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어린이책 관련/우리창작

2001년 저학년 창작동화의 경향

by 오른발왼발 2021. 5. 25.
728x90

2001년 저학년 창작 동화의 경향1)

 

 

겨울연수 준비 모임에서 2001년 1월부터 11월까지 출판된 책 가운데 저학년 창작 동화 140권을 읽었다. 그 동안은 잘 몰랐는데 막상 찾아 읽으려 하니 정말 많은 책들이 나왔다는 걸 실감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저학년 창작 동화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출판된 책의 양만을 본다면 어느 때보다도 풍성했던 것 같다. 그건 새롭게 저학년 창작 동화를 내는 출판사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과도 관련이 있다. 요 몇 년간 흐름을 보면, 기존에 학년 구별 없이 아동물을 내던 출판사들이 기존의 편집 방식에서 탈피하며 저학년 문고를 발행하기도 했고(창작과비평사, 산하), 이미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눠서 내던 출판사들도 판형을 키우고 그림을 많이 넣어 새로운 저학년 문고를 내기도 했다(우리교육, 파랑새어린이). 또 새롭게 어린이 책을 내기 시작하는 출판사에서도 고학년 문고보다는 저학년 문고를 먼저 내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푸른숲, 채우리, 낮은산, 도깨비). 이처럼 출판사들이 거의 대부분 고학년보다는 저학년을 겨냥해 다양한 책을 내고 있다. 덕분에 출판 종수만 볼 때는 2001년은 고학년 문고보다는 저학년 문고가, 외국 동화보다는 우리 창작 동화가 더 많았던 한 해였다.2)
140권을 살펴보면 '과학 동화'나 '학습 동화' 같이 순수하게 동화라고 말할 수 없는 책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건 일단 빼 놓더라고 저학년 책들이 종수도 많아졌고, 소재도 다양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한동안 우리에게서 멀어졌던 옛이야기 속의 도깨비가 동화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어 움직이기도 했고-《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 《철가방을 든 독갭이》, 《내가 만난 꼬깨미》, 《도깨비 퍼렁이는 방송국에 산다》(3, 아이들의 왕따 문제를 다룬 책-《양파의 왕따 일기》, 《너랑 놀고 싶어》(4-들도 눈에 띄었다.
아이의 몸과 관련된 적나라한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그 동안 동화에서 볼 수 없었던 소재가 다뤄지기도 했다-《콧구멍 속의 비밀》, 《뚱뚱하면 어때 난 나야》, 《내 고추는 천연 기념물》(5. 물론 동화에서 꾸준히 다루어져 왔던 가족에 대한 사랑(6, 동물에 대한 애정(7, 자연 사랑(8, 장애(9, 친구(10 문제도 꾸준하다. 소재 면에서만 본다면 나쁜 동화는 거의 없는 셈이다. 하지만 소재만으로 동화를 판단할 수는 없다. 소재를 얼마만큼이나 잘 뽑아 내느냐도 중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건 작가가 그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소재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얼마만큼 잘 전달하느냐는 작품의 완성도와 관련된 일일 것이다.
여기서 작품의 완성도를 하나하나 평가할 수는 없다. 워낙 책이 많기도 했고, 준비한 기간은 길지 않았기에 조목조목 짚어 가며 140권을 평가할 수가 없었다. 겨울 연수 모임 여섯 명은 140권의 책을 돌아가며 읽고 간략하게 의견을 나눈 다음, 그 가운데 저학년에게 권할 수 있는 책을 뽑아 봤다. 먼저 네 사람 이상이 동의한 책을 뽑았고, 그 가운데 이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책은 빼고 나름대로 신선함이 살아 있는 다섯 권을 골랐다.
그 다섯 권이 《철가방을 든 독갭이》(안미란, 채우리/2019년 현재 절판), 《우리 엄마 데려다 줘》(김옥, 파랑새어린이), 《콧구멍 속의 비밀》(이은하, 여명미디어/현재 삼성당에서 출간), 《양파의 왕따 일기》(문선, 파랑새어린이/2020년 푸른놀이터에서 재출간), 《나보다 작은 형》(임정진, 푸른숲)이다.

채우리, 여명미디어, 푸른숲. 모두 우리 회와 익숙한 출판사는 아니다. 여명미디어의 '저학년 너랑나랑 장편동화' 시리즈도 2001년에 출판되기 시작했고, 채우리 역시 2001년 새롭게 어린이 책을 내기 시작한 신생 출판사다. 푸른숲도 성인 출판 시장에서는 많이 알려졌지만 어린이 책으로 창작 동화를 내기 시작한 건 2001년이 시작이다. 파랑새어린이 정도가 우리에게 익숙한 셈이다.

이 다섯 권은 대개 겨울 연수 모임 여섯 명이 흔쾌히 선정에 동의를 한 책이다. 하지만 그 선정에 의문을 갖는 분들도 계시리라 여겨진다. 아래에서는 겨울 연수 모임에서 이 다섯 권을 어떤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선정하게 되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다.

 

《철가방을 든 독갭이》(안미란, 채우리)


① 독갭이 캐릭터
도깨비는 도깨빈데 굳이 '독갭이'란 이름을 썼다. '독갭이'도 도깨비의 또 다른 이름이란 걸 생각한다면 새삼스러울 것까진 없다. 하지만 요즘 우리가 쓰는 도깨비란 말 대신 '독갭이'란 말을 쓴 개성만큼이나 독갭이 캐릭터가 별나다. 황금색 철가방 속에 살면서 머리는 초록색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메밀묵이 아니라 자장면이다. 독갭이는 실컷 자장면을 먹게 해 준 대가로 양섭이의 소원을 들어 주기로 한다. 양섭이의 소원은 엄마의 소원대로 반장이 되는 거였지만, 독갭이는 "아무리 도깨비라도 사람 마음을 바꾸는 재주는 없"다면서 대신 엄마 아빠가 애타게 찾고 있는 배달원이 되어 준다. 도깨비가 이야기에서 숨겨진 공간에 있다 특별한 순간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 현실 공간으로 툭 튀어나와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② 독갭이 철가방
도깨비는 방망이를 두들겨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 그런데 여기선 도깨비 방망이 대신 '독갭이 철가방'이 있다. 이 철가방은 방망이 노릇도 하지만 독갭이 집이 되기도 한다. 독갭이의 힘은 독갭이 스스로에게 있는 게 아니라 이 철가방에서 나온다. 그런데 아버지가 '독갭이꺼'라고 쓰여 있는 철가방 위에 '신속 배달'이라 덧칠해 놓고 나서 철가방은 고장이 나고 만다. 현실 공간으로 튀어나온 독갭이는 철가방이 고장나고 나니 엉망이 되고 만다.
그런데 뭐든지 가끔은 고장이 나는 게 오히려 좋을 때도 있다 보다. 독갭이가 짜장 라면을 있는 대로 철가방에 넣는 바람에 독갭이와 양섭이가 슈퍼 주인 아저씨에게 도둑 취급을 받게 되자, 양섭이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차웅이 이야기를 하고 내친김에 도둑 취급을 하는 아저씨에게 항의도 한다. 그리고 철가방이 고장난 걸 깜박 잊고 짜장 라면을 제자리에 갖다 놓으려 한다. 하지만 짜장 라면은 제자리가 아닌 슈퍼 앞 은행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리고 만다. 철가방이 고장나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재밌는 장면이다.
책을 읽는 재미는 이 독갭이 철가방에서 나온다. 철가방은 답답했던 양섭이 마음을 풀어가는 열쇠다. 닫힌 철가방처럼 늘 닫혀있던 양섭이 마음은 철가방이 열리면서 함께 변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철가방에서 나온 독갭이처럼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온 자신의 또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그 순간은 철가방에 '독갭이꺼'라는 글씨가 지워지고 '신속 배달'이라는 글씨를 바뀌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중국집에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인 '신속 배달'이라는 글씨는 어느새 양섭이를 현실 공간으로 데려다 놓는다. 양섭이는 때론 자기도 고장이 날 필요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양섭이는 변한 것이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을 땐 고장난 왕양섭이 될 테야." 하는 양섭이의 말은 자신감을 찾은 양섭이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해 준다.

 

③ 마지막 반전
책의 발단이 되었던, '반장 엄마가 돼 보자'는 엄마의 소원은 결국 이루어진다. 진짜 반장 엄마가 된 건 아니지만 '반장 이름표'가 엉덩이에 척 붙었으니 말이다. 멋진 반전이다. 그 '반장 이름표'는 임시 반장이 달던 이름표다. 아마 엄마도 임시 반장이라고 반장 이름표를 달고 허세를 떨던 차웅이가 그 이름표를 내놨던 것처럼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반장 엄마가 돼 보자'는 엄마의 헛된 꿈이 깨져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유쾌한 결말이다.
④ 그 밖에
등장 인물의 성격이나 심리가 설명이 없이 사건으로 전개되어 쉽게 잘 읽힌다. 문장도 군더더기가 없다. 아쉬움이라면 그림이 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는 점과 글의 중간 중간에 다른 글씨체, 다른 색으로 인쇄를 해서 시선이 그 글씨로 지나치게 집중이 된다는 점이다. 출판사에서는 나름대로 중요한 대목이라 강조한다고 그런 것 같은데 그런 방점은 독자 스스로가 찍을 수 있도록 놔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우리 엄마 데려다 줘》(김옥/파랑새어린이)

 

① 전화기가 들려 주는 애절한 사연, 〈우리 엄마 데려다 줘〉
이 동화는 놀랍게도 화자가 전화기, 그것도 초등학교에 있는 공중 전화기다. 그 전화기가 자기가 초등학교에 오게 된 사연, 갖가지 느낌, 그리고 다솔이란 아이의 비밀을 들려 준다.
무생물인 전화기지만 마치 처음부터 생명을 지녔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처음 학교에 왔을 때 아이들이 한꺼번에 떠드는 소리가 시냇물 소리 같기도 하고, 조약돌이 '잘그락잘그락' 부딪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참새 떼들이 '후드득' 날아오르면서 일시에 날개를 터는 소리 같기도 하다는 전화기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내가 초등학교 한 켠에 전화기가 되어 서 있는 듯 생생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 전화기 앞에 다솔이가 찾아온다. 깨금발을 하고서야 겨우 동전을 집어넣을 수 있는 1학년 다솔이. 전화기가 다솔이 이야기를 들려 준다. 처음엔 마치 아직 학교 생활에 적응이 안 돼서 그런 것처럼 "엄마, 나 집에 갈래." 하는 모습만 보여 주지만 한 번 두 번 다솔이의 전화 내용을 듣다 보면 그게 아니다. 학교에 간 동안 엄마가 집을 나갈까 조바심이 나는 아이의 마음이 저절로 다가온다.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기 앞에 매달려 울면서 "우리 엄마 데려다 줘." 하는 다솔이의 아픔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더욱 다가오는 까닭은 이런 다솔이에게 무관심한 채 자신의 입장만 챙기는 어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교장 선생님은 다솔이가 엉엉 울면서 전화기 앞을 떠난 뒤 와서 말한다.
"쯧쯧, 요즘 아이들은 전화기 하나 제자리에 올려 놓을 줄 모른다 말야."
전화기가 오랜만에 다솔이를 본 날, 함께 온 친구가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다솔이와 함께 집에 가겠다고 하자 친구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알았어. 그런데 걔 공부는 잘 하는 애니? 어디 아파트 사는 앤데?"
단 두 마디지만 이런 현실에서 다솔이가 얼마나 힘들까 하는 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다솔이는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기에 대고 태연하게 말한다.
"여보세요? 엄마, 나야, 다솔이야. 나 친구 집에서 잠깐만 놀다 갈게. 알았지?"
전화기는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가는 다솔이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린다.
'다솔아, 네 맘 다 알아. 네 비밀 지켜 줄게. 그 대신, 앞으로 울지 말고 씩씩하게 잘 이겨 나가는 거야. 알았지.'
아무도 받지 않는 전화기에다 대고라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다솔이 처지가 앞의 어른들 태도와 대비되면서 더 안쓰럽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다솔이가 움츠리지 않고 잘 살겠구나 하는 자그마한 희망을 전해 준다. 마지막 전화기의 중얼거림은 그런 희망 때문에 가능했을 거다.
짧은 글 안에서 다솔이네 집 사정과 다솔이의 변화 과정, 마음까지 이처럼 효과적으로 담아 낼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다른 곳으로 연결해 주는 전화기의 특성을 아주 잘 살려 냈기 때문일 거다.

 

② 〈칠판 속 교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은 아이, 받아쓰기를 할 때면 자기가 발음하는 그대로 써 놓는 아이, 그런 미은이가 친구들에게 얼마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지는 안 봐도 눈에 훤하다. 그래서 미은이는 언제나 맨 뒷자리에 말없이 앉아 있는다. 움직이지 않는 의자처럼, 책상처럼.
아마 미은이는 넓은 교실에서 아이들 눈치 안 보고 맘껏 뛰어다니고 싶었을 게 뻔하다. 숙제장을 두고 오는 바람에 다시 학교로 되돌아간 날, 교실은 온통 미은이 차지가 된다. 책상들도 반갑게 말을 걸어 주는 것만 같다. 칠판 앞에 나가 낙서도 해 본다. 재미있는 칠판 장난을 해 봤을 리가 없다. 너무 재미있다. 칠판은 미은이에게 '새로운 세상'이다.
미은이가 칠판에다 사람 얼굴을 그린다. 그리고 "아녀엉?" 하고 인사를 한다. 그러자 그림 속 사람이 튀어나온다. 자신을 '호빵 선생'이라 소개하고는 미은이를 좋은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준단다. 진짜 '새로운 세상'이다. 칠판에서 나온 선생님답게 친구들한테 가는 길도 칠판에 쉽게 만든다. 칠판 속 교실에 있는 아이들은 미은이네 반 아이들 그대로지만 아이들은 모두 미은이에게 잘 대해 준다. 그리고 수업 방식도 재미있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신나는 수학, 국어, 미술을 마치고 점심 시간에 떡볶이를 해 먹는다. 칠판 속 교실에서는 미은이도 발음이 정확하다. 맛있게 떡볶이를 먹고 숙제를 받아 들고 나니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교실 문을 열고 나오니 그 곳은 다시 현실 세계다. 이제 미은이는 현실 세계에서 씩씩하게 지낼 수 있을까? 칠판 속 교실은 팬터지 공간이었고 현실 속에서 미은이는 여전히 힘들 거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쩐지 미은이가 잘 헤쳐 나가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팬터지 공간인 칠판 속 교실이지만 함께 공부하고 놀았던 친구들이 현실 공간에서 미은이에게 상처를 줬던 미은이네 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처음 학교에 갈 때와는 달리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음악 소리 같기만 하다. 그리고 문득 운동장 한가운데 우뚝 서 펼친 손바닥에는 아까 미술 시간에 만든 개미가 고물고물 움직인다. 그 개미에게 미은이가 말한다.
"내 치구야, 자고 히어다고 노이지 아으게. 너으 지켜 주게.(내 친구야, 작고 힘없다고 놀리지 않을게. 널 지켜 줄게.)"
현실 공간으로 돌아온 미은이 손에 팬터지 공간에서 만들었던 개미가 그대로 있다는 게 조금은 위험한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변화된 미은이의 마음은 확실히 엿볼 수 있다. 현실 속 아이들의 변화와 상관없이 말이다.
늘 책상처럼, 의자처럼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아이의 현실이 칠판 속 교실과 대비되며 아이의 주눅든 마음을 잘 풀어 주고 있다.


③ 그 밖에
〈거인의 잠〉에서 거인은 우리를 창조하고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창조주, 또는 자연을 의미한다. 그 거인이 낮잠을 자는 사이 사람들이 거인의 몸을 망가뜨려 놓는다. 잠에서 깨어난 거인이 화가 나 벌떡 일어나려다 아이들 모습을 보고 더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그 뒤로 거인 아저씨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야기는 마치 옛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그런데 여기에 지나치게 사실적인 그림이 이야기의 맛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저학년 동화에서 많이 보이는 일이지만 글만으로도 충분한데 지나치게 그림을 많이 넣어 오히려 글맛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여기서도 보이는 거다.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언니는 나빠요〉는 어느 순간 갑자기 글자를 깨치게 되는 아이의 들뜬 마음과, 글자를 알게 된 순간 언니의 낙서('이은비 메롱', '이은비 돼지 꿀돼지', '이은비 똥꼬 바보')를 읽고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의 모습이 잘 그려진 작품이다.
엄마가 이제 여섯살 밖에 안 된 은비에게 초콜릿이나 튀김으로 글씨를 만들어 준다거나 하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글자를 깨치는 순간 은비의 기쁘고 슬픈 감정의 흐름은 자연스럽다.

《콧구멍 속의 비밀》(이은하, 여명미디어)


① 나장군 대 멸치 꼬리, 어? 단순한 명랑 동화가 아니네.
표지 한가운데를 가득 메운 아이의 얼굴, 얼굴을 젖히고 콧구멍을 크게 하고 손가락을 넣어 코를 후비고 있다. 게다가 제목도 그렇고. 그저 그렇고 그런 명랑 동화일 것 같은 느낌이다.
이야기의 첫머리도 그렇다. 수업 시간에 통닭이나 실컷 뜯어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눈앞에 통닭 한 마리가 날아다니다 선생님 머리 위에 턱 하니 앉고……. 글도 그렇지만 진짜 선생님 머리에 통닭을 그려 넣은 기막힌(!) 그림은 이런 선입견을 더욱 부추겼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그냥 웃고 넘길 명랑 동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군이의 관심은 오로지 먹는 것뿐이다. 덕분에 친구들은 장군이를 삼겹살, 공포의 비곗덩어리, 뚱보대왕이라고 놀리고 흉본다. 요즘 아이들에게 뚱뚱하다는 건 죄악으로 여겨지는 형편이니 당연한 일이다. 장군이는 창피해진다.
그런 장군이에게 이상한 일이 생긴다. 갑자기 콧속이 간지러워지면서 킁킁거리게 되고 친구들은 더럽다고 장군이를 더 피하게 된 거다. 장군이 콧속이 간지러운 까닭은 따로 있다. 장군이 콧구멍 속에 달식이란 아이가 숨어 있었던 거다. 말도 안 되는 설정 같지만 달식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해가 된다.
달식이는 장군이랑은 여러 모로 대비되는 인물이다. 장군이는 너무 뚱뚱하고 다니기 싫은 학원도 억지로 다녀야 하지만 달식이는 너무 작고 말라서 별명도 멸치 꼬리고, 다니고 싶은 미술 학원도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못 다닌다. 그리고 주눅이 들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몸이 조금씩 작아진다. 처음엔 몰랐지만 친구 크레파스를 훔친 일 때문에 엄마한테 실컷 매맞고 울다 잠든 뒤 깨어나 보니 몸이 개미만큼 작아져 있다. 달식에게는 몸집도 크고 미술 학원도 가고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마음껏 먹고 다니는 장군이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장군이와 달식이. 둘은 생긴 모습이나 좋아하는 거나 소망이나 환경이 완전히 대비되는 인물이다. 이런 대비가 둘의 캐릭터를 더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서로가 다른 극점에 있기에 이 둘은 서로를 이해하면서 자신을 발견해간다.
장군이가 학원에 빠지고 공원에 누워 잠이 든 날, 개미만큼 작아져버린 달식이는 장군이의 콧구멍 속으로 들어가 숨게 된다. 둘은 하룻밤 만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서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달식이는 장군이와 지내면서 자신감을 되찾을 때마다 다시 조금씩 몸이 커진다. 그리고 달식이가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자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간다.
둘은 처음엔 서로를 부러워하기만 했지만 생활을 하며 서로의 장점을 이야기해주고, 그러면서 자신의 문제와 장점도 발견한다. 그러면서 개미만큼 작아졌던 달식이는 정상을 되찾는다. 처음 장군이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어느 샌가 달식이에게만 맞춰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장군이 역시 달라진 걸 알 수 있다.
"장군이는 좋겠네! 함께 달리기 할 친구가 생겨서!"
장군이와 달식이가 함께 생활하며 달식이가 다시 커졌듯이, 이제 둘이 함께 달리면 장군이의 변화된 마음만큼 장군이 모습도 변할 것이다.


② 만화 같은 발상
이 책에는 곳곳에 만화 같은 발상이 보인다. 앞의 통닭 이야기도 그렇지만 미술 시간에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그리라니까 케이크 인간인 '김 케이크'를 그리거나, 작아진 달식이가 장군이 콧구멍 속으로 숨는다거나, 머리가 나쁘니 머리에 기름칠을 하라는 말을 듣고 진짜 머리에 기름 범벅을 하는 행동 따위가 그렇다.
이런 발상이 아이들에게 웃음을 던져 주기는 하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냥 웃음거리로 끝나고 말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는 다행히 이를 피하고 외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장군이와 달식이의 모습을 잘 형상화하긴 했지만 조금 신중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철가방을 든 독갭이》에서만큼은 아니지만 곳곳에서 대사글을 일부러 진하게 쓴 건 역시 불필요해 보인다.

《양파의 왕따 일기》(문선, 파랑새어린이)-2020년 푸른놀이터에서 재출간되며 작가는 그림도 직접 그렸다.

 

① 왕따를 하는 아이, 왕따를 당하는 아이
이 책은 초지일관 '나'의 일인칭 시점으로 모든 걸 바라본다. 주인공의 자연스런 심리 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인공의 마음이 된다.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을 만들어 가는 아이인 미희와 친해지고 싶어진다. 미희랑 친해지고 양파에 들어가고 싶고 외로워 보이는 미희를 무조건 미희를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에, 쪽지를 돌리다 걸린 미희의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기도 한다. 이런 사건들은 구구한 설명글이 아니라 사건과 아이의 심리 묘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읽는 동안 내내 주인공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한다.
양파 아이들이 점차 권력처럼 군림하고, 자기들 맘에 안 드는 아이를 괴롭히고, 양파의 리더인 미희가 잘못을 해도 양파 아이들이 대신 벌을 받는 모습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렇다고 미희가 싫어지진 않는다. 그리고 드디어 양파에 들어가게 된다.
양파의 모습은 이 때부터 본격으로 드러난다. 미희는 양파 사이에서도 무분별할 정도로 권력을 마구 휘두르지만 아이들은 그걸 수용한다. 미희가 만들어 내는 신비한 '우정 주문' 같은 걸로 말이다. 언뜻 보면 이해가 안 갈 만큼 미희에게 꼼짝을 못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희랑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다른 것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주인공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② 아쉬움
등장 인물의 심리 선을 잘 따라가면서 아이들 모습을 잘 담아 낸 책이긴 하지만 아쉬움도 남는다.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아버지 모습도 그렇고, 현장 학습을 가서 선생님이 시멘트에 돋은 풀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정화가 그걸 계기로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는 설정도 좀 뜬금없다. 양파에게 왕따를 당하면서도 잘 지내던 정선이가 양파들 사이에 내분이 생기는 순간에 전학을 가고, 주인공은 자신이 비겁해서 정선이를 학교에서 떠나게 했다고 고백하는 것도 자연스럽지가 않다. 또 마지막에서 갑자기 아빠가 텔레비전에 출연을 하고, 새로 전학 온 친구 - 정선이처럼 예쁘고 미희처럼 못 하는 게 없는 듯한 - 를 보며 그 애가 미희한테 왕따를 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의지를 잡아매는 것도 억지스럽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또 이 책에서는 왕따를 하는 미희에게까지 애정의 끈을 놓지 않는데, 어째 그게 좀 어정쩡한 상태에서 그치고 만 느낌이다. 처음 새 학기에 자기 소개를 할 때 엄마 아빠와 떨어져 살고 있는 것으로 이미 복선을 깐 셈인데, 이 복선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뒷부분에서 미희가 양파 안에서 위기를 맞자 갑자기 '나'에게 공중 전화 부스에서 엄마와 통화를 하며 우는 외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하지만 몇 줄로 이렇게 보여 주곤 그게 끝이다. 미희에게 애정을 보여 주려면 조금 더 보여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작은 형》(임정진, 푸른숲)

 

① 특별한 이야기, 〈나보다 작은 형〉
짐작컨대 '나보다 작은 형'은 하체의 성장이 멈춘 병을 앓는 아이일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는 형이 키가 작고 움직이기 어렵다는 것말고는 형의 증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는 있다. 여기서는 병을 앓고 있는 형의 처지가 아니라 동생의 처지에서 형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해 나간다. 하긴 동생이라고 왜 괴롭지 않을까.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환자는 물론이지만 집안 식구들 모두가 마음 고생을 하는 게 당연하다. 병원비 때문에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고, 친구들이 집에 오는 것도 걸린다. 늘 방 안에만 누워 있는 형의 모습을 보고만 있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다.
하지만 좀 가볍게 느껴진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마지막 장면, 형은 분명 다리에 철심을 박아 다리를 늘이는 수술을 받았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효과가 있지만 언젠가 또다시 치러야 할 수술이다.
"나는 점점 커 가는데, 나보다 작은 형은 내 마음 속에서 커 간다."는 동생의 고백도 가슴을 저리게는 하지만 그 울림 때문에 오히려 형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② 얘들아, 놀자!―〈새 친구 왕만두〉
새로 이사를 온 아이인 왕만두는 "얘들아, 놀자!"를 외치며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아침부터 점심 때까지 몇 시간 만의 이야기지만 정말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동화다.
요즘 세상에 동네를 돌아다니며 "얘들아, 놀자!"를 외치는 아이답게 개성도 강하다. 친구들 별명도 지어 주고, 학교 놀이터에 가서 놀자며 아이들을 몰고 간다. 그런데 이 새 친구는 중국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아빠는 중국 사람이고 엄마는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자기는 중국 사람도 한국 사람도 아닌 그냥 '사람'이란다. 아이들은 처음엔 혼란스러웠지만 왕만두의 말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란 걸 인정하게 된다. 국적 문제, 인종 문제에 대해 열린 생각을 갖게 해 준다.


③ 땡땡이, 줄줄이, 쌕쌕이, 그리고 양들의 경쾌한 이야기
〈땡땡이, 줄줄이, 쌕쌕이〉는 한 짝을 잃어버리고 외짝이 된 양말들이 서랍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자신들의 몫을 찾아 떠나는 모험 이야기다. 위기에 몰린 양말들이 서랍을 탈출해 모험을 떠나는 것도 재미있지만,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던 이들 짝짝이 양말이 결국은 자기 몫을 정확히 찾아가는 것도 재미있다. 빨간색 줄줄이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땡땡이는 어릿광대의 짝짝이 양말로, 고무줄이 늘어져 있던 쌕쌕이는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은 청년에게로 간다. 필요 없어 보이는 것들도 다 자기 몫의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양들의 패션쇼〉는 무스탕을 파는 '무스탕 박'이 봄, 여름, 가을 동안은 양을 길러 손님에게 보여 주면서 무스탕을 더 잘 팔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리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양을 들여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양들을 보살피다 보니 양에게 정이 흠뻑 든다. 그래서 양가죽으로 만든 무스탕 가게는 때려치우고 양털로 손뜨개 옷을 만들어 팔게 된다. 무스탕은 양이 죽어야만 만들 수 있는 옷이라는 점에서 모피 반대 항의 시위를 연상하게도 된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시위보다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우스운 상황 설정이지만 양들과 함께 지내며 양들을 사랑하게 되고, 죽은 양 껍질에 불과한 무스탕 가게 대신 모직 제품 가게를 열게 되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④ 아쉬운 이야기, 〈빙빙 돌아라, 별 풍차〉
아이들의 소망을 담은 별 풍차를 돌리는 아저씨의 이야기다. 절절한 소망을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과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 주고 딱 맞는 별에 태워 주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따뜻함은 느껴지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 이 이야기가 빠졌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검토한 책들 가운데는 이 책들말고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책들이 많이 있다. 우리 회 평가 기준에서 보자면 《비나리 달이네 집》(권정생, 낮은산),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임정자, 창작과비평사), 《초대받은 아이들》(황선미, 웅진닷컴)도 올챙이 세 마리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책들은 이미 여름 연수 때나 우리 회에서 혹은 언론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들이어서 이번 토론 대상에서는 제외했다.
또 올챙이 세 마리까지는 아니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으로《갑수는 왜 창피를 당했을까》(노경실, 계림닷컴), 《나는 책이야》(김향이, 푸른책들), 《지붕 위의 내 이빨》(이금이, 푸른책들), 《뚱보면 어때 난 나야》(이미애, 파랑새어린이), 《내가 만난 꼬깨미》(배익천, 한국어린이교육연구원), 《난 키다리 현주가 좋아》(김혜리, 시공주니어), 《내 고추는 천연 기념물》(박상률, 시공주니어), 《나답게와 나고은》(김향이, 사계절), 《날아라 독수리야》(강숙인, 푸른책들), 《너랑 놀고 싶어》(배봉기, 산하), 《다람쥐 다솔이의 여행》(임영숙, 바른사), 《만만치 않은 놈 이대장》(김순이, 도깨비), 《멍텅구리 편지》(장문식, 한국어린이교육연구원), 《조금 늦어도 괜찮아》(원유순, 채우리), 《하늘이 이야기》(최재숙, 보림), 《옹달샘 이야기》(이현주, 한겨레아이들)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고를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려되는 작품들도 눈에 띈다. 아이보다는 글을 쓰는 어른의 감상이나 어른의 잣대로 쓴 책들, 그저 사소한 에피소드의 나열(11에 그친 책들도 많았다.
그 가운데 아이들 처지보다는 어른인 작가의 감상에 따라 쓴 책들(12은 좀더 주의해 봤으면 한다. 동화는 아이들이 읽는 거지만 대부분의 동화는 어른이 쓰고 어른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자신의 감상에만 젖어 동화를 쓴다는 건 다른 의미에서 현실 속의 아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거나, 아이들 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앞서 자신의 감정 속에 아이들의 모습을 가둬버리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때문에 얼핏보면 아이들의 모습이 따스하게 그려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의 마음이 앞서거나 아이들을 대상화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엄마 생각》에서 주인공 유경이는 엄마에게 버림받고 시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외로운 아이다. 유경이를 보살펴 주는 할머니와 개가 있지만 그렇다고 엄마의 빈 자리를 채워 줄 리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유경이의 마음과 내면을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보다는 시골의 낭만적인 풍경에 대한 묘사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독자가 미처 유경이의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를 주지 않는다. 물론 작가는 애잔한 풍경 묘사를 통해 유경이의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풍경 묘사보다는 유경이의 행동을 통해 유경이의 마음에 다가간다. 저학년은 특히나. 작가는 유경이에 대해 좀더 애정이 있다면 마치 풍경화 속의 부속물인 양 유경이를 그려서는 안 되었다.
《엉뚱이 뚱이》는 뚱이의 캐릭터는 잘 표현되어서 아이들도 무척 좋아하는 책이다. 하지만 뚱이의 캐릭터가 지나치에 엉뚱하다. 선생님이 늘 깃발 앞에 모이라고 했다고 선생님이 따라오라고 해도 그냥 깃발 아래에만 서 있거나, 뚱이가 살아 있는 무당벌레를 브로치로 선물하는 것처럼 1학년 아이들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벌이곤 한다. 거꾸로 선생님의 이미지는 너무 좋은 선생님이다. 이렇게 말썽을 부려 대는 아이들을 잘 아우르니 말이다. 작가 자신이 선생님이기 때문이었을까? 선생님 쪽의 무게를 덜고 뚱이를 좀더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기획 동화의 비중도 꽤 많다. 과학이나 생태(13 또는 풍속(14을 다루기도 하고, 실화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식 동화(15도 등장했다. 물론 기획 동화라고 모두 다 좋지 않은 건 아니다. 동화는 아이들이 주제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도와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용이 너무 딱딱해서 아이들이 어려워할 책도 동화로 단장을 하면 아이들이 쉽게 읽기도 한다.
그러나 지식을 전달할 목적도 아니면서 마치 도덕 교과서 같은 주제를 잡아 놓고 그 주제에 따라 동화를 억지로 만들어 내는 기획 동화도 많다.(16 또 학교 교과서에 맞춘 동화책의 출판도 여전하다.(17 가끔 학교 숙제라며 과목별로 책을 추천해 달라는 말을 듣고 했는데, 바로 이런 책들이 거기에 해당하는 책인가 싶다. 어떤 이야기든지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교훈과 가르침을 되풀이하거나 정해진 교훈을 결말로 끌어내기 위해 우연성을 남발하는 책들도 있다.(18

2001년 한 해 동안 출판된 책들을 이렇게 정리를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저학년 창작 동화가 갑자기 출판 붐을 이룬 게 왜일까? 혹시 작가나 출판사들이 저학년 창작 동화에 관심이 많아지고, 작가들의 층도 두터워진 걸까? 하지만 이런 결론을 내리기엔 여러 모로 의심이 가는 게 많다. 여전히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쓴 책들, 교훈만을 나열하는 책들, 아이들 수준을 무시하는 책들이 여전히 많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 동화를 쓴 작가가 누군가 궁금해진다. 눈에 많이 띄는 작가들이 있다. 김영원, 김정희, 김향이, 노경실, 박신식, 소중애, 안선모, 윤수천, 이상배. 지난 한 해 동안 여러 편의 동화를 발표한 작가들이다. 그런데 김향이, 노경실을 빼고는 기획 동화류나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책들을 쓴 작가들이다. 2편 정도를 발표한 배익천, 선안나, 손춘익, 송재찬, 원유순, 이규희, 이미애, 이지현, 임정진, 조대현. 모두 새로운 작가는 아니다. 권정생, 조성자, 이금이, 홍기, 황선미, 장문식, 차보금, 박상률, 고정욱, 김서정, 안미란. 모두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새로운 작가군이 그렇게 많은 건 아닌 듯하다. 《콧구멍 속의 비밀》을 쓴 이은하, 《제키의 지구 여행》에 이어 두 번째로 《양파의 왕따 일기》를 발표한 문선, 《학교에 간 개돌이》에 이어 두 번째로 《우리 엄마 데려다 줘》를 발표한 김옥, 그리고 《너 먼저 울지마》,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에 이어 《철가방을 든 독갭이》, 《하도록 말도록》을 발표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안미란. 《어두운 계단에서 도깨비가》를 낸 임정자. 이들 작가에게 관심이 쏠린다. 작가군이 두터워졌다고 판단할 만한 확실한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요 몇 년 사이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한 이들 작가에게 기대를 걸고 싶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궁금해지는 게 있다. 예전처럼 저학년 문고의 개념이 없었을 때처럼 두껍게 책으로 묶여 나왔다면 출판량이 얼마나 될까 하는 거다.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현덕의 《너하고 안 놀아》를 뜯어서 요즘 저학년 동화의 편집 경향처럼 그림을 빵빵하게(!) 집어넣고 편집한다면 몇 권의 책으로 나뉘어 나올까 싶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학년 동화에 그림의 비중이 너무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책도 아니면서 때론 그림에 더 눈길이 가거나, 아니면 훌륭한 문학성 덕에 글만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책들까지 그림책으로 나오거나, 그림의 비중을 높여서 출판되곤 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과 그림 수준 이야기는 빼더라도 혹시 부족한 저학년 동화 원고를 그림으로 메우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간다. 그리고 이렇게 판형을 키우고 그림의 비중을 높이면 무조건 저학년 책이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또 하나 걱정되는 건 '저학년 책'이라고는 하지만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1학년들이 읽을 만한 책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학년을 정확하게 구분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저학년 책'이라고 나온 책의 수준은 대개 2-3학년 수준에 맞춰져 있다. 유아기에 좋은 그림책을 많이 보고 자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가서 책을 읽게 되면서 책이 재미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그림책을 계속 봐도 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그림책을 보는 걸 꺼리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검토한 책들 가운데 1학년에게 맞는 작품은 《하늘이 이야기》 정도였다. 내용에 내한 이견은 있지만 이제 막 책을 읽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입학 전후의 아이들에게 수준을 맞춘 기획력은 높이 평가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부족하나마 2001년에 나온 저학년 창작 동화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이나 잘못 본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를 통해 우리가 저학년 책에 대한 문제 의식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이 글의 몫은 다한 거라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함께 문제 의식을 갖고 앞으로 나올 저학년 우리 창작 동화에 대해서도 더욱 깊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1) 2002년 어린이도서연구회 겨울 연수 자료집에 실린 글이다. 2002년 겨울 연수 준비 모임은 저학년 창작 동화 140권에서 크게 두드러지는 경향을 함께 살펴보고, 어른의 감상을 중심으로 쓴 동화, 의인화 동화, 다양해진 동화의 소재, 기획·학습 동화, 우리가 뽑은 5권 동화로 갈래를 나누어 저마다 글을 쓴 다음 의견을 나누었다. 이 글은 준비 모임이 토론한 결과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모임에 참여한 사람은 어린이도서연구회 회원 구현진, 윤경희, 임옥현, 김은희, 오진원, 이기영이고 글은 오진원이 대표로 정리했다.

 

2) 출판연감의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인터넷 서점 리브로의 분류에 따르면 2001년에 나온 저학년 우리 동화는 약 175권, 고학년 우리 동화는 약 150권 정도 된다. 그런데 고학년 책은 재발행된 책이나 한 작품을 여러 권으로 나눠서 출판된 책들이 꽤 여러 권 있다. 따라서 이를 고려한다면 저학년 우리 창작이 훨씬 더 많이 발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분류는 어디까지나 인터넷 서점 리브로의 분류고 저학년과 고학년의 분류가 명확하지 않아 정확한 통계 자료로 제시될 정도까지는 못 된다. 리브로의 분류에서도 저학년과 고학년에 다 들어간 책이 꽤 있다. 다만 참고 자료로는 이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우리 동화와 외국 동화의 비율을 따져도 우리 동화의 발행이 훨씬 많았다. 리브로의 분류에 따르면 2001년 저학년 외국 동화는 약 90권, 고학년 외국 동화는 약 100권이 출판된 것으로 확인된다.

 

3) 이 세 작품 모두 현대에 다시 나타난 도깨비다. 하지만 모습이나 성격은 모두 다르다. 동화에서 도깨비가 어떻게 되살아나고 있는지 이 세 작품 속의 도깨비 모습을 견줘서 살펴봐도 재미있다.

 

4) 두 작품 외에 왕따 문제를 다룬 책으로 《무서운 학교 무서운 아이들》(송재찬, 푸른책들)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학교에서 왕따 현상을 아이의 시점을 따라가며 적나라하게 폭로는 하고 있지만, 그냥 거기에서만 머무를 뿐이어서 읽고 난 뒤 답답함이 더 컸던 작품이다. 대상 연령도 저학년에게는 부적절해 보여 여기서는 제외했다. 반면 《양파의 왕따 일기》는 주인공은 4학년이지만 책이 저학년 용으로 출판되었고, 글의 짜임도 3학년이 읽는데 큰 무리가 없다고 판단해 저학년에 포함했다.

 

5) 몸이 지나치게 뚱뚱하거나 왜소한 경우, 아이들은 열등감을 갖게 된다. 특히 텔레비전 따위를 통해 규격화된 몸매에 익숙해진 요즘 아이들은 뚱뚱한 몸집 자체를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여기며 그 때문에 왕따로 몰리기도 한다. 그래서 뚱뚱한 아이들은 점점 열등감에 빠지게 되고 아이의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이런 소재의 이야기가 나오는 건 아주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내 고추는 천연 기념물〉의 경우, 책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남자 아이들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면서도 입으로 말하는 건 금기시(?)되어 있는 포경 수술을 소재로 끌어 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이 밖에 《지붕 위의 내 이빨》 가운데 〈마음의 키〉도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6) 사랑의 대상이 다를 뿐이지 사랑이 빠진 동화는 거의 없을 것이다. 사랑의 대상으로 가장 많이 다뤄진 것은 부모, 자식, 친척 같은 혈연이다. 다음은 그 보기들이다. 〈아카시아〉(《갑수는 왜 창피를 당했을까》, 노경실, 계림닷컴), 〈미순이네 엄마는 참 이상해요〉(《갑수는 왜 창피를 당했을까》, 노경실, 계림닷컴), 〈감나무〉(《지붕 위의 내 이빨》, 이금이, 푸른책들), 《나답게와 나고은》(김향이, 사계절), 《만만치 않는 놈 이대장》(김순이, 도깨비), 《초대받은 아이들》(황선미, 웅진닷컴), 《엄마 생각》(이상권, 우리교육), 〈찢어진 공책〉(《찢어진 공책》, 소중애, 바른사), 〈설날〉(《지붕 위의 내 이빨》, 이금이, 푸른책들), 〈우리 엄마 데려다 줘〉(《우리 엄마 데려다 줘》, 김옥, 파랑새어린이).

 

7) 동물을 사랑하자는 주제를 교훈성이 드러나지 않게 재미있게 표현했거나 동물을 통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의 이기심을 꼬집은 동화들이다. 〈양들의 패션쇼〉(《나보다 작은 형》, 임정진, 푸른숲), 《엄마 생각》(이상권, 우리교육), 〈컴퓨터와 누렁이〉(《조금 늦어도 괜찮아》, 원유순, 채우리), 《비나리 달이네집》(권정생, 낮은산).

 

8) 역시 교훈주의로 흐르기 쉬운 주제다.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연을 사랑하자'는 주제를 잘 표현한 책들이다.
《나는 책이야》(김향이, 푸른숲)에서 책이 들려 주는 이야기 가운데 '비닐봉지' 이야기, 《날아라 독수리야》(강숙인,푸른책들), 〈거인의 잠〉(《우리 엄마 데려다 줘》, 김옥, 파랑새어린이).

 

9) 〈나보다 작은 형〉(《나보다 작은 형》, 임정진, 푸른숲), 〈조금 늦어도 괜찮아〉(《조금 늦어도 괜찮아》, 원유순, 채우리), 〈아카시아〉(《갑수는 왜 창피를 당했을까》, 노경실, 계림닷컴), 〈칠판 속 교실〉(《우리 엄마 데려다 줘》, 김옥, 파랑새어린이).

 

10) 아래는 친구 사이를 다룬 작품 가운데 왕따 문제를 다룬 작품을 뺀 이야기들이다. 이 가운데 〈내 친구 왕만두〉는 새 친구에 대한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다.
《난 키다리 현주가 좋아》(김혜리, 시공주니어), 《초대받은 아이들》(황선미, 웅진닷컴), 〈내 친구 왕만두〉(《나보다 작은 형》, 임정진, 푸른숲), 〈아카시아〉(《갑수는 왜 창피를 당했을까》, 노경실, 계림닷컴).

 

11) 《엄마, 동생 하나 만들어 줘요》(소중애, 지경사), 《기준이네 가족 일기》(김지희, 진선출판사), 《선생님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강무홍, 사계절), 《뚱이 형수와 오줌싸개 시동생》(박신식, 채우리), 《쉿, 쥐가 들을라》(김종상, 예림당), 《오 마이 갓 공주》(소중애, 여명미디어).

 

12) 《아빠 나무》(이규희, 한국어린이교육연구원), 《안녕하세요》(이림, 교학사), 《엄마 생각》(이상권, 우리교육), 《내 짝꿍은요》(이재희, 바오로딸), 《보리밭과 수위 아저씨》(조대현, 대교), 《선암사 연두 꽃잎 개구리》(이경혜, 파랑새어린이), 《소녀와 병사》(이영, 영림카디널), 《엉뚱이 뚱이》(박경선, 우리교육), 《기준이네 가족 일기》(김지희, 진선출판사), 《외삼촌 빨간 애인》(이현주, 낮은산).

 

13) 《1학년 과학 동화》(홍건국, 예림당), 《2학년 과학 동화》(김양순, 예림당), 《3학년 과학 동화》(허문선, 예림당), 《시골밥, 서울밥》(남인숙, 소담출판사), 《지구를 굴리는 쇠똥구리》(안선모, 문공사), 《풀숲의 사냥꾼 왕사마귀》(이상배, 파랑새어린이), 《나풀나풀 팔랑팔랑 아름다운 나비일기》(이상배, 파랑새어린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곤충 칠성무당벌레》(이상배, 파랑새어린이), 《하늘 나라 꽃밭의 무당벌레》(김정희, 대교출판), 《빨간 집게다리가 최고야》(김정희, 대교출판).

 

14) 《김치는 영어로 해도 김치》(이금이, 푸른책들), 《짱뚱아 까치밥은 남겨 둬》(오진희, 파랑새어린이), 《우리 집에 귀신이 있어요》(배수원, 들창).

 

15) 《구름 위를 오른 아이》(이상배, 두산동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약속》(고정욱, 두산동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빠》(윤소영, 영교).

 

16) 《쇠똥 아줌마 구리구리》- 생각마술동화1. 협동편(김영원, 자유지성사)
    《갈매기가 엉엉 울어요》- 생각마술동화 2. 노력편(김영원, 자유지성사)
    《회초리로 선생님을 때린 아이들》- 생각마술동화 3. 약속편(김영원, 자유지성사)
    《내 보물 누가 훔쳐 갔어?》- 생각마술동화 4. 끈기편(김영원, 자유지성사)
    《팽순이한테 친구가 생겼어요》- 생각마술동화 5. 우정편(김영원, 자유지성사)
    《마술에 걸린 선생님》- 생각마술동화 6. 질서편(김영원, 자유지성사)
    《용감한 점박이》- 생각마술동화 7. 인내편(김영원, 자유지성사)
    《오빠가 지어준 감기약》- 생각마술동화 8. 우애편(김영원, 자유지성사)
    《오빠 오빠 웅이 오빠》- 생각마술동화 9. 친절편(김영원, 자유지성사)
    《나쁜 친구들》- 생각마술동화 10. 청결편(김영원, 자유지성사)
    《1학년 넌 어떻게 생각하니?》- '정말 그럴까' 시리즈(박신식, 채우리)
    《2학년 넌 어떻게 생각하니?》- '정말 그럴까' 시리즈(박신식, 채우리)
    《무지갯빛 신호등》- 어린이 교통 사고가 없는 세상을 꿈꾸며(안선모, 두산동아)

 

17) 《새 교과서 학습동화 2학년 슬기로운 생활》(이화주 외, 계림닷컴), 《새 교과서 학습동화 2학년 바른생활》(박성배 외, 계림닷컴), 《새 교과서 학습동화 1학년 국어》(김종상, 계림닷컴), 《새 교과서 학습동화 1학년 수학》(안선모, 계림닷컴).

 

18) 《물꼬 할머니의 물사랑》(이붕, 영림카디널), 《빨간 우체통이 전해준 사랑》(나이테, 다산교육), 《인사 잘 하고 웃기 잘 하는 집》(윤수천, 시공주니어), 《멀리 보는 새》(이영호, 영림 카디널), 《쪽지 편지》(박명희, 지경사).

728x90
반응형

'어린이책 관련 > 우리창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주 특별한 우리 형  (0) 2021.06.16
괭이부리말 아이들  (0) 2021.06.16
자연 속의 아이, 동화 속의 아이  (0) 2021.05.24
2003년 창작동화를 돌아보며  (0) 2021.05.24
비나리 달이네집  (0) 2021.05.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