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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야기 책/옛날이야기 공부방

거짓 활 잘 쏘는 사람, 엉터리 명궁 사위

by 오른발왼발 202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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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량이 되고 싶다!

- '거짓 활 잘 쏘는 사람’, ‘부엉이 잡은 한량’, ‘엉터리 명궁 사위’ -

 

 

 

1.

 

별 능력도 없으면서, 필요한 일은 편법을 써서라도 해내고, 마침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 만약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정말이지 얄밉고 꼴 보기 싫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면?

능력이 없어도 그 일을 해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 일을 하는 데 반드시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잖아. 모든 일의 해결 방식에 한 가지만 있다고 생각하는 게 바보지. 어떻게든 그 일을 해내는 게 능력이라고!”

어쩌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옛이야기에 바로 이런 인물이 있다. 바로 거짓 활 잘 쏘는 사람이다.

 

2.

 

거짓 활 잘 쏘는 사람은 활을 쏠 줄도 모르는 사람이, 활을 잘 쏜다는 거짓말로 성공하는 이야기다.

이 사람은 죽은 새의 눈을 활로 꿰뚫어 부잣집 담장 안에 던져 놓고는 활을 찾으러 왔다며 그 집 문을 두드린다. 주인은 이 사람이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 여겨 집안에 들인다.

 

부자는 왜 이 사람을 집안에 들인 걸까? 또 과연 이 사람의 거짓말은 탄로가 날까? 혹은 무사히 넘어갈까?

 

사실 이 사람이 많고 많은 집 가운데 그 부잣집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남자는 그 부자가 활 잘 쏘는 사위를 구한다는 광고를 낸 걸 봤거나 듣고 그 집을 찾아간 것이다.

물론 이 사연이 빠진 이야기들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도 대개는 활 잘 쏘는 사람이 필요했던 사연이 있다. 그런 걸 보면, 이야기에 나오진 않았지만, 어쩌면 그 사람은 소문을 듣고 그 집을 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건 이 사람은 부잣집에 머물게 됐고, 과제를 받는다. 그 집은 부엉이가 와서 울 때마다 사람이 하나씩 죽어가고 있었다.

부엉이가 울 때마다 사람이 죽는다니, 참으로 괴이쩍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긴 이야기의 배경이 겨울도 아닌데 겨울 철새인 부엉이가 와서 운다는 것부터가 이상하긴 하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 부엉이가 평범한 부엉이가 아님은 분명하다.

 

이 사람은 활은 쏠 줄도 몰랐지만, 자신 있게 그 과제를 받는다. 그리고 활이 아니라, 맨몸으로 부엉이를 잡고는 활로 부엉이의 눈을 꿰뚫어 놓는다. 부자는 문제를 해결해준 이 사람을 사위로 삼는다.
(우선 사위로 삼았는데, 첫날 밤 부인이 그렇게 활을 잘 쏘면 구구새를 잡아보라 해서 잡는 이야기도 있다)

 

이 사람은 부자의 과제를 완수했고, 그 능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부자의 입장에서도 활이 됐건 말건 상관없이 골치 아픈 문제가 해결됐으니 문제가 될 건 없다. 아니, 부자네를 위기에서 구해준 셈이니, 부자에게 이 사람은 영웅이나 다름없다. 

어느 조직에서건 문제를 해결해 공을 세우면 인정받고 그 보상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니 이 사람이 부자의 사위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셈이다.

하지만 한번 인정받았다 해도 그걸로 끝나는 경우란 없다. 인정받으면 받은 만큼 끊임없이 능력을 다시 인정받아야만 살아 남는다.

 

이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능력을 인정받아 사위가 됐지만, 자신의 능력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줘야 할 일이 또다시 생긴다.

 

사위의 활 솜씨를 자랑하고 싶은 장인의 욕심에, 같은 사윗감 후보였던 사람들이 활 선생으로 배우고 싶다 해서, 사위들끼리 활 시험을 보자 해서 등등, 그 이유는 많다. 좋든 싫든 그 자리에 끌려 나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문제는 이 사람이 활이라곤 쏴 본 적이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활을 쏘는데, 이 사람의 화살은 활시위를 떠나지 못한 채 그대로 얼음상태다. 누군가 !’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셈이다. 곁에서 그 모습을 본 사람이 답답한 나머지 빨리 쏘라며 툭 쳤고, 그 바람에 화살은 활시위를 떠나 날아간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날아간 화살은 하늘을 날던 새를 맞춰 떨어뜨린다. 사람들은 이 사람의 활솜씨에 놀라고, 이 사람은 자기가 더 잘 할 수 있는데 당신 때문에 못했다며 허풍을 떤다. 사람들은 이 사람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고, 이 사람을 쳤던 사람은 미안해지기만 한다. 이 사람의 손을 친 사람은 부인, 장인, 처남, 하인 등 이야기마다 다르다. 하지만 그 누가 됐던 이 사람의 손을 친 사람은 평생 활쏘기로 이 사람을 시험하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 역시 그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이 사람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다시는 자기에게 활 솜씨를 보여달라는 말이 나오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쳐둔다.

이 사람은 괜스레 무안해진 장인(자신을 친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활 종사를 끝끝내 하다가는 장인한테 맞아 죽어. [중간 생략] 그러니까 이 종사 안 한다”

- 엉터리 명궁 사위, 대계, 충북 청원군 옥산면, 정기모, 1980년 구술

 

그리곤 활과 활촉을 똑똑 꺾어 버린다.

 

이 사람은 안다.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건 자신의 결단과 편법이라면 편법일 수도 있는 지혜, 그리고 운이 따라줬기 때문이라는 것을. 만일 계속 활 솜씨를 뽐냈다가는 자신의 정체가 들킬 수도 있다는 것도 말이다.

 

 

3.

 

옛날옛적 한량들은 활을 잘 쏘서 한량이고

씨방세상 한량들은 돈을 잘 써서 한량이다.

얼씨구 좋다 정말로 좋네 아니놀지는 못하리라.

   - 옛날옛적 한량들은, 경남 함양군 휴천면, 박금순, 2009 구술.

 

지금껏 한량이라는 말을 놀고먹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옛날에는 한량이 활을 잘 쏘는 사람을 뜻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활 잘 쏘는 한량에서 요즘 우리가 아는, 그런 한량 같은 사람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싶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니 이 이야기는 한량의 두 가지 뜻을 절묘하게 이어붙인, 기막힌 이야기인 것 같 같이 느껴졌다.

사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보며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아무리 봐도 이 사람은 재주나 노력보다는 운이 좋았기에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삼 주 동안 이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활쏘기 실력이 없었을 뿐,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능력이 있었고, 살던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운명을 맞이할 결단이 있었고, 그만두어야 하는 시점을 아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운이 좋다 해도 이 사람의 결단과 능력이 아니었다면 운은 이 사람을 비껴갔을 것이다.

 

지금껏 한량이란 말은 조금 부정적인 느낌이 강했다. 일은 안 하고 그냥 놀고먹는 사람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결단과 능력으로 이룰 수 있는 걸 다 이루고 난 뒤라면 한량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다. 아니, 나쁘지 않은 게 아니라 그렇게 살고 싶다. 여유를 즐기면서 말이다.

 

옛이야기의 주인공은 무조건 착하고 모범적이지만은 않다. 역시 나와 같은 보통 사람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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