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에는 이유가 있다!
《변신 쥐가 돌아왔다》(최정금 글/김무연 그림/별숲/2012년)
1. 이야기의 시작-옛이야기 속 변신 쥐
손톱을 먹고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된다고 한다. 손톱을 먹은 쥐가 손톱 주인의 모습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란다.
손톱을 먹은 쥐가 사람으로 변신을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은데, 한 번 들으면 잘 잊히질 않는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게 분명하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어려서 옛이야기 한 편 못 들어봤다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 이야기만큼은 알고 있다.
쥐가 내 모습으로 변신을 해, 진짜 나를 몰아낸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오싹했기 때문일까? 아님 쥐가 변신한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뭔가 나 자신에게 이야기를 걸고 있기 때문일까? 아무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야기이었던 건 틀림없다.
그래서일까? 이 이야기는 계속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김우경의 『수일이와 수일이』에 이어 최정금의 『변신 쥐가 돌아왔다』 역시 손톱을 먹고 사람으로 변신하는 바로 그 이야기다.
하지만 두 책은 참 다르다.『수일이와 수일이』에서 나로 변신한 쥐가 진짜 나를 몰아내는 상황으로 가는 모습이 옛이야기와 같은 구성이이라면 『변신 쥐가 돌아왔다』는 같은 이야기이지만 다르다. 변신 쥐가 또 다른 변신의 면모를 보인다. 변신의 진화다.
2. 변신 쥐는 왜 변신을 하게 되었나?
옛이야기 속 쥐가 왜 손톱을 먹고 사람이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손톱 발톱을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를 어겼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전해오는 이야기만으로는 알 수 없는 무언가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른다. 옛이야기 ‘꾀보 막동이’ 유형의 이야기에서 막동이가 주인을 골탕 먹이는 까닭이 나오진 않지만 양반과 하인의 관계 속에서 짐작되는 바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옹고집전』에서는 변신의 까닭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옹고집은 돈 밖에 모르는 인물로 부모를 함부로 대하고 시주를 온 스님도 두들겨 패서 보낸다. 대신 여기선 쥐가 변신하는 게 아니라 스님이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를 옹고집으로 변신시킨다.
두 이야기 모두 ‘변신’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 변신이 주인공의 의지로 생긴 것은 아니다. 주인공 입장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똑같이 생긴 ‘또 하나의 나’를 만나 곤혹을 치른다.
『변신 쥐가 돌아왔다』는 손톱을 먹고 사람으로 변신한 옛이야기 속 쥐와 『옹고집전』이 섞여 있다. 옛이야기와 『옹고집전』속에서 변신하는 대상은 쥐와 허수아비로 차이가 있지만 ‘또 다른 나’ 때문에 곤혹을 치르는 모습이 같기 때문인지 어색함은 없다.
그럼, 이 책의 변신 쥐는 왜 변신을 하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이 책에 나오는 변신 쥐는 또 다른 옹고집으로 변신해 옹고집을 곤혹스럽게 했던 바로 그 쥐란다. 벌써 이백년 전에 있었던 쥐가 지금 나타날 수 있었던 데는 사연이 있다. 쥐에게 가짜 옹고집으로 변신하게 했던 학대사가 쥐에게 불로초를 주었다고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쥐에게는 사는 동안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두 번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 단, 옹고집의 자손 가운데 누군가로만.
3. 옹고집 집안과 변신 쥐와의 질긴 인연
옹고집과 변신 쥐와의 인연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정말 질긴 인연이다.
옹고집 자손은 그 후 대대로 전문 쥐 사냥꾼으로 살아간다. 근 이백년 가까이 이어온 전통은 변신 쥐가 살아온 세월과 딱 맞아떨어진다.
현재 전문 쥐 사냥꾼은 옹고직. 주인공 옹골찬의 할아버지다. 다음은 옹골찬 차례다. 쥐 사냥꾼이 가업이긴 하지만 한 대씩 걸러서 이어내려 왔기 때문이다. 옹골찬은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웠고, 가업을 잇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아주 유능한 쥐 사냥꾼이어서, 아무리 원성이 자자한 쥐들도 할아버지 앞에서는 찍 소리 못하고 잡혔다. 딱 한 녀석만 빼고.
사실 그 쥐도 사십 년 전, 잡은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보여 준 사진 속의 쥐는 토끼장만 한 커다란 쥐덫에 갇혀 있었다. 그 쥐는 한쪽 귀가 뜯겨 없어져서 짝귀로 불렸는데, 당시에도 백오십 살은 되었을 거라 했고 사람 말을 하고 둔갑을 한다는 말이 전해졌다고 한다.
얼마나 전설적인 쥐였으면 짝귀를 잡고서 동네잔치까지 했다고 한다. 그냥 죽이긴 아까워 박제를 하기로 하고 곳간에 가두고 보초까지 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이튿날, 짝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뒤로 할아버지는 짝귀를 다시 잡는 게 평생의 목표가 되었다. 집안이 대대로 쥐 사냥꾼이 된 건 짝귀 때문이고, 짝귀가 죽어야만 가업을 이을 명분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옹골찬이 할아버지의 쥐 사냥에 함께 나서야 할 날이 오고야 말았다. 할아버지가 고모 가게에 커다란 쥐를 잡는데 함께 가자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옹골찬은 더 이상 쥐 사냥꾼이 되고 싶지 않다. 할아버지가 쥐덫에 걸린 쥐를 익사시키는 장면을 본 다음부터다. 그래도 할아버지에게 말을 할 수는 없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짝귀를 못 잡으면 옹골찬이 잡아야 하고, 옹골찬도 못 잡으면 옹골찬의 손자가 또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었다.
4. 옹골찬, 짝귀를 만나다
고모 가게에 설치했던 쥐덫은 옹골찬 혼자서 처리하게 됐다. 할아버지는 형님뻘 되는 분이 돌아가셔서 목포에 가셔야 한다며 옹골찬에게 쥐 처리를 맡기셨다.
고모 가게 안에서 옹골찬은 짝귀와 마주한다. 고모 가게에 있는 쥐가 짝귀라는 걸 몰랐던 할아버지는 쥐덫을 너무 작게 만들었고, 짝귀는 쥐덫에 몸이 반만 걸린 채 있었다.
짝귀는 옹골찬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집으로 가자며 고모의 모습으로 변신을 한다. 고의는 아니었으나 고모가 바닥에 뱉어 놓은 손톱을 집어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불쑥 칡범을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쥐로 변신한 쥐고모는 옹고집 이야기 속의 쥐가 바로 자신이며, 옹골찬이 바로 옹고집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칡범은 이야기 속의 고양이고 말이다.
짝귀는 그저 변신을 하고 사람 말을 하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옹골찬의 생각까지도 다 읽어냈다.
옹골찬은 마음이 이상해진다. 처음 짝귀를 집으로 데려올 때는 심난하기만 했는데, 짝귀랑 이야기를 하는 동안 짝귀가 점점 친구 같은 느낌이 든다. 쥐 사냥꾼을 하기 싫어도 할아버지에게는 차마 그 말을 못하는데, 짝귀하고는 얼마든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5. 옹골찬, 짝귀와 친구가 되다
짝귀의 이번 변신은 세 번째, 마지막이다. 마지막 변신이 끝나면 수명도 끝장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변신을 풀어주는 게 바로 칡범이다.
칡범은 옹골찬이 집 주위에서 여러 번 봤던 바로 그 고양이다. 옹골찬이 모르고 있었지만, 계속 집 주위를 지키고 있었던 거다.
짝귀는 이미 칡범을 만나서 이백년간의 목숨을 정리할 마음을 먹고 있고, 세 번째 변신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칡범은 짝귀와의 마지막 대결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뻔히 아는 옹골찬은 이대로 짝귀를 보내고 싶지 않다. 단순히 짝귀가 죽는 것에 대한 측은지심 때문이 아니다. 어느새 짝귀는 옹골찬의 친구가 된 것이다.
짝귀는 옹골찬에게 자신의 모든 비밀을 털어놓았다. 짝귀는 치사하게 옹골찬의 생각을 들여다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옹골찬이 차마 입 밖에 못 내고 있는 말들을 꺼내고 조언을 해줬다. 친구 성환이의 소중함에 대해서, 또 할아버지에게 쥐 사냥꾼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옹골찬은 짝귀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뻔히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죽으면 땅에 묻어 달라는 짝귀의 마지막 소원을 어떻게 해서든 지키고만 싶다.
결국 짝귀는 죽는다. ‘친구 덕분에 편히 가네……’라는 말을 남기고. 옹골찬이 짝귀를 친구로 여겼듯이 짝귀도 옹골찬을 친구로 여겼던 것이다.
6. 이제는 옹골찬이 변할 시간
짝귀는 죽었고, 이제 옹골찬만 남았다.
보통 옛이야기에서 변신을 하는 경우 그건 변신하는 대상이 변신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기서 변신은 조금 다르다. 변신을 한 건 쥐였다. 물론 쥐도 변신을 통해 사람으로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하지만 진짜 변신이 필요했던 건 옹골찬이었다.
어려서부터 쥐 사냥꾼인 할아버지의 모습을 막연히 동경하며, 자신이 가업인 쥐 사냥꾼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건 사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쥐 사냥꾼이 되고 싶다는 건 유아기적 막연한 꿈이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쥐를 익사시키는 걸 보고 난 뒤에야 쥐 사냥꾼의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가업인 쥐 사냥꾼을 잇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무서워 차마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 강박적인 쥐 공포증이 있는 아버지의 소심증도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아버지와의 사이는 너무 멀어져 버렸다. 또 친구들 사이에서는 쥐 타령이나 하는 별종으로 찍혔고, 친구들과 갈등이 생기면 해결하는 대신 관심을 끊어버렸다. 성환이만 옹골찬과 관계를 유지하는 정도다. 이런 상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자신이 없다.
즉, 옹골찬이 이런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변신이 꼭 필요했다. 그리고 고모로 변신한 짝귀를 통해 변신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옹골찬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지만 내면에선 변신이 일어난 셈이다.
생각해 보면 진정한 변신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겉모습이 변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겉모습의 변신이 가져오는 내면의 변화이니까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변신 쥐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 낸 셈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옛이야기'사람으로 변신한 쥐'(손톱 쥐) 이야기 함께 읽기
- 같은 소재의 또 다른 동화 《수일이와 수일이》(우리교육) 함께 읽기
- 이 글은 어린이와문학에서 펴내는 《어린이 문학》 2012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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