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쫙! 아이 독서지도 1
동아일보 2007. 3. 27.
마음에 드는 책을 실컷 보여주자
“아이가 책 편식이 심해요. 날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보고 다른 책은 보질 않아요. 어떻게 하면 아이가 골고루 책을 볼 수 있을까요?”
4-5세 미만의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흔한 질문 가운데 하나다. 대개 이런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이에게 다양한 책들을 보여주고 싶은 엄마 마음과는 달리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한 분야의 책만 보려고 하는 경우요, 또 하나는 아이가 책을 보면서 수준이 점점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고 예전부터 보던 책들에 집착하며 보려고 하는 경우다. 이러다 보니 때로는 새로운 책을 보여주려는 엄마와 그 책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럴 땐 엄마가 한 발 뒤로 물러서는 게 가장 좋다. 책을 읽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엄마가 아니라 아이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어디까지나 아이와 책의 즐거운 만남을 주선해주는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 마치 중매쟁이처럼 말이다. 서로간의 조건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두 사람이 서로 끌리는 게 없다면 결혼에 이를 수 없다. 그리고 좋은 중매쟁이는 이렇게 끌리지 않는 짝을 억지로 맺어주지 않는다. 상대에게 맞는 적당한 짝을 소개해주고 서로가 상대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은 하지만 그뿐이다. 판단은 오로지 당사자가 내리도록 해야 한다.
아이의 책읽기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좋은 책을 아이에게 권해줄 수는 있지만 결국 아이가 스스로 자기 마음에 드는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이렇게 아이가 읽고 싶은 책만 계속 반복해서 읽는다고 해서 아이의 책읽기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다. 지나치게 한 분야의 책만 보려고 하거나, 아이의 단계 보다 좀 낮은 책을 읽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끌리는 사람이 있으면 좀더 만나보고 싶은 것처럼 아이들도 그렇게 끌리는 책을 자꾸 보려고 할 뿐이다.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면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는, 나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처럼 아이들도 끌리는 책을 자꾸자꾸 반복해서 보면서 엄마나 주위 사람은 발견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실컷 그 책을 읽고 나면 스스로 알아서 다른 책을 찾아 나선다.
책을 즐겁게 볼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책을 평생의 친구를 삼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번 책이 친구가 되고 나면 책은 늘 아이 곁에 있게 된다. 바쁘게 뭔가를 하다가도 잠깐 쉴 틈이 생기면 책을 손에 잡을 수 있는 힘도 여기서 나온다. 책을 평생의 친구로 삼은 아이는 쉬는 시간이면 친구랑 수다를 떨듯이 책을 펼쳐드는 것이다.
흔히 엄마와 아이 사이에서 책을 읽으며 신경전이 벌어지곤 하는 건 아이가 책을 읽을 때 경험하는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엄마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의 즐거움이 아닌 엄마 자신의 즐거움을 좇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엄마가 좇고 있는 즐거움의 원천은 엄마가 원하는대로 아이가 책을 잘 보면서 따라와 주는 것에 대한 만족감에서 오는 즐거움일 때가 많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책이 교육의 방편처럼 여겨지는 우리 분위기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골고루 다 보여주지 않으면 뒤떨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기고 불안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책은 결코 교육의 방편이 아니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즐거움으로 다가와야 한다. 그 가운데 자연스레 삶의 지혜를 배워나갈 수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보자. 누구라도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은 따로 있는데 다른 책을 보라고 하면 책읽기가 따분해질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보더라도 머릿속에는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이 가득하기 때문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이런 상태가 계속 되다 보면 책읽기가 점점 싫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이가 같은 책을 수백 번 반복해서 읽는다 하더라도, 아이 수준에 너무 쉬운 책을 즐겨 읽는다 하더라도 그냥 그대로 즐기게 내버려 두자. 이렇게 하면 책을 읽어주는 엄마도 한결 여유가 생긴다. 다음엔 무슨 책, 무슨 책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아이와 함께 책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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