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쫙! 아이 독서지도 2
동아일보 2007. 4. 10.
상상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래서 때로는 상상력 훈련을 따로 받는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상상력 훈련을 한다고 아이들의 상상력이 길러질까? 오히려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훈련된 상상력에 안주해 버릴 가능성이 더 높아질 뿐이라 생각한다. 상상력은 훈련이 아니라 아이들이 일상에서 자유롭게 놀고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원래 아이들은 나무 막대기 하나만 있어도 그 막대기가 지팡이가 되고, 우산이 되고, 양산이 되고, 칼이 되기도 하면서 신나게 놀 수 있는 존재다. 때로는 나무 막대기 조차 없어도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바람이 되기도 하고, 비행기가 되기도 한다.
이런 놀이는 상상력 없이는 즐길 수 없는 놀이다. 그리고 이런 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은 그 상상 만큼 세계가 넓고 자유로워진다. 괜히 너무 현실 세계와 지나치게 꼭 닮아있는 요즘의 장난감들을 충분히 갖고 놀 수 있게 해 주는 건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이런 장난감들은 아이들이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하려고 그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너무 풍족할 정도로 이런 장난감이 많을 경우는 아이가 상황에 따라 바로 다른 장난감으로 바꾸면 되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해 볼 여지도 사라지고 만다.
책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상상력을 위해 특별한 책이 따로 필요한 건 아니다. 상상력이란 책을 아이의 느낌에 따라서 자유롭게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또 책 속의 내용이 놀이가 되고, 아이가 경험했던 놀이가 다시 책 속에 녹아드는 과정을 통해서 상상력은 커간다. 따라서 어른의 잣대로 아이에게 모범 답안만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책을 읽고 상상한 세계를 이야기할 때 “말도 안 돼!” “그게 무슨 말이야?” 하는 식으로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된다. 아이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를 생각하며 아이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 주는 게 가장 좋다. 무릇 뭐든지 박자가 맞을 때 그 효과는 커지는 법이다. 엄마가 아이에 맞춰주면 아이는 신이 나서 상상의 날개를 더 활짝 펴나간다.
상상력과 관련해 가장 벽에 부딪치는 분야는 과학이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과학 분야에서 지나친 상상력은 과학을 배울 때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뭔가 호기심이 생겨서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아이의 질문에 대해 과학적인 대답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과학에도 상상력은 꼭 필요하고,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루는 역사에도 상상력은 꼭 필요하다. 인류가 달에 간다는 상상을 하지 않았던들 달 착륙이라는 과학적인 성취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돌들과는 좀 다르게 깨져 있는 돌멩이를 보고 의문을 갖고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았다면 문자로 남겨진 기록도 없는 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의문이 나는 것을 보고 ‘혹시 이런 건 아닐까?’ 하고 가설을 세워보고 부딪쳐 본 뒤에 오류가 있다고 여겨지면 또 다른 가설을 세워보고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발전이 이루진다. 그리고 이렇게 가설을 세워보는 것 역시도 상상력이 바탕이 될 때야 가능한 것이고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과학에서 지나치게 상상력을 펼치면 헷갈리지 않겠어요?” 하고 묻는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두 가지를 조화시킬 줄 안다. 비가 오는 것을 보고 ‘견우랑 직녀가 만나고 있나 보다!’ 혹은 ‘용이 하늘에서 비를 뿌리는 거야!’라고 말하는 아이라고 해서 비가 오는 과학적 원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니다. 비가 왜 오는지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이성의 판단일뿐 비가 올 때의 감성은 다를 수가 있고 아이들은 그때그때의 느낌을 표현하며 상상을 펼쳐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아이들은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할 땐 과학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감정에 충실하면서 문학적인 상상력과 심리적인 풍족함까지도 함께 얻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맘껏 상상하며, 상상한 걸 맘껏 표현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자. 그리고 괜히 엄마가 먼저 아이에게 완벽한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하지도 말자. 상상력이란 너무 완벽하게 갖추어 있을 땐 나올 틈을 찾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아이의 질문에 뭐든지 완벽하게 대답을 해줘야 한다는 강박도 버렸으면 좋겠다. 설명이 좀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아이들은 상상하며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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