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주기 - 국민의 안전권을 묻다
1. 세월호의 기억을 지우려는 사람들
# 한국방송(KBS)은 ‘세월호 10주기 다큐멘터리’에 대해 최종적으로 제작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KBS 사측이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4월에 방송할 수 없다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총선은 4월 10일이고, 방송은 4월 18일 예정이었지만, 총선 전후로 한두 달은 영향권이라 방송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6월 이후에 다른 재난과 엮어서 PTSD 시리즈로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 2024년 설 명절을 앞두고 세월호 참사 피해자 사찰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은 김대열·지영관 전 기무사 참모장들과 세월호 참사 때 대통령 보고 시간을 조작하고, 국가위기관리지침을 무단 변개했던 김관진·김기춘 등 청와대 인사들에 대한 특별사면이 단행됐다.
# 박근혜 대통령은 대구에서 있었던 회고록 북콘서트에서 "재임 중 사소한 실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국민 앞에 부끄러운 일은 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떳떳하고 당당했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째 되는 올해, 내가 듣고 싶은 건 이런 소식이 아니었다.
#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 만에 드디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었습니다.
#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제기됐던 국민의 안전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내가 듣고 싶은 건 이런 소식이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전혀 달랐다. 세월호를 사람들 기억에서 지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식만 들려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혹은 이제 기억에서 지울 때라도 됐다는 듯이 말이다.
그들은 왜 세월호를 그토록 기억에서 지우려는 걸까? 뻔한 질문이다. 그들에게는 세월호의 기억이 지워지면 지워질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기억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세월호가 하루빨리 지워지길 바란다.
2. 반드시 기억해야 할 세월호 참사
기억은 개인 차이가 있다. 여러 사람이 같은 걸 목격해도 기억하는 내용이 다르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기간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금방 잊지만,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기억한다. 자신과 관련이 있을수록 오래 기억하고, 만일 자신에게 큰 상처를 입힌 기억이라면 그 상처가 아물고 극복될 때까지 잊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여기면 빨리 잊게 된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은 지금,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희생자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은 아직도 세월호 참사를 잊지 못한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제 그만하면 됐다’, ‘언제까지나 세월호에 매달려야 되겠느냐’며 잊기를 강요한다.
“이제 지난 일이잖아. 다 잊어버리고 잘 살아야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기억이 있는 사람에게 누군가 위로해 준다며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아마 상처가 낫기는커녕 더 깊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상처 난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켜주는 것은 상대에 대한 공감, 그리고 그 상처가 나을 때까지 지켜보며 기다려 주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개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상처를 입은 경우는 어떨까? 세월호 참사는 희생자와 가족들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세월호 사건의 뒤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비리가 있었고, 그 가운데 국민의 안전은 내팽개쳐져 있었다. 많은 사람이 세월호 참사를 보며 언제라도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라 인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노란 리본을 달고, 촛불시위에 나섰던 건 이 때문이었다.
3. 하멜른처럼 기억하기
1284년 6월 26일에 독일의 하멜른이란 도시에서 실제 일어났던 어린이들의 실종 사건을 기반으로 한 전설이 있다. 바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이야기다.
쥐들로 골머리를 앓던 하멜른에 피리 부는 사나이가 나타난다. 그는 대가를 약속받고 피리를 불어 쥐들을 모조리 강물에 빠뜨려 죽인다. 하지만 하멜른 사람들은 쥐에게 해방되자 약속한 대가를 후회하며 온갖 핑계를 대며 돈을 주지 않는다. 얼마 뒤 피리 부는 사나이는 다시 나타나 피리를 불기 시작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이들이 달려 나왔고, 그를 따라 산으로 사라졌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니만큼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내용은 이 뒤에 나온다.
그 뒤로 하멜른에서는 아이들이 사라진 길을 ‘가무금지로’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길에서는 음악을 연주하며 교회로 향하던 신부 일행도 음악을 멈추고 조용히 지나가야 했다. 또 이 사건은 하멜른시의 문서로 기록되었고, 그 뒤부터 하멜른에서는 날짜를 헤아릴 때 아이들이 실종된 날을 기점으로 헤아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도 탄생 후 1284년에
우리 시에서 태어난 130명의 어린이들이
하멜른 거리에서 납치되어 사라졌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뒤를 따라 코펜에서 사라졌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뿐이 아니다. 1572년에 시장은 이 이야기를 제목과 함께 교회 창문에 그림으로 그려 넣게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사라졌던 그 길은 18세기 중반까지도 여전히 가무금지로라 불렸다고 한다. 1284년 일어난 아이들 실종 사건을 하멜른에서는 수백 년이 지나도록 기억하려 애썼다는 뜻이다.
본래 하멜른의 관리들은 들끓는 쥐떼에 대한 대책도 없고, 피리 부는 사나이와의 약속은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파렴치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의 실종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말이다.
4. 기억해야 할 것, 국민의 안전권
헌법 제34조 6항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헌법에도 나와 있듯이 국가는 국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고, 국민은 안전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서 헌법은 아무 소용 없었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지 못했고, 위험에서 국민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그리고 2022년 10월 29년, 또다시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그저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갔던 아이들이 이태원 골목길에서 처참하게 압사했다는 소식이었다. 정신이 멍해졌다. 골목길에서 압사라니,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 엄청난 재난 앞에서 이번에도 역시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놀러 갔다 사고가 났다며 개인의 탓으로 치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늘 사고의 위험이 있기 마련이고, 국가와 지자체는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게 당연한데 그걸 모르는 것처럼 떠들었다. 모든 것이 세월호 때와 똑 닮아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살 수는 없다. 아프고 괴로웠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물면 점차 잊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망각은 신의 선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도 있다. 가슴 아픈 일일수록 더욱 기억해야 한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명확히 알아야만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애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멜른의 관리들은 아이들이 사라진 후에라도 정신을 차리고 그 사건을 기억하려 애썼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들은 기억을 지우려고만 한다. 만약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들이 하멜른의 관리들처럼 기억하려 노력하고 국민의 안전을 생각했다면, 어쩌면 이태원 참사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림형제의 《전설집》 속 <하멜른의 아이들>에는 없지만, 그림책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로 널리 알려진 로버트 브라우닝의 글 속에는 있는 장면이 있다. 쥐들이 활개를 치며 돌아다녀도 관리들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자 시민들은 우르르 시청으로 몰려가 소리친다.
“우리 시장은 바보가 틀림없어.”
“시의원들은 또 어떻고, 영 형편없잖아.”
“저런 해로운 짐승을 없애는 방법을 찾지도 못하고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얼간이들한테 담비 털 가운을 사다 바쳤다니!”
“이제 나이 들고 뚱뚱해졌으니 의원 가운을 입고 편하게만 살겠다는 건가?”
“정신들 차려요, 의원 나리들!
머리를 쥐어짜서라도 우리를 살려낼 방법을 찾아내시오.
아니면 죄다 쫓아내 버릴 테니까!”
속이 시원해지는 장면이다. 나도 함께 소리치고 싶다.
“정신들 차리시오. 머리를 짜서라도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방법을 찾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도 결코 안전하지 못할 거요!”
이 글은 어린이도서연구회가 달마다 펴내는 <동화읽는어른> 2024년 4월호(354호)에 실린 글입니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고정순 쓰고 그림/노란상상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누구나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수많은 쥐 때문에 골치를 앓던 마을에 피리 부는 사나이가 나타나 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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