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짝꿍'말고 '진짜 짝꿍'
《일주일 짝꿍 3-165》
(김나연 글/오정택 그림/웅진주니어/2008년)
어린이 책에서 친구는 영원한 화두다. 친구란 그만큼 어린이들의 삶에서 중요하고,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친구를 주제로 한 책은 자칫 식상해지기 쉽다. 누구나 다 한 번쯤은 친구 때문에 고민을 하기 마련이지만, 좋은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고만고만한 고민과 사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통속적으로 빠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나도 이런 경험이 있었어!’ 정도의 감정이입은 되지만 더 이상 나가지는 못한다.
이 책도 친구에 대한 내용이다. 친구를 얻고 싶어 하는 건 장난감 대여점의 장난감들이다. 장난감 대여점의 장난감 신세는 뻔하다. 누군가 대여해 가면 일주일간 그 아이와 함께 지내지만 대여 기간이 지나면 다시 대여점에 돌아와야 한다. 대여 기간인 일주일 동안은 누군가와 짝꿍이 될 수 있지만, 일주일이 지나면 잊히는 존재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자주 대여되는 장난감이라도 마찬가지다. 짝꿍을 자주 만날 수는 있지만 모두 일 주일짜리 짝꿍일 뿐 진짜 짝꿍은 아니다.
대여점에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온 ‘막내’ 오리가 진짜 짝꿍을 찾는 꿈을 이야기하자 대여점에 있는 다른 장난감들은 막내를 비웃는다. 대여점 장난감 신세에 불과한 자신들에게 진짜 짝꿍이란 없다고 한다. 이들에게 진짜 짝꿍은 정말 나타나지 않는 걸까?
대여점 장난감들의 이야기지만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친구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고 현실감이 있다. 여기서는 흔히 생활동화류에서 보이는 친구들 간의 구체적인 갈등 같은 건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실감이 떨어지느냐 하면, 오히려 그 반대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친구들 간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없지만 오히려 자신만의 진짜 짝꿍을 바라는 아이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아이들도 학교에 가면 짝꿍이 있다. 보통은 기간을 정해놓고 그때마다 짝꿍을 바꾼다. 때로는 짝꿍이 마음에 들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짝꿍이 마음에 안 들 때는 함께 짝꿍이 되어 있는 기간 동안 아주 죽을 맛이다. 그리고 진짜 마음에 드는 짝꿍을 만나게 될 날을 기다린다. 물론 막연히 짝꿍이 되고 싶었던 아이와 짝꿍이 된다고 해서 진짜 짝꿍이 되는 건 아니다. 진짜 짝꿍이란 서로 마음과 뜻이 통하는 짝꿍을 의미한다. 짝꿍이 그저 형식적인 거라면 진짜 짝꿍은 내용면에서도 완벽한 짝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새로 짝꿍이 바뀔 때마다 자신만의 진짜 짝꿍을 만나게 되길 바란다. 대여점 장난감들처럼 말이다.
장난감들의 상황은 아이들보다 훨씬 못하다. 대여점에 들어오면서 붙여지는 바코드 번호는 이를 반영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오리가 대여점에서 받은 이름은 3-165. 대여점의 장난감들은 마치 구치소나 교도소의 수감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름이 아닌 번호로 불린다는 점에서, 면회 신청을 하지 않으면 밖의 사람을 전혀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누군가 대여를 신청해 주기 전에는 나가지 못하는 모습이 그렇다. 대여점의 장난감들은 사람들 눈에는 아무런 생명도 없는 물건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마음속으로는 간절히 이야기하지만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할 뿐이다. 사람들이 아무도 없고 그들만이 남았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참 면목을 보여준다. 주인아저씨가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는 자기 자리를 지키면서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 되면 한데 모여 파티도 하고 회의도 하며 자신들만의 시간을 보낸다.
장난감들은 처음엔 누군가와 간절히 ‘진짜 짝꿍’이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일주일 짝꿍을 만나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짝꿍 같은 건 필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아예 일주일 짝꿍마저도 만나러 갈 기회를 잃은 채 버려질까 떨기도 한다. 그동안 받은 상처가 너무 많기에 진짜 짝꿍을 만나고 싶다는 ‘막내’의 소망을 비웃기도 한다.
대여점의 장난감들은 이처럼 수동적일 수밖에 없고, 상처 또한 많은 존재다. 그렇기에 이들의 소망은 더 간절하게 다가온다.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은 친구들 간에 일어날 수 있는 그 어떤 상황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진정한 친구를 뜻하는, ‘진짜 짝꿍’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제 구체적인 방법은 아이마다 자신의 희망과 상황에 맞게 찾아가야 한다. 이 책 속의 장난감들이 각자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는 늘 비관적이고 냉소적이기만 했던 장난감들이 새롭게 꿈을 꿀 수 있는 몇 가지 사건이 바탕이 됐다. 먼저 하얀여우가 현서의 초대를 세 번이나 받은 끝에 결국 현서의 진짜 짝꿍이 되었다. 현서가 하얀여우를 원했기 때문이지 하얀여우 스스로 어떤 판단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하얀여우는 다른 장난감들한테 진짜 짝꿍을 찾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준다.
희망은 또 있었다. 장난감들이 마귀할멈이라 부르던, 수리실에서도 고치지 못한 장난감을 가지고 가던 할머니였다. 어느 날, 할머니는 진짜 짝꿍에 대해 가장 냉소적이던 레이서를 빌려갔다. 막내도 덤으로 함께 갔다. 그리고 할머니 집에서 할머니의 진짜 모습을 본다. 할머니는 수리실에서 버려진 장난감을 가지고 와 깨끗하게 씻고 꿰매어 살려냈다. 그 장난감들은 보육원에 가져갔다. 버려진 장난감들은 할머니 손을 거쳐 그들을 진짜로 필요로 하던 곳으로 갔고, 그곳에서 행복을 찾은 것이다. 그 모습에 냉소적이기만 했던 레이서도 달라진다.
그리고 주인아저씨가 대여점을 처분하기 위해 장난감들을 팔 것과 버릴 것으로 나누던 날, 장난감들은 마침내 대책회의를 한다. 장난감들 입장에서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시기가 닥친 것이다. 그동안은 그래도 대여점 안에 있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대여점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또 할머니 집에서 본 바깥세상은 그렇게 위험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장난감들은 비로소 각자 자기의 희망과 상황 속에서 결정을 한다. 사람들에게 운명을 맡겨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장난감들은 탈출을 감행한다. 그 가운데 선장과 공주는 서로 짝꿍이 되기로 발표를 한다. 우리들의 짝꿍이 꼭 아이들일 필요는 없다면서 말이다.
막내는 남기로 한다. 자신을 진짜 짝꿍으로 대했던 아이 경오를 기다리기로 한다. 뿔기린도 남기로 한다. 주인아저씨가 자신과의 특별한 인연을 기억하고 자신을 지켜주리라 믿기 때문이었다.
진짜 짝꿍을 만나길 막연히 바라고만 있던 장난감들은 이젠 적극적으로 진짜 짝꿍을 찾아 나서고, 자신만의 짝꿍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다. 진짜 짝꿍을 찾는 길, 그 길은 무엇일까? 이 책은 대여점 장난감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스스로 그 답을 찾으라고 말하고 있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38호(2008년 12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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