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그랬어
윤구병 글/이태수 그림/보리
어렸을 땐 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기만 했는데, 어른이 된 뒤에는 언제부턴가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고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어갈 수록 세월은 점점 더 빠르게 간다. 정신 없이 지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 틈인가 지난 세월이 저만큼 지나가 있다.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더 하겠지 하는 생각에 때론 아찔해지기도 한다.
심심할 틈? 그런 건 잊어버린지 이미 오래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린 시절엔 그렇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데도 시간이 지독히 안 갔다. 그래서 제발 빨리 시간이 지나가 주기를 바란 때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엔 심심한 때도 정말 많았다. 한번 심심해지기 시작하면 몸이 뒤틀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걸 그대로 참아내려면 머리가 팽팽 돌아 버리고 그러다 결국 신경이 날카로워져 한바탕 싸움(엄마랑 혹은 친구랑)을 벌이게도 된다.
그러니 더 큰 사고를 안 치려면 되도록 빨리 재미있는 거리를 찾아내야 한다.
더운 여름 날, 산골 마을의 돌이는 심심하기만 하다.
엄마랑 아빠는 밭 매러 가고, 집에는 돌이랑 강아지 복실이 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친구? 안타깝게도 돌이네 집 근처에는 다른 집들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 친구랑 놀기는 틀린 것 같다.
엄마, 아빠? 여름은 시골에서 가장 바쁜 철인데 돌이랑 놀아줄 시간이 없는 게 당연하고.
대신 돌이네 뒷마당에는 소, 염소, 토끼, 닭, 돼지가 있다. 그러니 돌이는 뒷마당에 있는 동물들하고 놀 수밖에. 하지만 돌이가 축사에서 놀 수는 없고……그렇다면 방법은?
동물들을 모두 나오게 해서 밖에서 함께 놀 수밖에.
하지만 돌이보다 더 신이 난 건 동물들이다. 갇혀만 지내가 밖으로 나왔으니 저마다 온 밭을 헤치고 다닌다.
염소는 염소밭에,
닭들은 고추밭에,
돼지들은 감자밭에,
토끼들은 무밭에,
그리고 엄마소랑 송아지는 배추밭에……그러다 송아지는 오이밭으로 뛰어들어가고 만다.
심심함을 달래보려 한 일인데 그만 큰일이 나고 말았다. 해결책이 없는 돌이는 그저 울 수밖에 없다. 돌이는 울다울다 지쳐서 잠이 들고, 집에 돌아온 엄마 아빠는 깜짝 놀란다.
엄마 아빠가 나간 틈에 아이가 돌이처럼 이런 사고를 쳐놨다면 아마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거다. 하지만 이럴 때일 수록 마음을 진정시키고 내 어릴 적 모습을 떠올려 보자. 너무나 노곤한 오후, 심심함을 견딜 수 없었을 때 혹시 내가 돌이 같은 사고를 친 경험이 없는지 말이다. 아마 한두번쯤은 있지 않을까.
아니, 혹시 없다고 하더라도 야단일랑 치지 말자. 심심해서 그랬다는데…….
심심함을 못 이겨 계속 괴로워하기보다는 한바탕 난리를 치고 끝내는 편이 서로 좋다.
심심해 못 견뎌하는 돌이를 따라가 보자. 사고를 치며 다니는 돌이의 모습도 귀엽지만, 시골 농가의 이곳저곳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만만찮다. 갇혀만 지내다 돌이 덕에 밖에 나온 동물들의 표정도 살펴보자. 자유로움을 맘껏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하루쯤 가족 모두 이렇게 밖에 나가 신나게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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