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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그 밖에

'어린이책'에 대힌 고정관념 다섯 가지

by 오른발왼발 2026.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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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에 대한 고정관념 다섯 가지

 

 

우리는 누구나 고정관념 몇 가지는 갖고 있습니다. 고정관념이란 잘 변하지 않는 의식이나 관념을 뜻하지요. 의식이나 관념이라고는 하지만 실은 우리의 무의식 상태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개 고정관념은 확고하게 우리 몸속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행동하게 만들곤 하니까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생각하는 대신 당연히 그것이 맞는 것이라 생각하고, 아무 문제의식 없이 그렇게 행동하게 되지요.

이런 고정관념은 한 개인의 것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사회의 영향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한 개인의 고정관념이라면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 부딪혀하며 혼자 어려움을 감내하거나 깨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개는 ‘사회 통념’ 혹은 ‘관례’라는 이유로 사회의 틀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고정관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개인은 사회의 편견 때문에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고정관념은 사실 어느 정도 사회적 근거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정관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한 반박이 이루어지는 것이고요. 즉 고정관념은 어느 순간에 생기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사회 속에서 인정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묵인된 결과 생긴 것이기 때문에 그 반발도 거세지요.

 

문제는 일단 고정관념이 되어버리고 난 뒤에는 그것이 사람들의 의식을 장악해버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미 그 고정관념이 맞지 않게 된 상황 속에서도 그것이 맞는다고 믿게 되지요. 고정관념을 넘어서지 않아도 생활을 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고 오히려 편하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고 말이에요.

어린이 책을 고르고 볼 때도 이런 고정관념은 잘 드러납니다. 책을 많이 보면 무조건 다 좋다고 생각하거나, 전집이 아니면 체계적으로 보여주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무슨 분야의 책을 보고 난 뒤에는 어떤 분야를 차례로 보여줘야 한다거나……. 정말 많은 고정관념이 있지요. 여기에 책을 공부의 연장으로만 보는 분위기, 대학입시와 논술이라는 현실은 고정관념을 더욱 부채질하곤 합니다.

여기에서는 어린이 책과 관련한 고정관념 다섯 가지를 짚어보려고 합니다. 어린이 책은 어른들의 고정관념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다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 체계적으로 책을 읽히는 데는 전집이 최고?

 

제가 어렸을 때는 단행본은 거의 없었고 다 전집류였지요. 그렇다고 종류가 다양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지금 3~40대(2008년 기준입니다)분들이 기억하고 있는 전집이 기껏해야 서너 가지 정도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 다양하진 못했습니다. 그나마 이런 전집을 갖고 있는 집은 많지 않았습니다. 전집이란 한꺼번에 한 질을 모두 구입해야 하는지라 그 부담이 만만치 않았으니까요. 월부로 구입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부담을 피해가긴 어려웠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책꽂이에 꽂혀 있는 전집은 읽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때로는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지요.

 

집에 전집이 한 질 들어오면 뿌듯해서 애지중지하며 열심히 보곤 했지요. 언제 다시 새로운 책을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으니 더 소중하게 여겼지요. 친구들도 부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집을 부담스러워했던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일단 책을 썩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에겐 수십 권이나 되는 책이 한꺼번에 꽂혀 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지요. 하드커버에 똑같은 모양으로 꽂혀 있는 모습이 권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으니까요. 게다가 전집이란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일단 전집 한 질이 들어오면 그걸 다 읽어내지 않고서는 새로운 전집을 살 수 없었지요. 그런데 만약 새로 산 전집이 아이와 잘 맞지 않으면 전집은 그야말로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지요. 읽으라고 하준 책이 오히려 아이의 책읽기를 방해하는 꼴이 되고 마는 거죠.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일단 단행본이 아주 다양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에 한 질씩 한꺼번에 책을 들여놓다가 실패하는 경우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때그때 아이의 상황이나 취향에 따라서 한 권씩 골라줄 수 있으니까요. 물론 요즘도 전집 시장은 여전히 존재하고, 책 자체도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고, 많은 분들이 여전히 전집을 선택하고 계십니다. 왜 전집을 선택하느냐고 몇 분께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지요. 전집으로 보면 각 분야별로 빠트리지 않고 체계적으로 볼 수 있다고요. 그래서 전집으로 체계를 세워주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단행본으로 메워준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전집은 대개 영역을 분명히 표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전집을 보고 나면 그 다음 다녜로는 어떤 분야, 어떤 영역의 책들을 보는 게 좋다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지요. 전집의 양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분야별로 수십 권을 한 질로 묶어 놓았기 때문에 의외로 고르ᄀퟄ도 쉽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엇 무엇을 차례로 보면 마치 책읽기가 완성이 되는 듯 보이는 것이지요. 또 한 질 속에는 각 영역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한 분야의 다양한 영역을 골고루 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일단 이런 체계에 관심이 없습니다. 또 전집에서 제시한 체계도 완전한 것도 아니고요. 아이들은 관심에 따라 자유롭게 여러 가지 책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 읽어가며 그 속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체계를 만들어 나갑니다. 뭔가 체계적인 듯 보이던 전집의 모습은 결국 책을 구입하는 어른들을 겨냥한 마케팅인 것이지요.

 

두 번째 : 세계 명작은 고전이니까 읽혀야 한다?

 

어른들에게는 ‘세계 명작’하면 떠오르는 책들이 있습니다. 아련한 추억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이들에게도 세계 명작을 읽히고 싶어 합니다. 엄마가 재미있게 봤던 명작의 감동을 아이도 함께 느끼기를 바라는 거지요. 또 ‘세계 명작’이란 세계적으로 이름난 좋은 작품들이라니 더더욱 읽히고 싶어집니다. 요즘엔 논술이 강조되면서 명작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어른들이 생각하는 세계명작은 부모 세대가 보던 전집의 틀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가장 유행하던 전집이 바로 세계명작전집이었으니까요. 다양한 책이 나오지 않던 당시 세계명작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었던 책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그 책을 안 읽으면 조금 뒤쳐지는 듯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명작이 정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은 아니랍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명작은 일본을 통해 들어온 책이지요. <플랜더스의 개>의 경우는 우리랑 일본에서만 유명한 책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니 괜히 ‘세계명작’이란 말 자체에 주눅이 들어 필독서처럼 여길 필요는 전혀 없을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명작은 대개는 쓰인지 100년 가량 된 책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가치관과는 달리 인종차별적이고 제국주의적이고 남녀차별적인 내용이 담긴 경우도 많습니다. 또 1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명작보다 훨씬 더 좋은 책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지요. 더 좋은 책들이 많은데 굳이 세계명작을 필독서로 여길 까닭은 없습니다.

 

물론 세계명작으로 알려진 책들 가운데는 지금 봐도 정말 좋은 책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책들마저 권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때가 많습니다. 세계명작을 필독서로 여기고, 필독서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쉽게 보여주기 위해서 나오는 요약판 책들 때문이지요. 예전에도 이런 출판은 흔했지만 특히 요즘은 논술과 맞물려서 더욱 다양한 형태로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하나의 교재는 될 수 있지만 문학 작품이 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아이에게 세계명작을 보여주고 싶다면, 부모님이 다시 한 번 책을 보고 판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반드시 완역한 책으로 읽어 보시고, 그 내용이 적당한지, 아이의 연령대에 맞는 책인지를 확인해 주시고요.

무엇보다 명작이라는 말에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세계명작’이 아니라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니까요.

 

세 번째 : 훌륭한 아이로 키우려면 위인전을 많이 읽어야 한다?

 

위인전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어른들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위인전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어른들이 위인전을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물론 아이들 가운데도 위인전을 좋아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어른들처럼 많은 위인전들을 다 보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관심 있는 인물이거나 텔레비전에서 인기를 끄는 인물들을 다룬 위인전에 관심이 몰린다는 점이지요.

위인전이란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들의 업적이나 일화를 중심으로 엮은 책이지요. 어른들은 이들 위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아이도 자여ᇇ럽게 본받고 배우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위인전을 보여줍니다. 적어도 위인전을 보며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믿습니다. 새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에 대한 위인전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위인전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분들 가운데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보여주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위인전은 그렇게 어린 아이들이 보기에는 힘든 책입니다. 위인전이란 역사 속의 인물과 만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위인전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살았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런 능력은 적어도 초등학교 2~3학년 이상은 되어야 생깁니다. 따라서 너무 어린 아이에게 위인전을 읽히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또 위인전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 아니라 작가가 몇몇 일화와 업적을 바탕으로 지어낸 부분이 많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많은 위인전에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지만 사실 어린 시절 이야기까지 기록으로 남아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은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까지도 다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가 충분히 근거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때로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가 어린 시절 산 위에 올라가 지도를 보며 지도가 엉터리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됐다는 식으로 말이죠.

또 때로는 그 인물의 업적을 강조하느라 일정한 틀에 갇혀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군들은 어린 시절부터 골목대장으로 나오고, 과학자들은 다 호기심이 많아서 엉뚱한 일을 벌이곤 하는 식이지요.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아이가 본받기를 바라며, 뭔가를 배우길 바라며, 일찍부터 위인전을 보여 주는 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답니다.

 

네 번째 : 책은 무조건 많이 읽는 게 좋다?

 

아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어른들은 무조건 좋아합니다. 그 책이 어떤 내용인지, 아이에게 맞는 책인지, 얼마나 좋은 책인지 상관없습니다. ‘우리 아이는 책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야’라는 말 속엔 뿌듯함이 묻어 있지요. 만약 책을 잘 읽지 않는 아이 때문에 걱정스러운 엄마가 이런 말을 듣는다면 더욱 속상해집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이가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느냐는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같은 책을 보고 또 보는 것보다는 되도록 새로운 책을 많이 보길 원합니다. 다양한 책을 많이 봐야지만 책에서 배우는 것도 많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정말 책을 많이 읽으면 무조건 좋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이란 읽는다고 해서 반드시 다 내 것이 다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이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지요. 친구를 사귀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듯이요. 나랑 한두 번 함께 놀았다고 다 친구가 되지는 않습니다. 자주 함께 놀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나랑 마음에 맞는 부분도 확인하면서 친구가 되어가는 것이지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책을 보는 것보다는 마음에 드는 책을 반복해서 보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자주 만나는 친구일수록 할 말도 많고, 함께 하고 싶은 놀이도 많은 것처럼 반복해서 보면 볼수록 책은 새로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책과 친구가 되는 것이지요.

만약 무조건 많이 읽기만 한다면 그건 단지 줄거리를 읽어내는 것일뿐, 책을 읽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가 책을 진정으로 읽기를 바란다면 지나치게 많은 책을 읽히는 일은 피해주세요.

 

다섯 번째 : 우리는 디즈니 그림책에 속고 있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그림책 가운데 하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책입니다.아이들이 디즈니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디즈니 만화영화 때문입니다. 또 디즈니 캐릭터를 옷이며 학용품 여기저기에서 자주 보며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디즈니 만화영화 속 주인공들은 다들 사랑스럽고 천진난만합니다. 어느 누군든지 친구가 되자고 손을 내밀면 언제든지 친구다 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매력적으로 보이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책이 문제입니다. 왜일까요? 우선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림책은 사실 그림책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디즈니 그림책은 만화영화로 만들었던 걸 중간 중간 장면을 잘라내고 이야기를 줄여서 그림책 모양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의 연결은 자연스럽지 않고 이야기는 뚝뚝 끊기지요. 또 만화영화로 볼 때는 빛으로 쏘아 만들어낸 화려한 색감과 음악이 함께 했지만 그림책이 되면서 색은 죽고 음악도 사라집니다.

내용 또한 문제입니다. 디즈니 만화 영화는 원작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대신왕자와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구실로 이렇게 왜곡된 이야기는 디즈니의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가 본래의 이야기를 왜곡하고 맙니다.

신데렐라는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웃으며 이겨내 마침내 왕자님과 결혼을 하고 있습니다. 알라딘은 이야기만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가져왔을 뿐 잘 생긴 현대의 미국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결말은 아메리칸 드림을 연상하게 하는 해피앤딩뿐이지요.

 

이처럼 디즈니 그림책은 어느 것 하나 좋은 부분을 찾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디즈니 캐릭터에 빠져서 어른들은 순수해 보이는 디즈니 모습에 속아서 디즈니 그림책을 봅니다. 순수해 보이는 모습 뒤에 가려진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말이지요.

 

지금까지 어린이책과 관련한 고정관념 다섯 가지를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이 다섯 가지가 다는 아닐 것입니다. 아이가 책을 보면 반드시 뭔가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책을 볼 때도 아이의 연령대보다 높은 단계의 책을 보면 무조건 좋아하거나, 상을 받은 책은 맹목적으로 좋다고 생각하거나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우리를 틀에 가두는 고정관념일 거예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건 정말 좋은 일이지만, 책을 읽어주는 일에만 매몰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칙 고정관념에 빠져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 글은 <줏대있는 어린이> 2008년 봄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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