 결국엔 엄마를 죽여 버리거나 혹은 눈을 빼버리고 집 앞 대추나무에 매달아 놓는다.
사람들은 모성의 위대함을 말하지만 엄마도 사람인 이상 때때로 삶에 지치기 마련이다. 때로는 엄마가 해 놓은 밥을 홀딱 홀딱 먹어치우는 아이들이 조마구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마치 ‘왜?’ ‘돼!’가 엄마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오듯이 말이다. 하지만 조마구든 ‘왜?’ ‘돼!’든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괴물이다. 그래서 민수가 삼촌의 도움을 받아 괴물을 길들였듯이 자기 마음속의 괴물을 길들여 가며 성장해 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괴물을 길들이기란 민수가 했던 것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어른인 엄마조차도 조마구를 길들이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그에 비해 ‘왜?’ ‘돼!’는 너무 쉽게 길들여진다. 어른인 삼촌의 도움을 받아 너무 간단하게 해결된다. 그것도 그저 길들이기로 마음만 먹는다고 바로 해결이 된다. 문제 해결이 너무 쉽다.
혹시 삼촌도 할머니의 도움으로 괴물들을 길들였을까? 할머니가 ‘왜?’와 ‘돼!’를 알고 있는 걸 보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른들의 개입이 대를 이어 계속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6. 괴물을 진짜로 다스릴 수 있으려면
불만스럽기는 했지만 이 책은 오랫동안 늘 마음 한켠에 있다가 불쑥불쑥 떠오르곤 했다. 왜였을까? 그건 아무래도 아이 마음속에 있는 괴물이 수면 위에 떠올랐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누구나 마음속에 다 갖고 있는 괴물, 진정한 의미에서 성장이란 그 괴물을 다스릴 수 있게 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괴물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억누르려고만 한다면 조마구 이야기처럼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한 엄마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아이가 괴물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서 왜 그렇게 괴물 이야기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자기를 가리키며 ‘이 안에 괴물이 있어’라고 대답해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처럼 불안하고 불만이 많은 아이들 가운데는 괴물 이야기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에서 괴물이 사라지면 마음속의 불안함, 불만, 두려움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한두 번 듣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괴물 이야기를 보고 또 보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아이들의 심리를 잘 끄집어 낸 책이다. 그래서 더 아쉽기만 하다. 어른의 성급한 개입도 그렇고 문제 해결 방법도 너무 쉽다. 아이들은 좀 더 치열하게 괴물을 길들여야 한다.
- 이 글은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에서 분기별로 펴내는 《어린이문학》 2012년 여름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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