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이가 건네는 위로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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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몽실 언니를 처음 알게 된 건 1990년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덕분이었다. 그때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인기가 대단하던 시절이었다. 시청률이 얼마나 됐는지 알 수는 없으나, 여기저기서 ‘몽실 언니’ 이야기하는 걸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또 단발머리를 한 아이가 있으면 “너 꼭 몽실이 같구나.” 하고 말하기도 했다. 나처럼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도 다 알만큼, 몽실이는 전 국민이 다 아는 캐릭터가 됐다.
내가 몽실 언니를 직접 만난 건 1990년대 중반,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공부할 때였다. 신입회원이 봐야 할 책 목록이 있었는데, 《몽실 언니》는 그 가운데 한 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임에서 나는 《몽실 언니》에 대한 불만을 마구 터뜨렸다. 몽실이의 처지가 너무 불쌍했다. 나라면 살아갈 희망도 품지 못했을 것 같았다. 마지막에는 행복하게 끝나길 바랐지만, 마지막에도 몽실이는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나와 다른 의견이 있었는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있었던 기억만 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생각만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다시는 안 펼쳐봤을 《몽실 언니》였지만,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을 하며 다시 읽어 볼 계기가 자꾸 생겼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다시 볼 때마다 《몽실 언니》는 점점 다르게 보였다.
처음에 그렇게도 싫어했던 장면 – 시장 좌판에서 장사하는 몽실이의 모습. 길에서 구두 수선하는 꼽추 남편을 얻은 것, 여전히 난남이와 영순과 영득을 알뜰하게 살피며 사는 모습 – 속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한 몽실이의 모습이 보였다. 행복이란 겉모습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놓치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그 뒤 자꾸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들은 대체로 몽실이의 말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누구라도 배고프면 화냥년도 되고, 양공주가 되는 거여요.”
몽실이가 이렇게 외치는 순간은 화냥년과 양공주로 불리던 사람들이 내 주위의 소중한 사람이 되는 순간이었다. 몽실이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 무언가를 머리로 배워서가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것을 직관적으로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다리 다친 건 팔자여요.”
하고 말하는 몽실의 말도 비관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알고 인정할 때만이 자신만의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몽실이가 갖는 힘이라 여겨졌다. 그리고 이 힘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되기도 했다.
“왜 인민군은 국군을 죽이고, 국군은 인민군을 죽이는 거예요?”
몽실이의 물음에 인민군은 답한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 본 사람도 사람으로 만났을 땐 다 착하게 사귈 수 있어. 그러나 너에겐 좀 어려운 말이지만, 신분이나 지위나 이득을 생각해서 만나게 되면 나쁘게 된단다. 국군이나 인민군이 서로 만나면 적이기 때문에 죽이려 하지만 사람으로 만나면 죽일 수 없다.”
어쩌면 인민군은 몽실이의 물음이 아니었다면 이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 거다. 이런 생각을 하며 전쟁터에서 견디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몽실의 물음은 인민군이 전쟁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고, 인민군은 뼈아픈 자기 통찰을 통해 이렇게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 인민군은 죽는 날까지 늘 몽실의 물음을 마음에 간직하며 살았을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말이다.
몽실이는 자신이 다리를 다친 걸 팔자로 받아들이듯 엄마와 댓골 김씨 아버지에게서 낳은 영득과 영순이, 자신의 아버지와 북촌댁 어머니 사이에서 낳은 난남이 역시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인다. 자기 하나만 추스르기에도 벅찬 삶이지만 이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특히나 몽실이가 갓 난 난남이를 키우는 과정은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난남이가 있었기에 몽실이도 난남이를 의지하며 살아갈 힘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진다.
《몽실 언니》가 처음 출간된 것은 1984년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몽실이의 첫 탄생은 1981년이라 할 수 있다. 연재를 시작한 것이 이때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연재는 순탄하지 않았다. 때는 무시무시한 공안 정국 시절이었고, 살벌한 검열검색이 이루어지던 시대였다. 잘못 쓴 것은 지우겠다 사정하고, 분량도 줄어서 나왔다고 한다.
몽실이의 지난한 삶만큼이나 《몽실 언니》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도 힘들었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몽실이의 삶을 볼 때마다 몽실이가 나에게 이렇게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것 같다.
“힘들다고 투덜대지 마. 그게 네 팔자여. 팔자는 받아들여야 살 힘도 생기는 거야. 어때, 할 수 있겠지?”
얼굴 가득 웃음 띤 모습으로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이다.
이 글은 똘배어린이문학회에서 <몽실언니> 출판 40년을 기념해 발간한 문집 <오늘 몽실 언니를 만났다>에 실린 글입니다. 표지 그림은 그림작가 김환영이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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