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지요.(2001년 당시의 일입니다)
'핀두스'도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보게 됐어요.
그날도 '핀두스' 세 권을 유치원에 갔지요.
그런데 그날따라 두 명이나 책을 가지고 와서 그 책을 읽어달라는 거에요.
한 명은 <신기한 스쿨 버스>를, 또 한 명은 애니메이션 그림책 <파랑새>를 가져왔어요.
먼저 <신기한 스쿨 버스>를 읽어줬지요. 책을 가져온 아이와 다른 한 명만 말똥말똥..다른 아이들은 재미가 없다고 난리가 났어요. 결국 끝까지 다 못 읽고 말았죠.
이번엔 <파랑새>를 봤어요. 이번에도 역시 책을 가져온 아이만 빼고는 모두 다 재미없다고 난리에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핀두스'르 보자고 했죠. 그랬더니 <신기한 스쿨 버스>를 가져온 녀석은 화가 나서 툴툴거리며 안 듣겠다고 난리를 쳐요. 그래도 저는 모른 척하고 책을 펴들고 아이들한테 읽어줘요. 하지만 제 눈은 툴툴거리던 녀석에게 계속 가게 됐죠.
그런데, 툴툴거리던 그 녀석이 처음엔 안 보는 척하고 있더니 조금씩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요. 곧 초롱초롱해졌죠. 한 권을 다 읽기가 무섭게 모든 아이들이 외쳐요.
"다른 책도 다 읽어줘요."
저는 또 신나게 핀두스를 읽어줬지요. 아이들은 깔깔대고 바닥을 치고 뒹굴고 난니가 났지요.
사실 유치원 아이들이 보기엔 글이 좀 많은 책이라 걱정도 했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자 또 한바탕 난리가 났어요.
서로 책을 빌려달라고요...어떤 아이는 책을 달라고 하면서 제 손에서 책을 뺏어가요.
저는 이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단호하게 말했죠.
"안 돼!"
그랬더니 처음에 툴툴대던 녀석이 물어요?
"그 책 어디가면 살 수 있어요?"
저는 책 제목과 출판사까지 다 알려줬어요.
늘 산만하다고..책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던 아이까지도 이 책만은 너무나 재미있다고 해요.
수업은 아주 성공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말을 하네요.
"선생님, 우리 핀두스로 연극해요."
연극!
전 사실 연극 같은 건 생각도 안 해봤거든요.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읽어줄 때도 그저 읽어주고 말 뿐이었어요.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나 좀 들어주고...
아이들은 또한번 난리가 났어요. 모두들 연극을 하자고 조르기 시작해요.
이쯤되면 저는 항복을 할 수밖에요.
"그래. 그런 다음 주에 연극을 하자."
핀두스 가운데 <여우를 위한 불꽃놀이>를 하기로 했지요. 가위바위보로 자기가 맡을 역을 나눴어요.
소품은 준비하지 않고 대신 도화지에 자기가 맡은 역을 표현할 수 있는 가면을 만들어오라고 했죠.
물론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제가 그동안 몇 번이나 다음 시간에 뭘 해오라고 했어도 단 한번도 해온 일이 없는 아이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다 가면을 만들어 왔어요. 아주 멋지게요.
저를 보자마자 빨리 연극을 시작하자고 난리에요.
다시 한번 <여우를 위한 불꽃놀이>를 읽어주고,
제가 미리 준비했던 대본을 나눠주고 대본 연습을 했어요. 두 세번쯤.
그리고 연극 연습을 시작했지요.
전 연극 같은 건 잘 몰라요. 그래서 그냥 대충 이렇게 이렇게 하자 라고 위치 정도만 알려줬죠.
그랬더니 아이들이 스스로 연극을 채워나가요. 유치원에 있는 소품들을 이용해 즉석에서 연극을 만들어 나가요. 전 정말 놀랐지요.
하지만 정해진 시간은 50분 이내라서 다 못하고 끝냈죠. 저는 이쯤에서 끝낼까도 했는데...아이들이 다음 주에 제대로 한번 해보자고 하네요.
결국 다음 주에 또 만났어요. 아이들은 준비물을 여전히 잘 챙겨왔어요. 이번엔 미리 알려주지도 않았는데도 말이에요.
아이들과 신나게 연극 놀이를 하다보니 정해진 시간은 또 금방 지나가 버렸어요.
다음 주,
저랑 만난 아이들이 물어요.
"오늘은 핀두스 안 해요?"
저는 대답했죠.
"너희들은 핀두스만 할 거니? 다른 책들도 좀 보자."
3주동안 아이들과 함께 했던 핀두스 시간은 이렇게 해서 지나갔죠.
아이들과 핀두스를 보고 난 뒤 아이들한테는 변화가 생겼어요.
첫째, 책을 싫어하던 아이도 그 다음부터는 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지요. 그건 책을 읽어줄 때 그 아이의 눈빛을 보면 다 알 수 있어요.
둘째, 아까 "이 책 어디서 사요?"라고 물었다고 했죠. 그날 이렇게 물었던 아이의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어요. 정확한 제목을 알려달라고요. 집에 와서도 너무나 재미있다고 해서 사주기로 했다고요. 이 다음부터 아이들은 좋은 책을 사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 같아요.
셋째, 아이들도 나름대로 좋고 나쁜 책에 대해서 평가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은 뒤 한 아이가 "책 대여점 *****"는 좋은 책을 안 갖다 줘요." 이런 말을 했어요.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맞아요, 맞아요 하면 맞장구를 쳤지요. 아이들이 말하길 처음엔 좋은 책을 많이 가져다 줬는데, 요즘엔 별로 좋은 책을 가져다주지 않는데요. 일방적으로 가져다 주는 책이 좋은 책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서 나쁘대요.
유치원 아이들의 말 치고는 너무 의미심장하죠? ^_^
이렇게 아이들의 살아있는 반응을 느끼면서 책을 본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에요.
다른 분들도 아이들과 함께 '핀두스'를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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