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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옛이야기 그림책] 설탕으로 만든 사람

by 오른발왼발 2024.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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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카 에스테를 글 / 율리아 구코바 그림 / 비룡소

 

 

나는 반드시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야.”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으신가요?

현실에서 내 마음에 꼭 드는 상대를 만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일단 마음에 드는 상대와 만나보기라도 하려면 외모가 내 마음에 꼭 들어야 해요. 하지만 외모만 마음에 든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죠. 외모와는 달리 그 사람의 복잡한 내면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크니까요.

다행히 우리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고 늘 함께 있고 싶어지죠. 그래서 결혼도 하게 되는 거고요. 하지만 사랑이 식으면서, 이른바 사랑의 눈꺼풀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상대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죠. 그럼 티격태격 싸우게 되죠.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죠. 이 과정에서 상대를 조금씩 이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고집을 조금씩 꺾으면서 관계를 이어가곤 하죠. 하지만 아무리 해도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워지면 헤어지고 말아요.

 

그리스 옛이야기인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우리의 이런 모습이 담겨 있는 이야기처럼 보여요. 이야기는 이래요.

 

옛날에 한 공주님이 청혼하는 모든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자기 마음에 꼭 드는 남자를 직접 만들기로 하죠. 곱게 빻은 아몬드와 설탕, 밀가루를 섞어 사람을 빚고 40일 동안 간절하게 기도를 하자 살아있는 사람이 됐지요.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너무 아름다워서 금세 온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먼 나라에 살던 어느 여왕이 잡아가 버려요,

공주는 무쇠 신발 세 켤레를 챙겨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찾아 나서요. 달님의 어머니, 해님의 어머니, 별님들의 어머니가 사는 곳까지 찾아가죠. 그리고 마침내 설탕으로 만든 사람이 사는 곳을 알아내요. 공주는 그곳으로 찾아가요. 달님의 어머니가 준 아몬드와 해님의 어머니가 준 호두와 별님들의 어머니가 준 개암나무 열매를 가지고요.

공주는 설탕으로 만든 사람이 갇혀 있는 여왕의 궁전 거위 우리에서 하룻밤 묵어가요. 공주가 그곳에서 아몬드를 깨뜨리자 황금으로 된 물레와 가락이 나왔죠. 공주는 황금 물레와 가락을 탐내는 여왕에게 그 대가로 설탕으로 만든 사람과 하룻밤 지내게 해 달라고 해요. 여왕은 설탕으로 만든 사람에게 잠드는 약을 먹이고 공주에게 데려다줬죠. 그러니 공주가 밤새 아무리 하소연해도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어요.

다음 날, 공주가 호두를 깨자 이번엔 황금 암탉과 황금 병아리들이 나왔어요. 이번에도 여왕은 설탕으로 만든 사람에게 잠드는 약을 먹여 공주에게 데려다주고 황금 암탉과 황금 병아리를 데려갔어요. 결국 어제와 마찬가지로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지요.

그다음 날, 공주는 개암나무 열매를 깼어요. 그 속에서는 황금 패랭이꽃 한 다발이 나왔죠. 여왕은 이번에도 설탕으로 만든 사람에게 잠드는 약을 먹여 공주에게 데려가려 했죠. 그런데 공주가 밤새 하소연하는 말을 들었던 재단사가 설탕으로 만든 사람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죠. 이제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모든 사실을 알게 돼요. 그래서 잠드는 약을 먹지 않고 잠든 척한 뒤, 공주를 데리고 달아나죠.

자 그럼 여왕은 어떻게 했을까요? 여왕은 자기도 설탕으로 사람을 만들기로 했어요. 하지만 아몬드를 깨고 설탕과 밀가루를 섞어 반죽하는 건 하인들에게 시키죠. 그리고 사람을 빚은 뒤엔 기도 대신 저주의 말을 내뱉었고요. 40일 뒤, 그 사람은 썩어버리고 말았답니다.

 

공주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사람을 만들었지만, 자신이 만든 사람을 잃어버리고 무쇠 신발 세 켤레가 닳을 만큼 힘든 여정을 거친 뒤에야 그 사람을 다시 찾을 수 있었어요.

왜일까요?

전 공주가 빚은 설탕으로 만든 사람이 마치 백마 탄 왕자처럼 느껴졌어요. 결혼 전 누구나 자기 머릿속에 한 번쯤 그려봤을, 현실에는 없는 이상형 말이에요. 사실 이런 이상형은 상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애가 바탕이 된 것이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설탕으로 만든 사람 같은 자신의 이상형을 만났다 하더라도 현실에서는 끝없이 이런저런 문제에 부딪히고 말아요. 공주가 무쇠 신발 세 켤레가 닳을 만큼 힘든 과정을 거치고서야 다시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때문이죠.

그렇다면 공주처럼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간절히 바라는 건 헛된 일일까요?

그건 아닐 것 같아요.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빼앗아 갔던 여왕은 자기도 공주와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만들려고 하죠. 하지만 실패하고 말아요. 여왕은 공주와 달랐던 점이 있기 때문이에요. 여왕은 아몬드를 깨고 설탕과 밀가루를 섞어 반죽하는 것을 자신이 직접 하지 않고 하인들을 시켰지요. 그리고 기도 대신 저주의 말을 내뱉었고요. 여왕이 만든 설탕으로 만든 사람은 겉모습은 비슷했을지 몰라도 그 내면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거예요.

공주의 설탕으로 만든 사람이 온전한 자기애가 바탕이 됐다면, 여왕의 자기애는 겉모습(남들 눈에 보이는)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불완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공주처럼 간절하게 설탕으로 만든 사람을 만드는 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펜타메로네 》 (바실레 글/책세상)

 

설탕으로 만든 사람과 비슷한 이야기는 이탈리아, 그리스, 터기 쪽에서 주로 발견된다고 해요. 그림형제보다 앞선 시기에 이탈리아의 바실레가 쓴 책인 펜타메로네가운데 <핀토 스마우토>라는 이야기는 설탕으로 만든 사람과 비슷한 이야기에요. 또 민담 연구가인 막스 뤼티는 옛날 옛적에라는 책에서 어느 나라의 이야기인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지미그달리씨 또는 보리로 만든 신사라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어요.

《 옛날 옛적에 》(막스 뤼티 글/길벗어린이/절판)

 

한편으론 공주가 아니라 남자가 자신의 이상형인 여자를 만드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이죠. 피그말리온은 자기의 이상형인 여자를 조각했고, 아프로디테에게 기도해 여자를 살아나게 하죠. 그 여자의 이름은 갈라테아였죠.

그리고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는 결혼을 해서 잘 살게 된다고 해요. ‘설탕으로 만든 사람과는 다른 전개에요.

, 이거 뭐야? 왜 남자는 자기가 만든 여자와 아무런 고난도 없이 잘 살아? 여자는 자기가 만든 남자랑 잘 살려면 그 어려운 고난을 겪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저뿐일까요? 그런데 가만 살펴보니 피그말리온은 갈라테아와 잘 살았지만, 그 후손들은 쭈르르 망했다고 하더군요. 결국 피그말리온의 결혼도 무조건 완벽했다고 볼 수는 없는 거겠지요.

그러고 보니 언젠가 제가 봤던 완벽한 아내 만들기(글항아리)란 책이 떠올라요. 이 책에는 현실에서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신붓감을 스스로 만들려던 남자가 등장하지요. 이 사람은 고아원에서 소녀 둘을 입양해 자기 취향에 맞게 키워나가죠. 적어도 둘 중의 한 명은 자신에게 맞는 완벽한 신부가 될 것이라 믿으면서요. 작가는 18세기 실제 사건을 면밀한 취재로 재구성해 이 책을 펴내지요. 그렇다면 이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완벽한 신붓감과 결혼할 수 있었을까요? 결과는 실패였어요. 자기가 원하는 조건대로 소녀들을 키울 수는 있었지만, 소녀들의 내면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 완벽한 아내 만들기 》(웬디 무어 글/글항아리)

 

 

설탕으로 만든 사람’, ‘피그말리온’, 완벽한 아내 만들기까지, 모두 완벽한 배우자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이야기처럼 보여요. 물론 완벽한 아내 만들기에 등장하는 남자처럼 여자를 자기 입맛에 맞춰 만들어내려 하는 모습은 말도 안 되지만 말이에요.

 

이렇게 보니 이 책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이야기라 생각돼요. 아니, 어쩌면 어린이보다는 어른들에게 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이야기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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