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부리말이 전해주는 우리네 삶 이야기
<괭이부리말 아이들>(김중미 글/창비)
괭이부리말 아이들
2000년 창작과비평사 주최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창작부문 수상작. 초판 2000년 7월 15일. 이 책의 배경인 괭이부리말에서 공부방을 하고 있는 진짜 괭이부리말 이야기의 주인공인 작가 김중미의 첫 작품집.
책이 나온지 1년이 훌쩍 넘어선 2001년 11월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기 시작해 어린이 책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 각 서점의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 1위까지 단숨에 장악해버렸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2002년 3월 첫주까지 아직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에서 당당하게 버티고 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이력이다.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는 이력이다. 어린이 책 베스트셀러도 아니고 종합 순위 베스트셀러라니! 하긴 어린이 책이라고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에 들지 못할 건 없다. 좋은 동화는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법이고, 아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으니 책 읽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사는 어른들도 쉽게 읽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도 꼭 아이들만은 아니니 어른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토대는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지, 현실에서 어린이 책이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에 오르기는 힘든 일이다. 그런데 희박한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났다. 그것도 책이 나온지 일년이 넘도록 어린이 책 베스트셀러에 한 번도 끼지 못했다가 어느 순간(!)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 1위까지 당당하게 차지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좋아했던 만큼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는 건 기쁜 일이다. 누구나 제목 정도는 다 알 정도로 알려졌으니까. 하지만 마냥 기쁘기만 하 건 아니다. 텔레비전의 놀라운 위력에 놀란 탓도 있을 게다. 교양 프로그램이 아닌 오락 프로그램에서, 책 읽는 사회를 위해 한 달에 한 권씩 확실하게 밀어주는 진행 방식은 완벽하게 성공한 셈이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에 이어 《봉순이 언니》《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까지 잇따라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이 프로그램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조금은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할 지 모른다. 어찌됐건 《괭이부리말 아이들》같이 좋은 책을 널리 알려줬으니 말이다. 진행 과정에서 너무 유치하거나 본론에서 빗나간 엉뚱한 이야기로 가득 차는 걸 볼 때면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그저 아쉬움이란 생각이 든다.
좋은 책들이 텔레비전 매체의 위력을 빌리지 않고도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면……, 하는 바램은 여전히 남지만 말이다.
'괭이부리말'이란 곳
괭이부리말은 인천에서도 가장 오래된 빈민 지역이다. 지금 괭이부리말이 있는 자리는 원래 땅보다 갯벌이 더 많은 바닷가였다. 그 바닷가에 '고양이 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었다. 호랑이까지 살 만큼 숲이 우거진 곳이었다던 고양이 섬은 바다가 메워지면서 흔적도 없어졌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 곳은 소나무 숲 대신 공장 굴뚝과 판잣집들만 빼곡히 들어 찬 공장 지대가 되었다. 그리고 고양이 섬 때문에 생긴 '괭이부리말'이라는 이름만 남게 되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1장의 내용은 괭이부리말에 대한 소개나 다름없다. 몇 장 되지 않는 걸 읽다보면 괭이부리말의 역사에 대해 빤히 들어온다. 괭이부리말은 일제 시대에는 가난한 식민지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6·25 때는 전쟁만 끝나면 돌아가려던 황해도 피난민들이 내려왔다 눌러 앉게 되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빚에 쫓긴 농민들이 한밤중 괴나리봇짐을 싸고 밀려오고, 수출 역군이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농촌 젊은이들이 몰려온 곳이다. 살 집이 없는 사람들은 빈 땅이면 어디나 집을 지었고 그러니 골목은 거미줄처럼 얽히고 얽힌 실골목이 되고 만다. 때론 돈을 모아 이곳을 떠나는 사람도 있지만 남아있는 사람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이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이곳으로 온다. 기구한 땅이다.
겉으로 본다면 이곳도 달라져 가는 것 같기도 하다. 동네 어귀부터 판잣집들이 헐리고 상자곽 같은 빌라들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변한 건 없다. 괭이부리말의 빌라는 날림 공사에 햇빛도 제대로 들지 않을 정도로 따닥따닥 지어진 것들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제일 밑바닥에서 기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뿐이다.
괭이부리말에 가본 일은 없지만 괭이부리말의 모습이 훤히 들어온다. 마치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어온 것처럼 말이다. 이야기의 도입부치고는 무척 특별하다. 괭이부리말의 역사라니!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앞에 나온 이 괭이부리말의 모습을 다시 떠오르게 된다. 겉모습은 변했지만 여전히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는, 너무나 힘들게 버텨나가며 살고 있는, 지금 괭이부리말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니, 꼭 괭이부리말이 아니라도, 괭이부리말과 같은 운명을 걸었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나는 누구와 같은 삶을 살았는가를. 난 아무래도 김명희 선생님 쪽인 것 같다. 아니, 엄밀하게 말한다면 그렇지도 못하다. 괭이부리말에서 벗어나려고 온갖 애를 다 썼지만 결국은 다시 그 품으로 돌아오는 김명희 선생님과는 확실히 다르다. 나는 여전히 지금의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어서, 나아지기만 하면 좀더 좋은 곳에서 안착하고 싶은 맘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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