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쫙! 아이 독서지도 8
동아일보 2007. 6. 5.
명작 그림책, 꼭 봐야할까?
살다보면 말만 들어도 괜히 기가 죽는 단어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명작’이다. 명작을 읽지 않으면 어쩐지 책을 제대로 읽은 것 같지 않고, 남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에 괜히 스스로 부끄러워 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은 아이들 책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이른바 ‘명작 그림책’이란 딱지가 붙은 책들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아이에게 보여줘도 명작 그림책을 보여주지 않으면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들을 하신다. 그리고 적어도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명작 그림책을 봐야만 한다고 여기기도 한다.
명작을 말 그대로 풀이하면 ‘뛰어난 작품’, ‘유명한 작품’을 뜻한다. 이는 잠깐의 유명세가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꾸준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을 뜻한다. 그러니 이런 뜻대로라면 명작을 마다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명작 그림책으로 흔히 나오는 책들을 들여다 보면 생각이 달라지곤 한다. 왜 이 책이 명작이지? 원작이 명작이라고 그림책으로 만들어진 이 책까지 명작으로 봐야할까? 명작 그림책이라고 하지만 내용이 유아에게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다.
흔히 명작은 전집으로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그 목록을 살펴보면 ‘명작’하면 흔히 머리에 떠오르는, 이른바 엄마들이 어려서 읽었던 책들이 많다. 이들 책의 대부분은 해방 전후부터 ‘세계명작’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던 책이다. 책이 쓰여진지 100년 이상 지난 책들도 많다. 정말 좋은 책도 있지만 그저 어린이 책을 구경하기 조차 힘든 시절에 ‘명작’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타나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여전히 살아남은 책들도 있다. 시대가 달라지고, 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명작의 틀은 잘 깨지지 않는다. 결국 명작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명맥을 유지하는 책들이 있는 반면 충분히 명작이라 할 만한 책들 가운데도 명작이라는 타이틀을 갖지 못하는 불합리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게다가 이들 명작은 원래 그림책이 아니라 꽤 분량이 되는, 좀더 큰 아이들이 읽을만한 책이었다. 나는 원작을 그림책 형식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작은 원작이고 그림책은 그림책이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했다고 해서 영화가 원작이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원작을 그림책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재창작했을 때 그 작품이 뛰어나다면 아무 문제가 될 게 없다. 문제는 엄마들이 꼭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하는 명작을 좀더 어린 연령의 아이들에게까지 보여주기 위해서 줄거리만 요약해 그림책 형식으로 꾸며 내놓은 책이다. 이런 책들은 원작이 명작이라고 해도 그림책까지 명작이라 말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아주 잘 만들어진 명작 그림책이라 해도, 반드시 유아들에게 적당한 책이 될 수는 없다. 그림책이라는 형식은 어린 아이들이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주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형식이 바뀌었다고 해서 내용이 갖는 무게까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따라서 그림책이라는 이유만으로 유아책으로 여겨져서는 안 되다.
중요한 건 ‘명작’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그 책이 정말 아이에게 적당한 좋은 책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만약 이를 까먹고 ‘명작’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자칫 ‘벌거벗은 임금님’ 꼴이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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