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 아저씨
권정생 글/정승각 그림/길벗어린이
이 책은 전체적으로 파란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어느 색이나 다 그렇겠지만 파란색은 때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맑고 깨끗함이나 이성적인 모습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때론 외롭고 쓸쓸하고 연약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책장을 넘기며 이 색의 변화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 책의 배경은 추운 겨울밤 외딴 외양간이다.
둥그런 보름달님이 쏟아놓은 하얀 달빛은 하얗게 쌓인 눈에 반사되어 더 추운 느낌을 준다.
그 외양간에 황소 아저씨가 쌕쌕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 황소 아저씨가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가 담긴 구유가 보인다.이곳에 새앙쥐 한 마리가 나타난다. 외양간 모퉁이 벽 뚫린 구멍으로 얼굴을 쏙 내민다. 깜깜한 가운데 새앙쥐의 눈만이 초롱초롱 빛난다.
새앙쥐는 쪼르르 황소 아저씨 등을 타고 구유로 달려간다. 하지만 등짝이 가려워진 황소 아저씨는 긴 꼬리를 세차게 후려치고, 새앙쥐는 그만 바닥에 동댕이쳐지고 만다.
이렇게 황소 아저씨와 새앙쥐가 만난다.
새앙쥐는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 먹을 걸 찾아 황소 아저씨의 구유로 가던 길이었다. 놀란 새앙쥐는 오들오들 떨면서 '앞으로는 아저씨 궁둥이 밑으로 비잉 돌아갈 테니, 제발 먹을 걸 가져가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황소 아저씨는 '동생들이 기다릴 테니 내 등때기 타넘고 빨리 가'라고 한다.
구유 속의 음식 찌꺼기는 황소 아저씨에겐 필요 없지만 새앙쥐에게는 너무 중요한 양식이다. 이틀 뒤, 아기 새앙쥐들도 다 자라 볼볼 기어다닐 수 있게 되자, 황소 아저씨는 앞으로는 동생들도 함께 와서 맛난 걸 실컷 먹으라고 한다.
새앙쥐들은 모두 구유 안에 들어가 맛있는 찌꺼기를 실컷 먹는다.
"얘들아, 구유 안에 똥 누면 안 된다!"
"오줌도 누면 안 되고 코딱지 묻혀도 안 된다."
황소 아저씨의 유머(?)도 보통이 아니다.
이제 새앙쥐들은 황소 아저씨랑 사이좋은 친구가 되고,
그리고 황소 아저씨랑 새앙쥐들은 함께 살게 된다.
겨울이 다 지나도록 따뜻하게 따뜻하게 함께.
추운 겨울, 추운 외양간에서 춥게 사는 황소 아저씨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새앙쥐의 이야기지만 마냥 춥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자기가 가진 걸 서로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황소 아저씨는 자기가 먹을 것의 일부를 떼어주고, 새앙쥐는 황소 아저씨에게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정을 나눠준다. 자기가 줄 수 있는 걸 나누어줌으로써 모두 행복해진다.
앞서 말한 파란빛도 달라진다.
첫 장면에서의 싸늘해 보이는 파란빛, 어두운 외양간에서의 파란빛은 마지막에는 거의 하얀빛으로 바뀐다. 이 파란색의 느낌은 괜히 나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란색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마지막 장은 역시 포근해 보인다.
그림은 곳곳에서 입체적인 느낌이 나면서 분위기를 살리고 있는데, 이건 판넬 위에 부조를 만든 뒤 모시 천을 덮고 수성물감으로 채색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한 것이라 한다.
어른들은 간혹 너무 어둠침침한 분위기라 인물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각 장면마다 중심 되는 인물을 너무 잘 찾아낸다. 장면마다 필요 없는 묘사는 없이 인물의 움직임과 감정만을 정확하게 뽑아냈기 때문이리라.
우리도 황소 아저씨처럼 이렇게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럼 이 세상은 좀더 살만해질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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