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쫙! 아이 독서지도 15
동아일보 2007. 9. 5.
책을 읽은 효과를 확인하고 싶으시다고요?
책을 읽어주는 엄마와 엄마가 읽어주는 책에 흠뻑 빠져버린 아이.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다. 책을 읽어주는 엄마는 아이를 보며, 아이는 엄마를 보며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간혹 엄마는 의심이 생기기도 한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걸 아이가 좋아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제대로 이해를 하면서 듣고는 있는 건지 궁금해진다. 만약 아이가 이해도 못하면서 그냥 듣고 재미있어만 하는 거라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쉽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찾기 어렵다. 얼른 생각나는 건 아이에게 묻고 확인하는 정도다.
하지만 한번 묻고 나면 돌이키기 어려워진다. 아이가 대답을 잘 하면 엄마 마음도 뿌듯해지고, 그래서 다시 또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반대로 대답을 잘 못하면 엄마는 속이 탄다. ‘아이가 내용도 모르면서 엉터리로 듣고 있었다’는 생각에 지금까지 읽어주었던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앞으로는 제대로 내용을 확인하고 읽어줘야겠다 마음을 먹기도 한다.
때로는 아이의 말 한 마디가 그동안 확인하고 싶던 마음을 꾹꾹 참고 있던 엄마 마음을 흔들어놓기도 한다. 아이가 좋아하던 책을 수십번 이상 반복해서 읽어줬고, 그래서 아이도 내용을 충분히 알 거라 믿고 있던 엄마의 기대를 져버리는 순간이다. 아이가 너무나 뜬금없이, 너무나 당연히 알 거라 믿어의심치 않았던 걸 물을 때다. ‘아니, 그렇게 읽어줬는데도 그걸 몰라?’ 하는 배신감에 ‘앞으로는 꼭 내용을 확인하면서 읽어줘야겠다’고 마음 먹는 경우다.
어떤 경우든 엄마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질문을 통한 확인 작업만큼은 피했으면 한다. 책이란 읽고 또 읽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아이 내면에 차고 넘치기 마련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가 너무나 당연한 걸 물은 것이지만, 아이는 그동안 그 책을 보며 미처 보지 못한 걸 발견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발견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이 반대로 나오면 아이는 책을 통해 이런 기쁨을 맛보기 어려워진다.
책에서 질문을 찾는 건 아이여야 한다. 괜한 엄마의 질문은 아이를 엄마의 질문에 갇혀버리게 만든다. 그럼, 아이는 책에서 더 멋진 세계를 찾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시기, 책을 소리내서 읽는 사람은 엄마지만 엄마는 어디까지나 아이와 책을 중개해주는 매개자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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