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청소년 사이, 열세 살의 경계인
《셋 둘 하나》(최나미 글/정문주 그림/사계절/2007년)
최나미.
어린이책 작가들 속에서 최나미의 존재는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지금까지 다양한 소재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그 속의 인물은 언제나 같다. 열세 살. 아이와 청소년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초등 6학년이다. 흔히 많은 작가들이 열세 살 아이를 주인공으로 작품을 쓰긴 하지만 최나미처럼 열세 살에만 집중해서 글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그의 첫 작품인 『바람이 울다 잠든 숲』(청년사/2004)이 그랬고 이어서 나온 『진휘 바이러스』(우리교육/2005),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청년사/2005), 『걱정쟁이 열세 살』(사계절/2006), 그리고 『셋 둘 하나』(사계절/2007)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은 모두 열세 살이다. 최근작인 『단어장』(사계절/2008)만은 주인공이 열네 살이지만 열네 살 역시 열세 살과 그리 다르지 않다. 발을 딛고 있는 곳이 초등학교냐 중학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아이와 청소년 사이의 경계라는 점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가 열세 살에 그토록 집중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의 삶의 여정을 알지 못하는 한 그 까닭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다만 짐작하는 건 열세 살 시절의 경험이 지금까지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거나 혹은 지금도 열세 살 아이가 겪는 것처럼 경계인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셋 둘 하나』에도 열세 살, 6학년 아이들이 나온다. 「수호천사」, 「마술 모자」, 「셋 둘 하나」, 세 편 모두 같다. 그것도 이제 곧 열세 살과 열네 살의 막바지 경계인 12월이 배경이다. 이 시기는 한 해의 마지막이자, 열세 살과 열네 살의 경계이자,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는 준비 기간이다. 아이들은 이 예민한 시기에 한 해를 더듬으며 가슴에 멍울진 관계를 풀어나간다.
「수호천사」에서는 6학년을 마무리하는 학급문집을 준비하며, 「마술 모자」에서는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 방학을 맞는 날, 「셋 둘 하나」에서는 마지막 기말고사를 보며 사건이 터진다. 물론 사건이 터지는 시기가 이때라는 것이지 이미 문제는 처음부터 내재되어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처음부터 다시 돌아보게끔 한다.
이 가운데 <수호천사>와 <셋 둘 하나>는 여자 아이들 간의 친구 관계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수호천사」는 자신을 늘 수호천사가 지켜준다고 믿을 만큼 자신만만하고, 모든 아이들의 중심에 있었고, 그래서 친구를 사귈 때도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는 데에만 익숙해 있던 아이 자혜가 주인공이다. 선우는 평범한 모습에 특별히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아이였지만,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독특한 말로 아이들의 인기를 끌었다. 자혜 역시 선우에게 관심이 생겼고, 그야말로 생전 처음으로 자신이 먼저 적극 다가가 친구가 된다. 하지만 지금껏 늘 자기 입맛에 따라 친구를 선택하던 자혜는 선우 역시도 자기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 내리고 만다. 선우는 여름방학 때 전학을 가고, 자혜에게도 잊힌 듯했지만 학급문집을 준비하며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게 된다.
「셋 둘 하나」는 세 명이 함께 다니면 늘 하나는 외톨이처럼 느끼는 심리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나’와 가은이, 미루는 셋이 있으면 늘 천하무적처럼 든든한 사이다. 셋은 늘 공평하게 여겨졌고, 짝을 지어야 하는 학교생활에서는 늘 공평하게 둘과 하나를 돌아가며 선택했다. 그랬던 ‘나’가 셋이란 숫자에 의심을 품게 되는 사건이 생긴다. 수학여행 때문이었다. 방 배정에서 혼자가 된 ‘나’는 가은과 미루에게 서운함을 느끼던 참에 반에서 왕따인 은혜랑 가까워지고 은혜를 셋 속에 끌어들인다. 은혜도 ‘셋 +하나’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나’도 셋 보다 넷은 훨씬 안정된 수라고 믿었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다른 친구들이 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은혜가 뭐라 하는 건 기분이 나빠진다. 자신이 은혜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건은 마지막 기말고사 사회 시험에서 터진다. 은혜가 공부하자며 가져온 예상문제가 그대로 시험에 나왔고, 은혜는 시험지를 빼돌린 주범이, 세 아이는 공범이 되어 버린다. 세 아이는 은혜에게 추궁을 하고, 그런 아이들에게 은혜는 묻는다. 자신이 과연 친구였냐고. 친구라면 왜 자신을 믿지 못하냐고. 너희 셋 중 누군가 그 시험지를 가져왔다면 그 애도 자신처럼 시험지를 빼돌렸다고 의심했겠냐고 말이다.
「수호천사」에서 자혜는 다시 선우를 만난다. 진실을 알게 되고 오해도 풀린다. 하지만 「셋 둘 하나」에서 세 아이는 은혜를 만나지 못한다. 진실은 밝혀졌지만 은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세 아이는 우정을 제대로 지키는 방법을 몰랐다. 아마 열네 살이 되면, 중학생이 되면 알게 되지 않을까?
「마술 모자」는 위의 두 작품과 달리 가족 관계 속에서 고민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두 축에서 진행된다. 하나는 언젠가부터 문득 떠오르기 시작한 한 노래다. ‘나’는 그 노래를 허접한 물건들을 파는 손수레에서 다시 듣게 되고, 그 노래를 듣기 위해 날마다 그 손수레에 찾아간다. 다른 하나는 아빠다. ‘나’는 초등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을 맞는 날, 아빠한테 중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고, 아빠와 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 축의 중심에는 ‘엄마’가 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엄마가 필요한 때는 참 많았다. 엄마가 필요한 건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졸업 앨범에 넣을 가족사진이 또 문제가 됐다. 집에서는 엄마가 없는 것이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데 학교에만 가면 불편해진다. 언제부턴가 문득 떠오르기 시작한 그 노래는 엄마가 불러주던 노래다. ‘나’는 그걸 뒤늦게 깨닫는다.
‘‘나’가 자신도 모르게 엄마를 절실하게 찾게 된 건 왜일까? 이제 아동기를 벗어나며 여자로서 자기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건 아닐지.
경계인은 ‘둘 이상의 이질적인 사회나 집단에 동시에 속해 있어서 양쪽의 영향을 함께 받지만,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않는 사람'이다. 작품 속 아이들의 고민은 때론 해결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열세 살 아이들에게 닥친 고민은 아무래도 열네 살로 이어질 듯싶다. 불안하긴 해도 그 편이 더 낫다고 격려해주고 싶다. 모든 문제가 빨리 정리되는 것보다는 오래 고민하고 방황한 뒤에 정착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라 믿기 때문이다.
- 이 글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격주로 펴내는 《기획회의》 통권 236호(2008년 11월 20일) '분야별 전문가 리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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