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신기한 꿈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 신기한 꿈, 대길몽. 중국 천자의 부마가 된 머슴 -
1. 꿈 이야기 때문에 생긴 일
한 사람이 꿈을 꿨다. 늘 꾸던 그런 꿈이 아닌, 뭔가 특별한 꿈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막상 꿈 이야기를 하려다가는 포기한다. 왠지 그 꿈 이야기를 하면 안 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꿈 이야기를 할 것처럼 하다 그만둔 그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입을 열 수 있도록 윗사람에게 끌고 간다. 머슴들은 주인에게 끌고 가고, 주인은 원님에게, 심지어 왕에게까지 끌고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람은 어디서고 꿈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 사람은 옥에 갇히고 만다.
참 이상하다. 꿈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뭐라고 그 사람은 옥에 갇히면서도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또 다른 사람들은 왜 그 사람이 꿈 이야기를 안 한다고 해서 그렇게 못살게 구는 걸까?
2. 꿈, 그리고 소망
국어사전에서 ‘꿈’이란 단어를 찾아봤다.
(1) 잠자는 동안 일어나는 심리적 현상의 연속.
(2) 실현시키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理想).
(3)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허무한 기대나 생각.
(4) 현실을 떠난 듯한 즐거운 상태나 분위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우리가 잠을 자다 ‘꿈을 꿨다’라고 하는 건 사전에서 (1)번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꿈에는 우리의 심리가 담겨 있다. 즉 꿈이란 단어에는 우리의 ‘희망’이나 ‘소망’이 담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사람은 특별한 꿈을 꿨다. 이는 그 꿈에 이 사람의 소망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자신의 소망이 담긴 꿈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꺼린다. 그 꿈을 잘못 말했다가는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단지 꿈일 뿐인데,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다른 사람의 꿈을 짓밟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꿈에 한계를 지어주고 그 한계 내에서만 꿈을 꾸라고 강요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꿈을 꾸고 있는 것을 알게 됐을 땐 ‘헛된 꿈’, ‘부질없는 꿈’이라며 구박이나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꿈 이야기는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는 말도 나왔을 것이다. <오줌에 잠긴 산> 이야기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유신의 여동생이었던 보희와 문희 이야기 말이다. 보희는 어느 날 산 위에서 오줌을 눴는데, 그 오줌에 서라벌이 잠기는 꿈을 꿨고, 그 이야기를 동생 문희에게 했다. 문희는 그 꿈이 보통 꿈이 아니라는 걸 알았고, 언니에게 그 꿈을 잘 간직하라고 말해주는 대신 그 꿈을 산다. 그리고 그 덕에 김춘추와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자매나 부부와 같은 각별한 관계라도 함부로 꿈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3. 옥에 갇힌 신세에서 공주의 부마가 되다
이 사람은 옥에 갇힌다. 그런데 옥에서 신기한 장면을 보게 된다. 죽은 쥐를 본 한 쥐가 자 같은 것을 가져와 이리저리 죽은 쥐를 재니까 죽었던 쥐가 살아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쥐에게서 그 자를 뺏는다.
그리고 그 자로 죽은 공주를 이리저리 재서 살리게 되고, 부마가 된다. 이 소문은 중국에도 알려졌고, 마침내 죽은 중국 공주도 살려낸다. 중국 공주 역시 아내로 삼게 된다.
어느 날 그 사람은 두 공주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한다. 두 부인이 양쪽에서 금대야와 은대야에 발을 씻어줄 때라고 나오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무튼 그 사람이 ‘그 꿈이 바로 이런 꿈이었구나!’를 깨닫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한 어깨에는 해가 돋고, 또 한 어깨에는 달이 돋고
한 발은 금대야에 담그고, 또 한 발은 은대야에다 담그고
두 공주가 발 하나씩 씻겨주는 꿈이었다.
<오줌에 잠긴 산>에서 문희가 그 꿈이 좋은 꿈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하게 그 꿈이 무슨 꿈이라는 것은 몰랐던 것처럼, 이 사람 역시 그 꿈이 심상치 않는 꿈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꿈의 구체적인 의미는 몰랐던 것으로 보여진다. 그도 그럴 것이 꿈이란 본래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상징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몽이란 것이 생기게 된 것이고 말이다.
아마도 이 사람은 자신의 꿈이 어떤 식으로 풀리게 될 것인가는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늘 이 꿈이 언젠가 좋은 방향으로 실현될 것이라 믿으며 생활했고, 어느 순간 자신의 꿈이 실현됐음을 알게 된 것이다.
4. 권력에 잣대를 들이대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
만약 이 사람이 자기 꿈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자신과 같은 신세의 머슴들이나 주인은 아마도 쓸데없는 소리, 허황된 꿈 따위는 꾸지 말라며 무시하고 놀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원님이나 왕에게로 이 말을 한다면? 이땐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반역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며 대역죄로 몰려 죽게 됐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 어깨에는 해가 돋고, 또 한 어깨에는 달이 돋고……’한 이미지는 마치 임금의 옥좌 뒤편에 있던 일월오봉도를 연상케한다. 그야말로 대역죄에 몰릴 수도 있는 꿈이다. 그러니 옥이 갇히는 한이 있어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최선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모가 발생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왕의 권력에 무언가 이상 신호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공주가 병에 걸려 죽는 것이 그 신호로 여겨진다. 그리고 이 사람은 자를 가지고 공주의 몸을 이리저리 잰다. 다시 살아난 공주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만진 이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대목만 본다면 이 이야기는 굉장히 성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공주가 병이 나고 죽게 되는 것이 권력의 이상 징후고, 이 사람이 자로 공주의 몸을 이리저리 잰다는 것은 문제가 생긴 것에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권력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서 이 사람이 왕이 될 수는 없다. 비록 현실이 아닌 이야기이긴 해도 충분히 역모가 될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많은 고전소설에서 그 공간적 배경을 조선이 아닌 중국으로 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5. 겉과 속이 다른 꿈과 이야기
처음 이 이야기를 봤을 때가 기억난다. 한 남자가 두 공주를 부인으로 두고 좋아하는 모습이 한없이 보기 싫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본 이야기는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의 이면에 또 다른 이야기가 보였다. 꿈이 상징과 은유로 이루어져 다양한 해몽이 존재하는 것처럼, 옛이야기 역시 겉으로 보이는 이야기의 이면엔 상징과 은유로 감추어진 또 다른 내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꿈을 꾸어도 상황에 따라 해몽이 달라지듯이,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이 이야기를 다시 보게 된다면 이번과는 또 다른 식으로 해석할 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란 한참을 묵힌 뒤 다시 꺼내 보면 예전엔 못 봤던 또 다른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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