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안녕?
제니 오베렌드 글/줄리 비바스 그림/김장성 옮김/사계절
아기가 세상에 태어날 때의 감동, 아직 기억하시죠?
하지만 엄마들이 느꼈던 그 감동이 어쩌면 반동강짜리였는지 몰라요. 가족들도 마찬가지지요. 아니, 가족들은 진짜 누려야 할 감동의 반에 반 정도 밖에 못 누렸을지도 몰라요. 아기는 더더욱 그렇고요.
무슨 소리냐고 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우리 출산 환경 문제는 아무래도 아이가 태어날 때의 그 감동을 동강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산모는 아픈 배를 움켜잡고 가족들을 뒤로 한 채 분만실로 들어가고, 엄마와 아기를 연결해 주던 탯줄이 잘려진 다음에야 아기와 얼굴을 대하죠. 아기는 깨끗하게 씻겨져 속싸개에 쌓여진 채 유리창 안에서 가족들과 첫 인사를 하고요.
가족들의 축복 속에, 새로운 가족이 될 아기는 이렇게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병원의 일방적(!)인 분만과정을 거쳐 태어납니다. 그래요.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개의 병원에서 산모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큰 일을 해낼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하지요. 그러니 산모의 진통은 더 고통스럽습니다.
아, 그렇다고 제가 병원을 무시하자는 건 아니에요. 저도 병원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무사히 아기를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몰라요. 전치태반이라고...그래서 출산을 며칠 앞두고는 수술을 할 때 지혈이 잘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럼 자궁을 들어내겠다는 서약까지 해야 했지요. 그땐 놀라서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끔찍(!)한 느낌이 들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병원은 필요할 때도 있지만, 때론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의지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아기를 낳는 일도 그래요. 사실 특별한 경우만 아니라면 우리는 병원에서가 아니라, 집에서도 충분히 아기를 낳을 수도 있거든요. 물론 조산원의 도움은 필요하겠죠.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에요.
엄마가 슬슬 배가 아파 오자 가족들은 모두 바빠집니다. 누나들은 난롯가에 이부자리를 펴고, 나는 엄마와 아기 옷을 준비하고, 아빠는 땔감을 준비합니다. 조산원 안나 아줌마도 오셨고, 엄마는 아기가 나올 때까지 바람이 울부짖는 숲속을 걷고 들어와 이리저리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아빠에게 매달리며 크게 소리를 지릅니다. 아기가 나오려고 하는 거죠. 엄마는 벌거벗은 몸으로 아빠에게 기대서서 아기를 낳습니다. 마침내 아기가 나왔어요. 얼마나 감동저긴가요. 누나는 눈엔 눈물이 줄줄 흐르고, 나는 조용히 말합니다. "아가야, 안녕? 내가 바로 네 형이야." 아빠가 엄마를 자리에 뉘입니다. 엄마도 아빠도 아가도 울고 있습니다. 이어서 아주 건강한 태반도 나옵니다. 탯줄은 아빠가 수술가위로 잘랐습니다. 그리고 저녁밥도 차려 주셨죠. 그날밤 아기는 엄마 아빠 사이에 누워서 잡니다. 그 자리는 '내가 좋아하던 자리'지만 나는 기꺼이 아기한테 그 자리를 양보하지요. 그리고 속삭입니다.
"잘 자라, 아가야.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첫날밤이야. 잘 자."
이렇게 아기는 가족의 구성원이 됩니다. 온 가족이 함께 아기를 위해 준비하고,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태어나지요. 아기가 태어날 때의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지요. 물론, 아기도 감동스러울 거예요.
생명의 소중함. 그건 아무리 말로 강조한다고 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죠. 하지만 이렇게 아기의 탄생을 지켜본 가족들, 가족들의 축복 속에 아기를 낳은 엄마, 그리고 아기는 굳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거예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걸 깨달았기 때문이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인 '나'는 이제 막내가 아니예요.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죠. 아기가 입을 옷도 엄마와 함께 준비했고, 태어나는 과정도 지켜봤고, 그래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지만 기꺼이, 그 자리를 아기를 위해 내놓을 수가 있는 거지요.
따스함이 전해 오는 정말 좋은 그림책입니다.
이렇게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은 그림으로도 아주 자세히 그려있지요. 우리에겐 좀 낯선,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거벗은 채 아빠 몸에 기대 선 엄마의 모습, 탯줄이 그대로 달려있고 피부는 주름져 있는 아기의 모습, 아직까지 탯줄로 연결되어 있는 아기를 안고 내려다 보는 엄마의 모습, 쟁반에 담긴 커다란 태반……이런 사실적인 그림들은 조금은 충격(!)이기도 하고, 또 커다란 충격이기도 합니다. 조금의 충격은 낯설음 때문이고, 커다란 충격은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생명의 소중함'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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