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아이, 기러기 아빠
《나는 뻐꾸기다》(김혜연 글/장연주 그림/비룡소/2009년)
뻐꾸기.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맡아 기르게 하는 새다.
열한 살 동재는 뻐꾸기다. 여섯 살 때 엄마가 외삼촌 집에 맡기고 가서 오 년째 소식이 없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없다. 이삿짐 차만 보면 혹시나 자신만 남겨두고 이사라도 가지 않을까 불안해진다. 처음엔 자신이 뻐꾸기라는 생각을 못 했지만 동재의 사정을 들은 앞집 아저씨가 ‘뻐꾸기구로구나’ 하고 말하는 순간부터 자신을 뻐꾸기라 여기게 됐다. 뻐꾸기 새끼는 자라서 독립할 때까지 남의 집 신세를 면치 못하니까 말이다.
기러기.
부부 금슬을 상징하는 새다. 기러기 아빠라는 말이 언제부터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부가 헤어져 살면서 한쪽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상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미자가 1960년대에 발표한 ‘기러기 아빠’라는 노래의 가사 역시 그렇다.
동재네 앞집 902호에 이사 온 아저씨는 기러기다. 두 아이와 아내를 미국에 보내고 술로 날을 지새우며 산다.
뻐꾸기 새끼와 기러기 아빠. 만남치고는 참 기막힌 만남이다. 어느 날 뻐꾸기와 기러기가 되어 버린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또래 친구가 아닌 아이와 어른 사이에 일종의 친구 관계가 형성된다. 각자가 놓인 처지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결국엔 상대방에 대한 연민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처지를 그대로 투사해 보는 듯 한 연민 말이다.
흥미로운 설정이다. 게다가 이야기는 처음부터 두 사람의 상황과 불안한 마음을 모두 펼쳐 보여준다. 이야기 시작인 ‘토요일의 이삿짐 차’를 보자. 이삿짐 차는 동재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라도 자기만 내버려두고 외삼촌 가족이 이사를 가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자신이 외삼촌 집안의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다. 집안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동재가 느끼는 쌀쌀맞은 표정의 외숙모, 동재에게 거칠게 대하는 건이 형의 모습은 이 두 사람이 동재와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이 될 것임을 짐작케 해준다. 동재와 친구가 되는 기러기 아저씨와의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동재를 불안하게 했던 이삿짐 차는 동재 앞집인 902호에 이사 오는 차였고, 새로 이사 온 사람이 바로 그 아저씨다. 아저씨와는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 또 버리고 오면서 연달아 만난다. 아저씨와의 첫 만남에 대한 기억이 그렇게 좋았다고 할 수는 없다. 쓰레기를 버릴 땐 괜히 아저씨처럼 성큼성큼 걸어가 쓰레기봉투를 휙 던져 넣는 흉내를 내다 쓰레기봉투가 튕겨 나오는 바람에 사방에 쓰레기가 흩어졌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땐 아저씨한테 받은 과자 때문에 외숙모한텐 핀잔을 듣고 건우 형과도 갈등만 생겼다. 동재는 쓰레기봉투도, 과자도 바닥에 떨어져 흩어진 건 옆집 아저씨 탓이라 여기며 ‘으이고, 재수 없어. 또 만나면 알은척도 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만 보면 두 사람 사이에 호감이 오고감을 느낄 수 있다. 동재가 아저씨처럼 쓰레기를 버려 본 것은 그 모습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었고, 아저씨가 동재한테 과자를 준 것 역시 동재에 대한 호감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여러 가지 상황을 펼쳐놓은 만큼 이야기 전개는 무척이나 빠르다. 다음 장에선 바로 아저씨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진다. 열한 살이나 된 아이가 집 앞에서 오줌을 싸고 말았다. 열한 살에 오줌을 싸다니! 게다가 902호 아저씨가 이 모든 상황을 목격했다. 집엔 아무도 없어 들어갈 수 없다. 동재로선 상황을 타개가 묘책이 없는 셈이다. 이때 아저씨가 자기 집에 와서 씻으라고 제안을 한다. 동재는 기분이 좋진 않아도 대안이 없는 만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리가 아직 안 되어 있는 집, 가족사진으로 봐서 가족들이 있는 것 같긴 한데 혼자 사는 것, 아저씨가 이사 오던 날 아저씨 손에 들려 있던 비닐봉지 속에 담겨 있던 소주, 맥주, 라면 등이 아저씨의 신세를 짐작케 한다.
열한 살 아이가 오줌을 싸고 울고 있는 건 누구나 감추고 싶다. 하지만 그 감추고 싶은 부분을 보게 된 사람한테는 오히려 친밀감을 느낀다. 동재가 그랬다. 그리고 아저씨도 그랬다. 술을 먹고 아파트 단지 안 정원에 쓰러져 자는 모습을 동재에게 들키고 만다. 동재가 오줌을 쌌을 때 아저씨가 도와줬듯이 동재는 아저씨가 집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둘은 서로 도움을 받고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 셈이 됐다. 이렇게 둘은 친구가 된다.
친구는 공유하는 게 점점 더 많아지는 법이다. 아저씨 집 902호는 동재에게 비밀의 방이 된다. 아저씨가 언제든지 와서 컴퓨터를 해도 좋다고 했다. 동재에게 902호는 단지 컴퓨터를 하는 곳이 아니라 답답할 때면 숨을 쉴 수 있는 피난처였다. 아니, 동재에게만 피난처가 된 건 아니었다. 동재가 아파서 쓰러져 있는 아저씨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길 수 있게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걸 생각하면 두 사람 모두에게 피난처이자 안식처가 되어준 셈이다.
하지만 동재에게 위기가 온다. 아저씨가 출장을 간다며 일주일 이상 집을 비우고, 그 사이 엄마가 동재를 데려갈 수 없다는 연락이 오고, 동재를 외삼촌 집에 맡길 때 엄마가 들고 왔던 낯익은 가방을 보는 순간 동재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동재는 902호에 가서 진이 빠진 상태로 사흘을, 병원에서 이틀을 지내게 된다. 엄마가 보내준 택배 상자에 붙어 있던 주소로 엄마가 사는 곳은 알게 됐지만, 엄마가 보내준 돈이 들어 있는 통장은 건우 형과 함께 사라지고 만다. 아저씨는 이혼을 하게 됐지만 대신 둘째 아들이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단다. 아저씨는 이제 더 이상 기러기가 아니다. 모든 위기는 다 동재에게 집중되고,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절정으로 치닫는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는 유희라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함께 다시 전개된다. 유희 역시 동재의 처지와는 좀 다르긴 해도 엄마 아빠가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느닷없는 등장이다. 아마도 문제가 해결된 아저씨를 대체할 새로운 인물로 설정했겠지만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 뻐꾸기 아이와 기러기 아빠라는 선명한 이미지가 절정의 순간에 흐려지는 느낌이다.
아쉽다. 유희가 등장하는 대신 동재와 아저씨와의 좀 더 치밀하고 세심한 장치를 고민했더라면 좋았겠다 싶다. 처음부터 성큼성큼 큼지막한 사건으로 이야기 속도를 높인 것이 오히려 세심한 감정의 선을 놓친 건 아닐까 싶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50호(2009년 6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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