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쫙! 아이 독서지도 14
동아일보 2007. 8. 28.
'필독서'란 말에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많고 많은 책 가운데 어떤 책을 골라서 아이에게 보여주느냐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많은 책들을 일일이 다 보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책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좋은 책을 수소문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책은 아이가 보는 것이니만큼 아이가 좋아해야 한다는 신조로 아이에게 전적으로 책 선택권을 맡기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다양한 형태로 나와 있는 각종 목록에 한번쯤 눈길을 돌리곤 한다. 자신의 아이에게 맞는 연령대 목록은 물론이거니와 아이랑 함께 독서지도를 하면 좋다는 목록, 아이 상황별 목록, 무슨 무슨 유명한 상을 받았다는 책들……. 어느 경우나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목록에 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다. 아무래도 책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이들 목록을 마치 ‘필독서’처럼 여기는 분들을 만날 때다. 집에 책이 충분히 있어도, 아니 집에 아직 못 보고 쌓아둔 책이 많이 있어도 이런 책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책을 안 보여주면 안 될 것처럼 여기기도 한다. 또 때로는 모든 책에 우선해서 이들 책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럴 경우 그 목록이 아무리 좋다 해도 아이에게는 좋은 책읽기가 될 수 없다. 책을 읽어야 하는 주체인 아이가 빠지고 그 자리를 책이 차지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아이가 커감에 따라서 더 많고 다양한 목록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필독 분야까지 등장하면 점점 ‘필독’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진다. 특히 학교에 가면 학급문고 필독, 학년별 필독, 교과별 필독 등 필독의 이름을 달고 있는 책들이 많다. 물론 이런 책들이 다 ‘필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어떤 목록이든 필독으로 여기기 시작하면 모든 게 필독서가 되고 만다.
하지만 이 세상에 ‘필독서’라는 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 함께 같은 책을 보고 공부를 해야 하는 경우를 빼고라면 말이다. 일종의 교과서 말이다. 그러니 ‘필독서’라는 말만으로 마음이 약해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필독서라는 말이 붙어 있건, 그렇지 않건 상관없이 필독서라는 생각은 떨쳐 버리면 좋겠다. 세상에 필독서가 있다면 그 많고 많은 책은 나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여러 가지 목록은 좋은 책을 고르는 데 도움이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참고 자료로만 삼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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